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고 재미있는 철학책입니다. 다양한 철학자, 심리학자의 이론을 다루다 보니 깊이를 느끼기는 어렵지만, 애초에 이 책을 쓴 목적이 일상생활과 철학의 접점을 찾는 것이기 때문에 난해한 설명보다는 각 이론의 핵심적인 내용과 우리 삶에 시사하는 바를 짧게 전달하는 저자의 방식이 효과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시사하는 바를 좀 억지로 끌어내는 듯하여 저자가 하려는 말이 이해가 안 되거나 이해가 됐다 하더라도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몇몇 대목은 곱씹게 되는데요.
특히 안티프레질에 관한 부분이 그렇습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지만 변화 상황에서 유연하게 대처하는 개인이나 조직의 능력은 측정이 가능하다고 보는 견해가 새롭습니다.
“...탈레브가 지적하는 ‘반취약성’이라는 개념이 우리가 생각하는 성공 모델이나 성공의 이미지를 바꾸라고 재촉한다는 걸 알게 된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자신이 속한 조직과 경력을 최대한 탄탄하게 만드는 것이 성공이라고 믿는 성향이 있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앞일을 예측하기 어렵고 불확실성이 높은 사회에서 겉으로 보기에 강건해 보이는 시스템이 실은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이 점점 더 드러나고 있다.” pp. 190-191.
안티프레질은 심리학적 용어로 회복탄력성 정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한 분야에서만 커리어를 지속하는 것이 미래 변화에 프레질하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에 걸쳐 인적 자본과 사회 자본을 분산시키는 전략을 택하라고 합니다.
한 가지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는 것과 이런 분산 전략이 배치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으나, 양립 가능하다고 봅니다. 깊이 있게 한 우물 파면서도 에너지를 조금 아껴 스스로의 관심이 향하는 어떤 분야에 지속적으로 그 에너지를 투자할 수도 있는 것이고요. 그런 투자들이 모여서 어떤 식으로 안티프레질을 향상시킬지는 알 수 없지만, 변화하는 상황에 대비하려는 태도 자체는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노력하면 보상 받는다는 생각이 환상일 수 있다는 멜빈 러너의 ‘공정한 세상 가설’도 흥미롭습니다. 노력하면 보상 받는다고 생각과 세상은 공정해야 한다는 생각은 개인이 자율성과 통제감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하는 일종의 자기기만입니다. 하지만 실상 세상은 공정하지도 않고 노력하면 늘 보상 받는 것도 아니죠.
책에서는 노력을 해서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를 대비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컴퓨터 게임 26%, 지적 전문직 1%). 노력해서 성과를 얻을 수 있는 분야라 하더라도 개인의 지적 능력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컴퓨터 게임에 요구되는 지적 능력들보다 다른 지적 능력이 더 발달한 사람은 설령 비슷한 성과를 낼 수 있다 하더라도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겠죠.
핵심은 공정/불공정, 노력/노력없음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게 되면 원망이 깊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흙수저 집안에서 엄청나게 노력했음에도 서울에 있는 대학을 못 갔는데 누구는 별다른 노력도 없이 가진 것 많은 부모 밑에서 여러모로 경쟁우위 점하다가 서울대 갔다고 생각하면 세상이 공정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일수록 원망이 깊어지게 마련입니다.
이런 원망을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 등을 통해 사회변화의 동력으로 승화시킨다면 의미 있는 일일 테지만, 대개 개인의 한탄과 열등감에서 끝나고 말죠. 이 책에서는 니체의 르상티망, 즉 시기심이라는 감정으로 설명하기도 하는데, 사회변화까지 가지 않더라도 시기심을 개인 발전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고 봅니다.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 그러니 노력해도 안 될 수 있지만 될지 안 될지 모르는 것이니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 보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겨야겠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건강한 태도 아닐까요.
이상이 제가 이 책 읽으면서 한 번 더 곱씹어 봤던 대목들입니다. 책을 읽다가 관심 있는 철학자나 심리학자가 생긴다면 그 학자의 원전을 읽어 봐도 좋을 것 같고, 난해한 철학사 책을 읽다가 포기한 적이 많았다면 이 책이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대안일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