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규-즐거운편지 감상

in kr-literature •  6 years ago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즐거운편지, 황동규

‘소나기’ 황순원의 아들로 태어나 매우 젊은 나이에 문단에 등단한 황동규. 천재일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이 천재적인 시인도 연애시를 써 갈기는데는 그 대상이 절실히도 필요했던 것이다. 아니라면 그 대상이 있어 시를 쓴 것이겠지.

이런 감정은 참 오랜만이다. 문학을 하겠다고 시를 줄줄이 읽으면서도 감상은 하지 않은지도 오래다. 윤동주며 이육사며, 나희덕이며 하는 그런 시인들의 저항시, 관념적인 시에 사로잡혀 문학이란 뭔가 가르침을 줘야만 하는 것이라 생각한것이다. 내 감정은 담지 못하고.

사랑한다는 말 못해 힘든 감정을 글로 담아낸 이 천재 시인은, 그래서 천재인 것이다. 감히 사람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낼 줄 알았기에, 그래서 천재인 것이다. 이 작가의 전체적인 작품성향이 알고보니 관념적이든 어떻든 상관 없겠다. 황동규의 감정에 솔직했던 황동규는, 그래서 천재인 것이다.

1연에 주목하자. 시에서 ‘나’는 해가 늘 지듯이 그대를 늘 생각한다. 생각만 하고 기다림만을 지킨다. 그러다 그대를 부르는 것은 비로소 그대가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 그때이다. 확실한것은, 상대가 평온할때는 사랑만하고 생각만하던 ‘나’는 그대가 힘겨워할때에 적극적인 태도로 변할것을 다짐한다. 이것이 헌신적이라는 것이다.

이번엔 2연에 주목한다. ‘나’는 믿고있는것이 있다. ‘나’의 사랑이 그칠것을 믿는다. 이것을 체념이라 할까. 나의 사랑은 한없이 잇닿은 기다림이지만, 이 또한 그칠것으로 믿는다. 심지어 믿는단다. 그칠것을 아는것으로도 모자라, 그칠것으로 믿는다. 이것은 ‘나’의 의지로 사랑을 이어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보여진다.

그래서 황동규는 이 시의 ‘그대’ 와 사랑을 이루어냈을까. 연애시를 쓰며 느낀 감정이 대상에게 전해졌을까. 그것이 의미가 있을까. 이 편지를 쓰며 이미 즐거웠을이에게 더 이상 어떤 의미있는 일이 존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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