In Calendarium
In AD 69, Otho seizes power in Rome, proclaiming himself Emperor of Rome, but rules for only three months before committing suicide.
기원후 69년에 오토황제가 로마를 습격해서 황제에 자리에 올랐지만 3개월 간의 제위기간 후 스스로 목숨을 끊다.
로마 제국의 7대 황제로서 풀 네임은 마르쿠스 살비우스 오토 입니다. 악명이 높은 네로 황제의 젊은 시절의 친구였고, 네로의ㅡ 두 번째 부인 포파이아 사비나의 두 번째 남편으로 네로에게 아내를 뺏긴 인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황제로서의 치세는 후대의 학자들에 있어서 고평가 되고 있지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인 법, 기존 로마의 역사가들에게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황제중 하나입니다. 그럼 오토 황제에 대한 생애를 간단히 알아보도록 합시다.
1. 황제 즉위 전
오토의 가문은 꽤나 고위집안 이었습니다. 할아버지 마르쿠스 오토때부터 원로원에 입성한 집안 출신입니다. 그의 아버지 루키우스는 정부의 여러 요직을 경험하면서 능력과 충성심 모두 여러 황제들에게 인정받게 됩니다. 아첨해서 그런게 아니라 군사령관이자 행정관으로써 능력 자체를 인정받았습니다. 티베리우스 황제 때에는 너무나 친근했던 나머지 티베리우스가 카프리 섬으로 은둔해 버린 이후로는 티베리우스가 루키우스 오토의 어머니와 간통해 낳은 사생아라고 소문이 퍼지기까지 합니다. 그 정도로 티베리우스와 돈독했다는 의미겠죠.
여튼 할아버지때부터 황실의 측근이었으므로, 어릴때부터 부족함이 없이 자랍니다. 어느정도였나…. 그의 누나는 요절하긴 했지만 아우구스투스의 친혈육의 대 드루수스의 손자 드루수스 카이사르와 약혼을 할 정도 였고, 그의 형은 티베리우스 황제의 오랜 친구 네르바의 손녀 (네르바 황제의 여동생) 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그럼 오토라고 달랐을까요?? 클라우디우스 황제를 알현했고, 네로와 굉장히 친한 사이였다고 합니다. 네로가 황제로 즉위해서도 밤이슬을 같이 맞고 다니던 사이였다고 하니 말이죠. 하지만 네로가 오토의 아내를 사랑하면서….. 틀어집니다. 네로는 오토의 아내를 품었고, 오토에게 이혼을 종용하게 됩니다. 그리고 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루시타니아 속주 – 현재의 포르투갈 – 총독으로 보내버립니다.
2. 황제 즉위
좋은 집안의 아들이 그 당시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이래저래 바람둥이 생활을 하고 다녔으니 상류층내에서는 이미지가 그렇게 좋진 않았습니다. 근데, 네로가 아내를 뺏아간게 상류층의 평가를 뒤집는 계기가 됩니다. 그리고 속주 통치도 굉장히 훌륭히 해 냅니다. 원래 잘 하던 사람이 잘하면 그래 너니까 하지만 원래 아닌 사람이 잘하면 평가가 확 올라가는법, 오토의 이런 모습은 로마에까지 소문이 나게 됩니다.
10년간 루시타니아 속주 총독으로 명성을 쌓다가 갈리아 속주 총독 가이우스 율리우스 빈덱스로 시작된 반 네로운동에서 자기속주 옆의 타라코넨시스 총독 갈바를 맨 처음 내세우고 지지하면서 반 네로 운동에 가세합니다. 아내를 빼앗긴 남자의 복수심이 쉽게 사그러 들겠습니까?? 그리고 이러한 반란 소식에 근위대장 가이우스 님피디우스 사비누스가 네로의 통수를 치고, 원로원이 네로를 국가의 적으로 선포함으로써 반란은 성공하게 됩니다. 네로는 자결하고, 갈바가 황제로 추대되어, 오토는 갈바와 함께 로마로 들어오게 됩니다.
하지만 같이 반란을 일으켰으면 확실히 대우해 주던가, 아님 확실히 제거하던가 둘 중에 하나를 해야할텐데 갈바는 그렇게 하질 못했습니다. 갈바의 나이가 많기도 했고, 나이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실수도 많았으며, 오토와 척을 지고 있는 리키니아누스를 양자로 삼았다는 점이죠. 이제 대놓고 얘기하고 있는거죠. 너는 낙동강 오리알이다. 그러니 오토는 먼저 선수를쳐서 갈바를 없애기로 합니다.
갈바의 흉상
우선 오토는 근위대 병사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갈바를 암살하고 황제에 등극합니다. 하지만 원로원의 지지를 받지는 못합니다. 네로의 친구였으며 갈바제거에 굉장히 잔인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죠. 하지만 오토는 유틍하고 활동적으로 통치를 했으며, 이는 원로원도 놀란 모습이었습니다. 내전을 막고, 혼란을 수습하려 애 썼으며 네로가 저질러놓은 것들을 수습하고, 네로 시대의 관료들을 복직시켜 행정 공백을 최소화 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라인강 군단들에 의해 추대된 비텔리우스를 상대애햐 했습니다.
비텔리우스의 흉상
3. 몰락
가끔 역사를 보면 승자를 마치 하늘이 정해준 듯한 경우를 많이 봅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삼국지의 제갈량이 사마의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가지만 결국 승자는 사마의였죠. 라인강 군단들에 대항해서 도나우군단의 적극적인 지지로 오토는 비텔리우스에게 협상을 제안합니다. 내전을 막기위한 노력의 하나였죠. 공동 권력을 제안하고 비텔리우스의 딸과의 결혼은 제안합니다. 그리고 가이우스 수에토니우스 파울리누스라는 유능한 사령관의 도움으로 첫번째 싸움에서 승리를 거둡니다. 하지만 여기서 큰 실책은 두가지를 합니다. 첫번째는 패잔병들의 추격을 하지 않은 것. 그리고 회전을 치루었다는 점. 그래서 1차 베드리아쿰 전투에서 패배하자 미련을 두지 않고 자결 합니다.
1차 베드리아쿰 전투 배치도
4. 여담
그 당시의 로마인들에게는 황제와 총독으로써 보여준 능력이 너무나 좋아서 평가가 좋았지만 오토는 역사의 패배자입니다. 당연히 그 이후의 평가는 좋을 수가 없습니다. 대다수 내전에서 승리했더라면 좋은 황제가 되었을 것이다 라는 말을 써 놓긴 했지만 우유부단하고 통솔력이 없는 일화를 하나두개씩 끼워넣어서 황제로서 어울리지 않은 사람이었다는 평가를 하게 만들게 되죠
플레이보이로 유명했던 탓에 굉장히 외모는 출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관리도 굉장히 잘 했다고 합니다. 단지 하나의 단점이…. 대머리였다는 것인데…. 가발로 잘 가리고 다녀서 실제 대머리인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고 합니다.
5. 평가
개인적으로 승리자는 모든 것이 완벽해도 ‘운’이라는게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여러 기록들에게서도 통치자로서의 능력만큼은 인정하는 서술이 많았던 만큼 능력은 좋았다고 생각이 되나 유능한 사령관의 얘기를 듣지 않은 것 과 순간의 판단미스로 인해 권력자의 자리에 오를 기회를 놓쳐 버렸죠. 노력하는 자에게 운이 따라온다고 하지만, 인력이상으로 다른 요인들이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하늘이 점지해 준다는 얘기가 괜히 있는게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