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W 무서운 이야기 3. (실화) 폐도]

in kr-daily •  7 years ago 

20여 년 전, 내가 실제로 겪은 일이다. 하지만 정작 나도 지금까지 이 일이 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당시 대학생이던 나는 정말 의미 없는 나날만을 보내고 있었다. 꿈이고 목표고 아무것도 없이, 동아리나 과 활동에도 참여하지 않은 채 그저 산만하고 나태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유일하게 하는 것이라고는 나랑 똑같은 잉여 인간이던 친구 건양, 시진과 함께 드라이브를 하는 것뿐이었다.
그나마도 점차 질려가기 시작해서 기왕 다니는 거 평범한 길 말고 폐도를 찾아다니게 되었다.
폐도란 대개 아무도 쓰지 않는 길이나, 이미 폐쇄된 길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개척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차로 갈 수 있는 곳이나 돌아다녔기에 폐도를 찾아다니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더 좋은 길이 나서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이나, 어디로 연결된 건지도 모를 작은 샛길 같은 곳을 건양이 차를 타고 돌아다니는 것이다.
웬만한 일은 금세 싫증을 내고 흥미를 잃는 우리였지만, 이상하게 그 폐도 탐색만은 정말 재미있었다.
폐도를 따라 달리며 보이는 비일상적인 광경이, 꿈도 희망도 없던 우리와 맞아떨어졌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어느 날, 건양이가 "재밌는 곳을 찾아냈어. 지금 같이 가보지 않을래?"라고 제안을 했다.
새로운 폐도를 찾아냈다는 것이다. 오후 2시를 넘어갈 무렵이었지만, 그날 다른 예정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기에 나와 시진이는 당연히 동행하기로 하고 건양이의 차에 올라탔다.
그곳은 대학교에서 차를 타고 30분 정도 걸리는 산길이었다.
차가 자주 다니는 큰 도로에서 비스듬하게 옆으로 좁은 길이 나 있었다.
거기로 들어서자 땅에 잡초가 가득하고, 나뭇가지나 돌이 잔뜩 깔려 있었다.
누가 봐도 아무도 다니지 않는 길이다. 이런 길이 있었나 싶어 멍하니 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고작 100m 정도 달리자 금세 막다른 곳에 다다르고 말았다.

"엥? 겨우 이게 끝이야?"

나와 시진이는 무심코 불만을 토했지만, 건양은 득의만만한 얼굴로 옆을 가리켰다.

"저기 봐."

그곳을 보자, 도로 옆에는 산사태 방지용 콘크리트 둑이 쌓여 있었다.
그런데 도중에 그 둑이 끊겨있었고, 그 사이에는 철망이 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철망 뒤로 길이 계속 이어져 있었다.

"여기로 가보자구."

분명 철망은 쳐 있었지만, 단순히 철사로 고정해 놓은 곳에 불과했기에 잘라버리면 간단히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터였다. 그리하여 건양이 준비해 온 니퍼로 철사를 자르고, 우리는 차를 통해 폐쇄된 길 안으로 들어섰다. 솔직히 뭔가 나쁜 짓을 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철조망이야 돌아오는 길에 다시 철사를 연결하면 될 일이니까. 게다가 이렇게 숨겨진 길을 자동차에 탄 채 오래 나아가지도 못할 것이라고 험한 꼴이 나올 것이란 예상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예상과는 다르게 길은 오히려 아까 지나왔던 길보다도 깔끔했다.
우리는 그대로 차를 타고 좁은 산길을 5분 정도 신중하게 달렸다. 잠시 뒤, 눈앞에 터널이 나타났다.
터널이라기보다는 아래를 지나갈 수 있도록 중간을 비운 다리 같은 느낌이었다. 높이는 고작 4-5m 정도였다.
다행히 차가 지나가기에는 충분한 폭이었기에 우리는 그대로 차를 타고 거기를 지나갔다.
터널을 지나자 길이 조금 거칠어지면서 아스팔트 위에 돌이 여기저기 튀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갑자기 시진이 소리를 질렀다.

"야, 잠깐 멈춰봐! 저기 좀 봐!"

시진이 가리킨 곳은 차의 뒤쪽, 아까 빠져나온 터널 쪽이었다.
그곳에는 터널의 입구를 가리는 것처럼 신사의 기둥 문이 세워져 있었다.
바깥쪽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아, 터널을 지나가며 자동으로 기둥 문도 통과하게 한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왠지 기분이 나빠진 우리는 돌아갈까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일단 갈 수 있는 곳까지는 가보기로 했다.
거기서 500m 정도 더 갔을까. 지금까지는 길 상태가 좋지 않을지언정 아스팔트로 포장되었던 길이 마치 경계선이라도 있는 것처럼 뚝 끊겨서 그곳부터는 비포장 흙 도로가 이어졌다.
기분 나쁘게도 아스팔트와 흙의 경계선 좌우에 무슨 사당 같은 게 2개 있어서, 거기를 경계로 뒤가 포장도로고 앞이 비포장도로였다. 이쯤 되자 이 앞에 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불안이 섞여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일단 어디가 됐든 끝을 봐야겠다는 생각에 돌아갈 생각은 사라진 채였다.
다행히 비포장도로가 바뀐 후에도 길의 폭은 똑같았고, 나무가 쓰러져 지나가지 못하거나 하지도 않았다.
다만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차의 바퀴 자국 같은 게 없던 것이나, 폐쇄된 길치고는 너무 깨끗하다는 걸 그때 눈치채야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그 길을 달리자 지금까지 왔던 산길이 마치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탁 트인 곳이 나왔다.
우리 차가 달리는 길 외에는 좌우로 그저 광활히 펼쳐진 광야뿐이었다.
논 같이 보이기도 했지만 누가 경작한 것 같은 모습도 전혀 없었다.
문득 하늘을 보니 구름도 하나 없이 푸르고 맑아서, 그 경치에 감탄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렇지만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도대체 여기는 어디인 걸까.
폐쇄된 길 안쪽이니 망한 마을이라도 있는 것일까?
우리가 평소 살던 곳에서 그리 떨어진 곳도 아닌데 이렇게 넓고 텅 빈 땅이 있다는 게 이상하고 놀라웠다.
도대체 이 오솔길은 어디까지 계속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할 무렵, 길 앞쪽에서 검고 작은 건물이 보였다.
가까워짐에 따라 그것은 점점 모습이 커져서 형태가 확실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초가집인 듯했다... 아니, 단순한 초가집이 아니라는 걸 금세 알 수 있었다.
건물이 비정상적으로 컸다. 이렇게 큰 초가집은 난생 본 적도 없을 정도였다.
학교 체육관만 하달까. 그보다도 훨씬 큰 것 같았다.
도대체 왜 폐쇄된 길 안쪽에 이렇게 커다란 건물이 있는 걸까.
게다가 그 건물 앞에 도착해서야 안 것이지만, 지금까지 온 길은 이 건물까지 일직선으로 이어져 있을 뿐 도중에 곁가지로 새는 길은 전혀 없었다. 즉, 이 건물이 이 길의 종착점이었던 것이다.
황폐한 마을인가 싶었지만, 그 건물 외에는 다른 건물도 없었다.
즉 우리가 지금까지 타고 온 길은 그저 이 건물에 향하기 위해 만들어진 길이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건물 앞에 차를 멈추고, 차에서 내렸다.

무척이나 상쾌했다. 공기는 맑고 하늘은 구름 하나 없이 새파랬다. 새소리나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봄날처럼 딱 좋은 기온에 계속 여기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눈앞의 거대한 초가집을 보면 그런 생각은 싹 사라진다. 도대체 이 건물은 뭘까...
초가집은 대개 사람이 살지 않으면 쇠락해간다고 들었지만, 그런 느낌은 전혀 없었다.
낡고 전체적으로 거무스름한 나무집이었지만, 썩어들어갔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누가 지금도 사는 걸까?

"안에 들어가 볼까?"

내가 제안하자, 건양이는 동의하고 나섰지만 시진은 썩 내켜 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난 우선 건물을 한 바퀴 돌아보고 올게."

나와 건양이는 둘이서 건물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건물의 문은 무거웠지만 잠겨있지는 않았다.
안을 들여다보자 곰팡내 같기도 하고, 오래된 광에서 나는 것 같기도 한 독특한 냄새가 났다.

"실례합니다! 누구 계신가요?"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아무 대답도 없다. 역시 아무도 없구나 싶어 안심한 우리는 안으로 들어가 봤다.
어슴푸레하기는 하지만 문밖의 빛이 들어와 안의 모습이 보인다. 나무판자가 깔린 휑한 공간이 있었다.
선반 같은 게 벽에 붙어 있지만,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왼쪽 벽에는 미닫이문이 있어 그 너머로 또 방이 있는 듯했지만,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그저 마루와 벽뿐이었다.
위쪽은 어두워서 잘 안 보였지만, 천장까지 텅 빈 것 같았다. 나는 용기를 내 미닫이문을 열어보기로 했다.
이미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멀리 사라진 후였다.

"실례합니다. 아무도 안 계세요?"

다시 확인한 뒤 천천히 문을 열었다. 안은 의외로 밝았다.
채광창 같은 게 위쪽에 여럿 있어서 그런 지 입구 쪽보다 훨씬 밝았다.
하지만 그 방은 단순히 밝은 것뿐 아니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바로 깨달았다.
우선 방이 엄청나게 넓었다. 무슨 체육관 하나 정도는 되는 넓이였다.
그리고 그 넓은 공간 안에 균등하게 5개, 비정상적으로 굵은 기둥이 바닥에서 천장까지 닿아 있었다.
굵기는 3m 정도 될 법하고, 길이는 10m에 육박할 수준이었다. 그런 나무기둥이 5개나 있었다.

"야... 이렇게 큰 나무가 우리 나라에 있긴 하냐...?

건양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큰 기둥은 난생처음 보는 것이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 이렇게 큰 기둥을 세웠나 싶어서 주변을 바라보는데 건양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뭔가 하고 보니 5개의 기둥 중 한가운데의 기둥에, 뭐라고 쓰여 있는 부적이 붙어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기둥에 못이 박힌 것으로, 수도 없이 많이 박혀 있었다.
글자는 붓으로 쓴 것으로 한자나 무슨 기호처럼 보였지만, 뭐라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와중 건양이가 "뭐가 붙어있어."라고 말했다.
자세히 보니 확실히 부적과 못 사이에 무언가 말라붙은 덩어리 같은 게 함께 박혀 있었다.
뭐가 박혀 있는 걸까 싶어서 우리는 거의 동시에 시선이 위로 향했다. 그리고 우리는 금방 그 해답을 얻었다.
박혀 있던 것은 사람의 귀였다. 수를 헤아릴 수도 없는 사람의 귀가 부적과 함께 기둥에 박혀있었다.
아래쪽은 썩어 문드러지거나 말라붙어 뭔지 알아볼 수 없었지만, 어째서인지 위쪽에 박혀 있는 귀들은 생생해서 바로 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 천 개는 훌쩍 넘었을 것이다.
게다가 더욱 두렵게도 위쪽에는 박힌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 귀도 있었다.

"도망치자!"

"으아아아아악!!"

우리는 미친 듯이 달려서 건물 밖으로 나왔다. 여기가 어딘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위험하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곧바로 차에 타고 도망치려 했지만, 시진이가 보이지를 않았다.
나와 건양은 전력으로 달려 건물 뒤쪽으로 향했다.
워낙에 큰 건물이다 보니 뒤쪽으로 가는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건물 뒤쪽까지 가니 거기에 시진이 있었다.
하지만 왠지 모습이 이상했다.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우리도 시진이처럼 그 자리에 우뚝 서고 말았다.
건물 뒤쪽은 그저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평야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간단한 받침대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한 줄로 쭉 늘어서 있었다.
받침대 위에는 초가 2, 3개씩 불이 붙여진 채로 빛나고 있었다. 그것이 지평선 저 너머까지 이어져 있었다.

"뭐야, 이게!"

"야, 여기 위험해!"

나와 건양의 목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렸는지 시진이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나와 건양이가 전혀 신경 쓰지 못하던 것에 관해 말했다.

"야.. 여기 해는 어디에 있는 거야...?"

"해...?"

그러고보니 하늘은 푸르고 맑아 구름 한 점 없었지만, 태양은 어디에도 눈에 띄지 않았다.
하늘은 밝은데 그 밝기가 하늘 전체에 걸쳐 똑같았다.

"저기 난 처음부터 여기가 이상하다 싶었어... 여기 너무 조용하잖아. 너희 여기 온 다음 한 번이라도 새나 다른 동물 소리 들은 적 있어? 그뿐 아니라 여기까지 오는 길에는 풀 한 포기도 없었지."

시진이는 벌써 반쯤 울고 있었다. 우리는 어떻게든 달래서 차로 향했다.
도중에 건물의 입구가 눈에 들어왔는데 문은 닫혀 있었다. 분명 우리가 문을 열어놨는데...
하지만 그런 것보다는 도망치는 게 우선이었다.
건양이가 벌벌 떨면서 운전해 우리는 겨우 처음 들어왔던 폐도 입구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국도로 돌아오자 해가 서쪽으로 뉘엿뉘엿 지는 것이 보였다.
그걸 보자 겨우 원래 세상에 돌아왔다는 게 실감 났다.

그 후 우리 셋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난 적은 없다. 하지만 그날 체험했던 일은 세 명 모두 기억하고 있다.
나중에 그 폐도 입구 근처를 우연히 지나가게 되었는데, 전에 들어갔던 좁은 길 자체가 튼튼한 문으로 가려져 있어 도저히 지나가지 못하게 되어있었다.
물론 지나갈 수 있었다 하더라도, 두 번 다시 그 길로 갈 생각은 없다.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우리말 맞춤법 검사기에 의해 powerknow가 직접 검토한 후 게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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