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와 발명가 그리고 특허 이야기에 이은 벨 연구소 이야기 입니다

in kr •  7 years ago 

https://steemit.com/kr/@ai1love/4slhsb

전화기와 발명가 그리고 특허 이야기에서 벨은

뉴욕에서 1885년 미국전화전신회사(AT&T Corp.)를 설립해서

전화사업을 합니다

1878년 코네티컷 뉴 헤이번에 최초의 전화교환국을 세우고

지속적으로 시설을 확장시켜나가 3년만에 미국 주요 도시와

마을에는 전화교환국이 생기게 됩니다

미국의 전화 시스템을 독점하게 된거죠

AT&T사는 20세기 초엽 미국 정부와 협상의 결과 전화사업의 독점권을

확보합니다

벨의 특허권이 만료된 1894년~1904년에는 6000여개가 넘는 전화 회사가

생겼지요

1970년대 초 반독점소송으로 인해서 회사가 해체되기도 하지만

지역 전화회사 8개와 연구개발 부분으로 분리되고 AT&T사는

장거리 서비스만 담당하는 회사가 됩니다

1925년 벨 전화연구소를 설립해서 기술을 개발합니다

1946년에 이동전화 서비스 시범을 보였다고 하네요

(헉.... 40년대에...)

1990년대부터는 케이블 회사들을 사들여 인터넷 사업에도

발을 넓히게 됩니다

2006년부터는 이동통신사를 인수하여 모바일 서비스도

실시하고 있습니다

벨연구소는 1925년 설립되었으며, 현재까지 총 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세계최고의 연구소 중의 하나입니다

1937년(노벨물리학상-클린턴 데이비슨),

1956년(노벨물리학상-John Bardeen, Walter H. Brattain, William Shockley)

1977년(노벨물리학상-공동수상-필립 앤더슨)

1978년(노벨물리학상-Arno A. Penzias, Robert W. Wilson)

1997년(노벨물리학상-스티븐 추)

1998년(노벨물리학상-Horst Störmer, Robert Laughlin, Daniel Tsui)

2009년(노벨물리학상-공동수상-Willard S. Boyle, George E. Smith)

2014년(노벨화학상-공동수상-Eric Betzig)

벨 연구소는 처음 서립할때 웨스턴 일렉트릭의 연구부문을 이어받은

것으로 AT&T와 웨스턴 일렉트릭이 각 50%씩 출자하여 설립하였으나

1925년에 웨스턴 일렉트릭에 완전히 매각하되었고, 1996년에는

알카텔-루슨트에 매각되었다가 2016년에 노키아가 알카텔-루슨트

를 인수하여 현재는 노키아의 자회사가 되었습니다

명칭도 노키아 벨 연구소가 되었지요

https://www.bell-labs.com/

트렌지스터의 최초 모델인

BJT(Bipolar Junction Transistor)는 1956년 윌리엄 쇼클리

(William Bradford Shockley)와 존 바딘, 월터 하우저

브래튼과 공동발명한 것입니다

쇼클리는 1936년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벨 연구소에 합류했습니다

바딘과 브래튼이 1947년 12월 트랜지스터를 개발하는데 성공하자,

자신의 전기장 효과를 이용한 아이디어까지 각자 특허를 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벨 연구소의 변호사는 쇼클리의 전기장 효과 원리가 1930년에

다른 사람에 의해 특허출원된 것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아내고 특허가

거부될 위험을 회피하고, 바딘과 브래튼의 디자인에만 적용해서

특허를 내게됩니다.

이후 샌드위치 형태의 트랜지스터 개념을 생각해내고 지속적인

연구를 한 결과 1951년 접합 트랜지스터를 발명하고, 이 발명의

특허권을 가지게 되지요

쇼클리는 대중 친화적인 인물이라 대중매체에서는 바딘과

브래튼 보다는 쇼클리를 더 추켜세웠고 그들과 사이가

벌어졌습니다

쇼클리는 평판이 안좋아 경영진으로 승진하지 못하고

연구자로서만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1953년 벨 연구소를 떠나서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으로 자리를 옮기고 벡만인스트루먼츠(Beckman Instruments)

에서도 일자리를 얻었고, 그의 지원으로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Shockley Semiconductor Laboratory)를 설립하게됩니다

연구소를 운영하는 과정에서도 연구원 8명이 회사를 그만두고

페어차일드 카메라 & 인스트루먼트(Fairchild Camera & Instrument)로

옮겨서 페어차일드 반도체(Fairchild Semiconductor)를

설립하게 되는데, 쇼클리는 이들을 ‘배신자 8인’이라고도 불렀다고 하네요

‘배신자 8인’에는 나중에 페어차일드를 떠나 인텔을 차린 로버트

노이스(Robert Noyce)와 고든 무어(Gordon Moore), 그리고 실리콘

밸리 최고의 벤처캐피탈로 성장하게 되는 KPCB(Kleiner Perkins Caufield &

Byers)를 설립한 유진 클라이너(Eugene Kleiner)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페이처일드 반도체는 인텔 뿐만 아니라 내셔널 세미컨덕터

(National Semiconductor)와 어드밴스드 마이크로 디바이시스

(Advanced Micro-Devices)도 페어차일드에서 갈라져나온

회사이고, 이런 반도체 회사의 급성장으로 실리콘을 재료로

한 산업이 샌프란시스코 남쪽의 밸리지역을 번성하게 만들면서

이 지역을 실리콘 밸리라고 부르기 시작하게 됩니다

실리콘 밸리의 탄생 뒤에도 벨 연구소가 있었네요

벨연구소에서 처음 개발한 반도체는 게르마늄 반도체였습니다

BJT(Bipolar Junction Transistor)라고 부르는데 이 방식은

회로가 복잡해지면 제조가 어렵다는 점이 있어서

새로운 방안을 찾고 있었지요

대량생산이 어려웠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트렌지스터 방식에서 집적회로 방식으로의 변환을

만들어 낸것은 텍사스인스트루먼트의 잭 킬비입니다

1958년 9월 12일 최초의 집적회로 시연이 이루어지지요

페이차일드 반도체에서는 노이스도 1959년 1월 집적회로

를 만들어냈습니다

잭 킬비는 집적화 시키는 방식에 대한 것을

노이스는 부품의 배치와 연결을 연구한것이지요

BJT(Bipolar Junction Transistor)는 대량 생산이

어려웠는데 그걸 해결한 것이 MOSFET입니다

MOSFET는 Julius Edgar Lilienfeld가 1926년에 출원했지만

접합형 트랜지스터(BJT)가 나온 1947년까지도 기술력 부족으로

인해 이론을 실제 생산에 적용시킬수 없었습니다

이후 John Atalla 와 Dawon Kahng에 의해 1960년이 되어서야 실제

생산이 이루어지지요

벨연구소에서 근무하던 Dawon Kahng(한국명 강대원)은 John Atalla의

팀에서 MOSFET 개발을 하게 됩니다

강대원 박사가 1960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전계효과 금속산화물반도체 (MOS-FET).

강대원 박사는 벨 연구소에 근무하면서 마틴 아탈라(Martin Mohammed John Atalla)

와 금속-산화층-반도체-전계효과-트렌지스터(MOSFET)를 최초로 개발하

게됩니다

이 MOSFET 형태는 지금있는 집적회로를 이루는 기본적인 회로 형태

입니다

반도체 회로 안에 트렌지스터가 100만개가 들어있다고 하면 저런 집적회로를

100만개 집어넣은 것이지요

MOSFET가 없었다면 작은 집적회로는 존재하지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http://www.hellodd.com/?md=news&mt=view&pid=60800

강대원 상에 대한 기사입니다

그는 1967년에는 부상 갑문형 비휘발성 반도체 기억장치

(Floating Gate non-volatile semiconductor memory)를 최초로 개발하였는데

이는 오늘날의 낸드 플레시 기술의 원천 기술입니다

1988년에 벨 연구소를 은퇴하고 곧이어 미국 뉴저지 주에 설립된 NEC연구소의

초대소장으로 부임하였고

1992년 5월 13일 학술대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중 뉴저지

인근 공항에서 대동맥 동맥류(動脈瘤, aneurysm) 파열로

쓰러져 응급수술을 받은 후 합병증으로 사망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MOSFET이 없었다면 지금의

소형 전자기기들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고 있지요

이런 반도체 소형화에 한국인이 있었단거 전혀

몰랐던 사실이지요?

집적회로를 발명한 잭 킬비가 2000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단 점에서...

살아계셨다면 공동 수상 가능성도 있었는데 말이죠

하여간 벨 연구소는 그렇게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내기도하고

수 많은 첨단 기술을 개발하기도 합니다

...

다음은.... 또 다른 한국 사람과 벨 연구소의 인연을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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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다시 파이팅해요!
호출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저런 엄청난 한국분이 계셨네요. 진짜 노벨상 수상에는 '수명'도 중요한 요소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 사진 위에 "강대원 상"은 오타인가요? ^^

국내에서 강대원 박사를 기념하기위해
반도체 관련 뛰어난 학자에게 주는 상을 만들었다는 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