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 '제주 4 · 3 평화공원'을 일정에 넣는 일이 망설여졌다.
마음이 너무 무거워질것같아서.
끝내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절물자연휴양림으로 가는 길.
43평화공원 표지석을 보고
그래도,
라는 마음으로 차를 돌렸다.
평일 낮 시간의 공원은 이름 그대로 평화로웠다.
드문드문 마주치는 관람객, 해안가 마을은 겉옷이 필요없을 만큼 포근한데,
눈이 쌓여있는 중산간의 평화공원.
온통 하얗고, 고요한 가운데 커다란 까마귀가 매처럼 날고 있는 곳.
그게 4 · 3 평화공원의 첫인상이었다.
때마침 다큐영상 상영이 방금 시작됐다고 해서 13분짜리 다큐멘터리를 시청했다.
짧지만 아주 강렬한, 그리고 전시장 관람전 시간이 맞는다면 꼭 시청하길 권하는 다큐멘터리다.
나중에 찾아보니 4 · 3 평화공원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다.
[youtube
출처 - 4 · 3 평화공원 홈페이지
http://jejupark43.1941.co.kr/pages.php?p=2_3_1_1
전시장은 아주 잘 기획돼있다.
역사적 사실을 나열했다기 보다 한편의 이야기를 듣는 형태다.
프롤로그로 시작해, 에필로그로 끝 난후 야외 공원으로 이어진다.
동선에 잘짜여진 전시장을 돌아보면
제주 4 · 3 사건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왜 시작됐는지,
왜 유독 제주만 그렇게 잔혹하게 탄압한건지,
얼마나 잔인했고,
얼마나 처절했는지, 감히 짐작하는 것만으로도
무섭고 무겁다.
간략히 정리하자면,
평화롭게 진행됐던 3 · 1 기념대회 후 경찰이 타고 지나가는 말에
어린아이가 치이는 사고가 일어났다.
주민들이 거세게 항의하자,
경찰은 군중을 향해 무차별 발포를 하고,
어린아이를 안고 있던 여인을 포함해 6명이 희생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에 발포 사건에 대한 항의와 사과를 요구하며
민·관·직장인 95%가 참여한 총파업이 시작된다.
제주도청으로 시작해 법원, 검찰, 관광서, 운수회사, 학교, 금융기관, 상점
제주 출신 경찰관까지 제주도민 대부분이 파업에 동참했다.
그 사건을 계기로 미군정은 제주도를 일명 '빨갱이'섬으로 간주한다.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반대했던 제주도민들은
남한 단독 선거날 산에 올라 투표를 '보이콧'한다.
육지에선 95%이상의 투표율을 기록했는데, 제주만 투표율 미달로 선거가 무효처리 되면서 미군과 이승만 정부는 제주를 초토화 시키는 작전을 지시한다.
그날부터 제주는 거대한 감옥이자 학살터가 된다.
'해안선 5km 이상 안쪽으로 들어가면 모두 폭도로 간주하고 사살한다.'
그렇게 시작된 제주 4·3은 제주도민의 1/10이 희생당하고,
무려 7년 7개월 만에 종식된다.
체제갈등과, 남북대립, 이념 싸움에
어린아이, 노인, 평범한 마을 사람들이 잔인하게 희생당했다.
이것은 단순한 역사적 사고가 아니라
대학살 사건이다.
당시 학살을 피해 숨어지내던 동굴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공간에선,
마음을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어떻게 같은 민족이, 아니 어떻게 사람이.
안내문을 읽는 것 조차 버거워 질때 쯤
야외로 연결되는 길이 나온다. 아주 작은 공간에 심어져 있는 나무.
해원의 폭낭
제주의 마을 어귀에는 언제나 정자목이 있어 지나는 이들을 반긴다.
이 작은 공간은 관람객을 맞이하고, 희생자를 달래는 쉼터다.
그리고 사과,
슬픔을 말할 수 조차 없는 오랜 시간의 은폐와 왜곡.
70년대 <순이삼촌> 이라는 소설을 시작으로 조금씩 4·3의 진상규명에 대한 목소리가 생겨나고
많은 이들의 노력끝에 사건발생 55년만인 2003년, 故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차원 첫 공식사과를 한다.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도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사과의 말 한마디로 그 긴 세월과 죽음을 위로 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 현대사의 잘못된 과거를 정부가 나서서 진상을 규명하고 사과를 한 것은 상징적인 일이다.
전시는 자연스럽게 희생자를 참배하는 위령제단과 둥근 추모광장으로 이어진다.
동백이 다 저물 만큼 봄의 입구에 들어섰는데
하얗게 눈덮인 추모광장은 현대미술작품 같았다.
사람이 거의 없는 추모광장에서 외국인 노부부를 만났다.
한국 사람도 잘 찾지 않는 곳을 찾아
역사를 이해하려는 외국인을 보면
감사하고 부끄러워진다.
넓은 광장을 둘러싼 표석엔 희생자와 행불자의 이름, 당시의 나이가 새겨져있다.
1세, 이름도 없는 누군가의 아기.
86세, 동굴로 숨어들기도, 도망가기도 힘들었을 노인.
표석에 새겨진 담담한 이름을 읽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나는 곳이다.
너무 급히 와서 꽃 한 송이 준비해 오지 못한 게 죄송스러웠다.
눈이 다 녹고나서, 좀 더 포근해지는 날
국화 한송이를 사들고 다시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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