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Calendarium
In BC 38, Octavian divorces his wife Scribonia and marries Livia Drusilla, ending the fragile peace between the Second Triumvirate and Sextus Pompey.
기원전 38년, 옥타비아는 그의 아내인 스크리보니아와 이혼하고 리비아 드루실라와 결혼한다. 이는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제 2차 삼두정치세력과 섹스투스 폼페이우스와의 평화가 깨졌음을 의미한다.
1월 16일에 포스팅했던 그 긴 아우구스투스의 역사중 일부분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옥타비아누스가 아직 세력이 크지 않아서 시칠리아의 섹스투스 폼페이우스와 어떻게든 타협하여 시간을 끌어야 할 필요가 있었을때, 섹스투스의 최측근인 루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의 딸 스크리보니아와 결혼하기로 하죠. 그리고 아우구스투스의 유일한 자녀인 대 율리아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정략 결혼의 끝이 좋을 리가 없는법 게다가 철저히 정치적으로 결혼했단 아내 스크리보니아를 거의 무시하다시피 합니다. 이 스크리보니아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스크리보니아의 흉상
1. 생애
출생연도만 기원전 70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스크리보니아의 아버지에 대해 여러 가설이 있지만 기원전 80년 법무관 루키우스 스키보니우스 리보라고 알려졌으며 현재 유력한 가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곤 하지만 아직 확실한건 없습니다.
일단 또 다른 기록에 따르면 스크리보니아는 총 3번 결혼했다고 합니다. 처음 두 남편은 집정관이었다는 사실만 밝혀졌을 뿐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아직도 명황하진 않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역사의 흐름에 주인공으로 차지한 사람의 역사 외에는 하찮게 다루어 지고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원전 40년 옥타비아누스와 타협하기로 결정하고 옥타비아누스와 3번째 결혼을 하게 됩니다.
2. 결혼이후
1) 딸과의 만남
하지만 그냥 위협을 넘길려는 목적으로 정략결혼은 했으니 결혼생활이 순탄할리 없었습니다. 옥타비아누스는 아내로써 존중하지도 그리고 아내로써 대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혼 2년째에 섹스투스랑 전쟁을 재개하기로 마음먹은 옥타비아누스는 스크리보니아와의 이혼을 단행합니다. 역사가들은 율리아가 태어난지 몇 달도 안되어서 스크리보니아와 이혼하과 리비아 드루실라와 재빨리 결혼해 버렸다고 합니다.
리비아 드루실라의 흉상
그 이후로의 삶은 어머니로써도 여자로써도 좋지 못했습니다. 일단 그 당시의 관습에 따라 친정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딸을 만나는 것도 허라받지 못했습니다. 이후 결혼하지 않고 조용히 지냈습니다. 그러나 딸 율리아가 신전에서 대놓고 남정네들과 성관계를 맺고 아우구스투스와 남편 티베리우스를 없애려는 음모를 꾸민 사실이 발각되어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판다테리아 섬으로 추방되자, “딸의 부도덕함을 참회한다” 라며 여자 노예 몇 명과 함께 딸을 따라가게됩니다. 어머니로서의 본능이발휘된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레기움으로 이송된 딸과 함께하다가 10년을 딸과 함께 있다가 딸이 사망하자 로마로 돌아왔습니다.
판다테이라섬
율리아의 것으로 추정되는 흉상
2) 그녀의 인척의 반란시도
서기 16년 그녀의 인척인 루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 리보와 마르쿠스 스크리보니우스 리보 드루수스가 티베리우스 황제를 도모하기 위한 음모를 꾸민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었습니다. 이때 마르쿠스는 스스로 단검으로 배를찔러 자결하고, 루키우스는 재판에 회부된 다음 혐의가 인정되어 처형됩니다. 이때 스크리보니아가 마르쿠스의 자결을 막기위해 한 말이 역사에 기록되어 있을 뿐 그 이후의 생애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알아볼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역사에 기록된 스크리보니우스의 말을 다음과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 할 일은 스스로 하는게 무슨 보람이 있는가? 재판에 출두해서 처벌을 달게 받아라.”
3. 평가
어찌보면 이 시대의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이름을 날리지 못한 사람의 역사는 잘 기록되지 않는점, 냉정한 권력앞에 따뜻한 사람의 생각은 살펴보기 힘들다는 점 등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도 나와있다 시피, 아우구스투스는 유일한 혈육이 딱 율리아에게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서는 가차없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 냉혹한 점이 더 잘 드러났던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