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정기적으로 '지혜의 책(Book of wisdom)'이라는 이름으로 읽으면 도움이 되실만한 책을 소개하는 글을 올리고자 합니다.
이상한 정상가족 -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를 그리며
이상한 정상 가족 후기
우리 사회에 많은 사회 이슈가 있지만 그 중 중요한 것 두 가지를 뽑자면, 성(Sex)과 저출산(低出産)이라고 생각한다.
팟캐스트 '프시케'를 하면서, 여러 이슈를 다루는 과정에서 나는 위 2가지 이슈에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갈등, 사회 문제가 모두 하나의 잘못된 패러다임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건 '정상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이다.
'정상가족'은 알면 알수록 잘못된 이데올로기이다. 또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맞지도 않다. 그러나 이 이데올로기는 가부장제가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기간만큼, 우리나라 사람들 머리에 고정관념으로 박혀 있다. 우리나라 사람 중 대부분은 여기서 벗어나는 것을 좋지 않은 것으로 여긴다.
이 잘못된 이데올로기를 깨지 못하는 한, 모든 저출산 정책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이 이데올로기를 해체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결국 존재하는 수많은 개인 중에 일부만을 정책의 대상자로 바라볼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될 리가 없다. 또한 많은 성에 대한 잘못된 관념들이 이 잘못된 이데올로기에 기반하여 생성된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렀을 때, 만난 책이 '이상한 정상 가족'이었다.
이 책은 나보다는 훨씬 정제된 언어와 구체적 사례,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잘못된 패러다임들을 지적한다.
이 책에 대한 얘기를 하기에 앞서 소개하고 싶은 기사가 있다.
"출산할 권리보다 낙태할 권리를"
[인터뷰] 저출산고령사회위원 조소담 닷페이스 대표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81877
프레시안에 위 기사가 실렸을 때, 대부분은 제목에만 집중에서 악플들을 달았지만. 위 기사에서 진짜 중요한 포인트는 조소담 대표가 대통령 직속기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유일한 20대 위원이라는 점이었다. 그녀의 제안들은 얼핏 듣기에는 매우 파격적이다. 더 나아가 저출산 대책을 논하는 자리에서 낙태를 할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다. 나 역시 처음에는 그랬다. 단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녀의 목소리-정확히는 그녀가 대표하는 세대와 젠더의 목소리-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그녀가 말하는 것처럼 바로 이 분들이 문제의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저출산 대책이 계속 실패하는 이유는 당사자들의 얘기를 전혀 듣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나서는 그녀가 주장했던 것이 이미 검증된-결과로 드러난- 저출산 대책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단순히 저출산을 극복하고자 그러한 주장들을 받아들이자는 건 아니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원 취지를 무너뜨리는 것이 된다.) 달리 생각해보면 이 모든 주장들은 단순한 진리에 기반하고 있다. 사람을 아이를 낳는 수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격체로서 바라보고 존중하고 그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만들어 준다면, 그 결과로 삶의 질이 나아져서 출산율 또한 자연스럽게 증가한다.
이렇게 얘기하면 "누가 그것을 모르느냐?"라고 말할지 모른다. 또 그러한 원론적인 접근은 오래 걸린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건, 우리나라는 아직 그러한 노력 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을 기울인 국가들은 이미 성공적인 결과를 목격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자세한 내용이 책에 나와있다.
이 책은 총 4개의 챕터로 나뉘어 우리 사회가 가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잘못된 패러다임을 지적한다. 하나, 하나가 주옥같고 그만큼 뼈아프다. 이미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새롭게 인식되는 것들이 많았다. 하물며 이러한 얘기들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시종일관 충격을 선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 하나 정제된 언어로 조목조목 지적해나가는 글들은 매우 이지적이지만, 그러면서도 가슴이 아리는 것은 아이에 대한 저자의 애정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체벌 문제로 시작하여 끝까지 결국 우리 사회가 아이를 대하는 자세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한다. 그것이 우리의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갉아먹고 있음을 애정을 담아서 말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아이는 그저 '미래의 희망'일 뿐이다. 아이의 '현재의 행복'에는 별 관심이 없고 유년기 자체를 하나의 독립적인 인생의 단계, 시기로 간주하지 않는다.
최근 트위터에서 한 트위터러의 촌철살인을 보았는데, "한국 사회가 아이를 바라보는 관점은 '경력 같은 신입'이기를 바라는 관점"이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아이는 곧잘 어른의 세계에 편입되고 경쟁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최대한 빨리 주입시켜 키워야 하는 존재로 인식될 뿐이다. '점잖은 아이'가 칭찬으로 많이 쓰이는데 '점잖다'의 어원은 '젊지 않다'다. 젊지 않고 어리지 않은 몸가짐을 칭찬하는 이면에는 젊고 어린 행동거지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깔려 있다. 어려서 칭찬받는 경우란 '동안'말고는 없지 않은가?
- '이상한 정상 가족' 중에서
한국사회는 이미 고도의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다원화된 사회이다. 저출산은 20-30대가 이기적이어서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라, 다원화된 사회의 다양한 삶의 모습, 다양한 가치관을 현재 정치와 행정을 이끄는 이들이 이해 못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그래서 오늘날 저출산을 극복한 사례로 꼽히는 대표적인 나라들(프랑스, 스웨덴 등)이 공통적으로 했던 1순위 작업은 시민들에게 다양한 삶의 형태(한부모 가정, 동거, 동성 결혼 등)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는 거였다. 그러자면 제일 먼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일이 여전히 견고하게 머릿 속에 남아있는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를 깨는 거다.
그리고 이는 비단 저출산 문제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다른 누군가를 편견 없이 대하기 위해 가져야할 기본 자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