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분간 약자의 생존전략이라는 측면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코너를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이글은 그 첫번째 글입니다.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는 세계대전이나 다름없었던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한창이던 때의 일이다. 델로스 동맹의 맹주 아테네는 교착상태에 빠진 전황을 타개하기 위해 스파르타의 동맹국 중 가장 만만한 나라 하나를 공격할 계획을 세웠다. 이때 걸려든 나라가 멜로스다. (멜로스는 원래 라케다이몬인들 그러니까 스파르타인들이 이주하여 세운 식민도시이다. 섬의 크기는 160㎢니까 강화도의 반 정도 크기이다. 육상강국이었던 모국과 달리 섬에 자리 잡은 탓에 전형적인 해양 국가가 되었다. 더구나 나라의 위치도 아테네에서 바다로 하루거리에 불과했다.)
멜로스는 비록 스파르타의 동맹국이지만 비교적 유대관계가 약한 편이었고 또 바다 위의 섬에 자리 잡고 있어서 해양제국 아테네가 침략하기에 용이했기 때문이다. 아테네는 곧장 동맹국을 소집해서 멜로스로 쳐들어갔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멜로스는 자신들이 앞으로는 아테네와 스파르타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고 엄정 중립을 지키겠다며 평화적인 해결을 촉구했다. 하지만 아테네의 대답은 차가웠다.
“신들의 세계에서 강력한 신이 약한 신을 지배한다. 이것은 하나의 자연의 법칙이다. 이 자연의 법칙은 우리 아테네가 처음 만든 것도 아니고 처음 적용하는 것도 아니다.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이라는 자연의 법칙은 옛날부터 있어 왔으며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할 것이다. 그러므로 입장을 바꿔서 당신들이 강대국이고 우리가 약소국이라면, 당신들도 우리처럼 행동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중에서
주권 존중에 대한 요구, 약자에 대한 배려, 보편적 정의에 대한 희망 같은 도덕적 호소는 어느 것 하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테네는 멜로스에게 ‘굴복이냐 죽음이냐’ 양자택일만을 요구했다. 결국 멜로스는 독립을 위한 저항을 선택했고 결과는 참혹했다. 순식간에 멜로스를 점령한 아테네는 멜로스의 모든 성인 남자들을 죽이고 여자와 어린아이들은 노예로 삼았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 산실이자 민주주의의 원형을 꽃피운 아테네였지만 국가이익 앞에서는 냉혹한 살인마에 불과했던 셈이다.
이 사건은 이후 현실주의자들에게 강렬한 영감을 주는 소재가 되었다. 멜로스의 비극을 통해 현실주의자들은 인간이란 이기적인 존재이고 결국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힘일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이끌어 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인식은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 귀결된다.
“강자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하는 것이고, 약자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중에서
한마디로 세상에 약자를 배려하는 강자는 없다는 말이다. 씁쓸하지만 아테네와 멜로스의 경우를 보면 너무나도 명백해서 거부할 수 없는 교훈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정말 세상에는 약자를 배려하는 강자는 없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꼭 그렇지는 않다. 당연하게도 세상에는 약자에게 관대한 강자도 있다. 심지어 약자에게 관용적인 강대국만이 오히려 오랜 시간 강자의 지위를 지킬 수 있다. 고대 로마제국에서부터 20세기 미국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오랜 기간 패권을 유지했던 제국들은 그 시대를 기준으로 다른 어떤 나라보다 패자에게 관용적이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 말이 결코 이들 강대국이 절대적으로 관용적인 국가였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필요한 순간에는 잔혹한 면도 보였던 것이 사실에 가깝다. 다만 경쟁관계에 있던 동시대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이들이 관용적이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현실주의자들의 주장은 틀린 것이고 약자는 배려심 넘치는 강자를 기대해도 좋은 것일까? 불행히도 약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결코 그렇지 않다. 사실 실천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인간 본성이 악하냐 아니냐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특히 약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더욱 그러하다. 왜 그럴까? 그것은 강자와 약자가 가진 근본적인 입장의 차이 때문이다. 강자와 약자의 결정적인 차이가 무엇인가? 강자는 무엇이던 자기가 선택한대로 행동할 수 있지만 약자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약자는 강자의 선택에 따라 자신의 전략을 수정해야만 하는 존재이다. 한마디로 강자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상황을 만들어 내는 존재이고 약자는 주어진 상황에 따라 생각을 바꿔야 하는 존재이다.
‘강자의 배려를 기대할 수 있는가?’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강자는 자신이 약자를 배려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약자는 다르다. 약자는 강자로 하여금 자신을 배려하게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할 수 없다. 이건 그야말로 강자의 마음먹기에 달린 일일 뿐이다. 언제든지 마음만 바꿔먹으면 주먹을 들이댈 수 있으니까 강자인 것이다. 약자의 입장에서 보면 배려의 대상이 되느냐 착취의 대상이 되느냐가 나에게 달린 게 아니라 믿을 수 없는 상대방의 마음에 달린 일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약자의 입장에서는 인간 본성이 악하냐 아니냐와 무관하게 일단 상대방이 악해질 수 있다는 전제하에 생존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강자의 배려심이 아니라 언제든지 상대방의 변덕에 대응할 수 있는 나만의 수단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강자를 대하는 약자만의 무기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