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과학사의 1세대로 김영식, 전상운, 송상용, 박성래 등이 꼽힌다고 알고 있다. 송상용 교수를 직접 만나본 것 빼고는, 과학사가로 알고 지내는 인물은 홍성욱, 김태호 교수 정도다. 마음을 다해 존경하는 한국의 과학사가는 없다. 마음을 다한다는 말은, 한국의 과학을 바라보는 관점과, 학자로서의 궤적 두 측면 모두를 존경할 만한 인물이 없다는 뜻이다. 학자로서의 성실성이나 한국처럼 과학사의 불모지에서 과학사를 하나의 확립된 학문체계로 만든 점에서, 나는 1세대 한국 과학사가들을 존경한다. 특히 김영식과 전상운처럼 과학자로 시작해 역사에 관심을 가진 이들을 존중한다.
다만 전상운의 <한국과학기술사>, 조셉 니덤이라는 불세출의 학자가 일구어 놓은 <중국의 문명과 과학>이라는 하나의 학문적 패러다임을 그대로 한국으로 옮겨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역사에서 무언가를 끄집어 찾아내, 서구 과학문명에 뒤쳐졌다는 컴플렉스를 지우고 싶어 만들어진, 그 학문체계에 동의하지 못한다. 과학은 17세기 유럽에서 단 한번 꽃피웠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근대과학은 그 우연한 혁명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한반도엔 근대과학이 자생적으로 꽃피지 않았다. 우리가 보고 있는 근대과학의 모든 것은, 서구에서 수입한 것이다. 한국 과학사의 1세대는 그 사실을 철저히 인정하지 않고 반항하며 시작했다. "우리의 역사에서도 과학기술의 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니덤은 중국에서 그런 일을 해냈다. 우리도 해보자. 그것이 한국 과학기술사의 본령일 것이다." 이런 종류의 민족주의적 관점의 과학사는, 한국의 과학사가 과학과 유리되는 이유가 된다. 한국 과학의 역사는 매우 짧다. 그리고 그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이런 관점에 완벽하게 반대한다.
전상운 선생이 별세하셨다. 슬픈 일이다. 컴퓨터에서 그의 이름으로 검색을 한다. 두어개의 파일을 찾는다. 조셉 니덤 추모 기념 한국과학사학회지에 그가 실었던 글이 보인다. 전상운 ( Sang Woon Jeon ), "발표요지 ( 1995. 3. 1 - 1995. 8. 31. ) - 조셉 니덤 ( 1990 - 1995 ) 추모강연회 1995. 5. 27 : Joseph Needham 을 추모함 (Josep Needham Memorial Session : Eloge)", 『한국과학사학회지』 17권 2호 (1995), 182-183이라는 글이다. 고인이 된 학자가 고인이 된 학자를 추모하며 쓴 글을 읽는다는 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내 죽음은 학계에 어떤 의미가 될까. 계속 고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는 조셉 니덤을 직접 만나 사사받은 인물이며, 두말할 나위 없이, 니덤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학자다. 그의 글로 니덤이 한국의 인삼차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니덤의 학문세계가 전상운이라는 학자의 학문 여정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의 마지막 작품은 일관되었다. 한국의 역사 속에서 서구의 근대과학의 씨앗을 찾는 일. 나는 그런 일에 관심도 없고, 그 관점이 잘못되었다고 믿지만, 그 관점의 충돌을 두고 그를 만나 토론해 보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같은 한국 과학사의 1세대로 불리는 김영식 교수의 삶은 그가 살아 있을 때 이미 조명된 것으로 안다. 전상운 교수의 삶은 그의 죽음 이후에나 조명되어야 하니 슬픈 일이다.
전상운 교수는 그의 세대를 살았다. 그런 학자의 삶을 존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