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땐 미디어에서 피가 찔끔 나오는 걸 보면 눈 꼭 감고 머리를 짚을 만큼 여린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러던 어느 날 미드 csi를 접하게 되었고... 온갖 부검씬을 통해 끊임없이 수련하여 지금은 미드 한니발을 보며 고기 먹을 정도의 사람은 된다. 아주 고어한 건 못 봐도 어느 정도 잔인한 건 그럭저럭 보는 사람이 된 것인데, 이상하게 에일리언 시리즈는 나에게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 티비에서 우연히 본 한 장면 때문이다. 어떤 남자가 고통스러워하며 몸을 뒤틀다 흉부가 터져(!) 피가 사방으로 튀고 그 안에서 자그마한 생명체가 ‘끼예엑’ 하면서 스르륵 나오는 장면이었다. 당시 심약했던 나는 울부짖으며 방으로 뛰어갔고 다시는 에일리언 시리즈를 보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얼마 전 영화 쿠폰 만료 기간이 되어 다급하게 영화관에 다녀왔다. 그곳엔 이미 본 영화와 그닥 당기지 않는 영화만이 존재했고 그마저도 시간대가 거지같아 당장 볼 수 있는 영화는 하나밖에 없었다. ‘에이리언 커버넌트’였다. 어쩔 수 없이 울면서 예매했고 달달 떨며 커피와 금호타이어 캐릭터로 겨우 심신을 안정시키자 영화가 시작됐다.
음... 마음에 들어... 첫 샷부터 아주 마음에 들어... 눈알덕후라 마이클 패스밴더의 눈알에 마음이 스르르 녹았다. 익스트림 클로즈업은 옳다. 하여튼 순식간에 근심과 걱정을 덜고 영화에 빠져들 수 있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의 상태는 ‘?????’ 였다. 하긴 시리즈 하나도 안봤으니 완벽히 이해를 할 리가 없었다. 그래도 재미있게 봤기에 집에 가서 시리즈 다 챙겨봐야겠다, 근데 생각보다 안 잔인하네, 나 정말 성장했구나 등 잡생각을 하며 집으로 향했고 그날 밤 전 시리즈를 다 봤다.
영화를 보다보면 가끔 인물이 짜증나는 행동을 할 때가 있다. ‘아... 왜 저래... 하지 마...’ 라고 탄식을 내뱉게 되는 행동들 말이다. 물론 알고 있다, 영화의 흐름을 위해선 저런 행동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니면 영화가 전개되기도 전에 끝나버릴테니까... 그런데 에이리언 시리즈를 보면서 쟤넨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자라며... 왜 그렇게 무턱대고 행동해... 하면 안되는 온갖 행동들을 다 하는 것 같았다. 오밤중에 핸드폰에 대고 ‘아 좀 생각을 하고 움직여라!’ 라고 외치게 만들었다. 그래도 ‘그래 저렇게 생각 없이 움직여야 에이리언 만나서 죽고 그러는 거지... 그치...’ 하며 납득했다.
확실히 시리즈물은 전편을 보고 봐야 그 재미가 산다. 커버넌트 보면서 ‘???’ 싶었던 부분들이 ‘!!!’로 변하고 소소한 부분들도 이해가 되어 더 흥미롭다. 그 거대 우주선은 뭔지, 닥터 쇼는 뭐하는 사람인지 착착 정리가 되고 데이빗이 이발하며 노래 부를 때 ‘아 저 노래 어디서 나왔지’ 했는데 프로메테우스를 본 후 데이빗이 아라비아의 로렌스 덕후라는 사실이 나와 묘한 쾌감을 느꼈다. 개인적으로 1편과 프로메테우스가 가장 재미있었다.
가장 인상 깊은 캐릭터는 역시 리플리이다. 시고니 위버 너무 멋있고 리플리 정말 불쌍하다... 동료들 다 죽고 혼자 겨우 살아남았다 몇 십 년 후에 깨어나 또 에일리언이랑 싸우고... 일어나니 전편에서 힘들게 살린 애기랑 힉스는 죽어있고... 또 싸우다 자신이 숙주가 된 걸 알고 죽었더니 다음 편에서 살려놓고... 리플리 너무 멋있고 안쓰럽고... 에이리언들 다 죽었으면... 했다. 보다보니 은근 귀여운 구석이 있긴 한데 그래도 너무 가증스럽고 짜증난다. 우주는 위험한 곳이다.
데이빗 캐릭터도 상당히 흥미롭다. 주변 인간들이 얘 대하는 거 보면 왜 삐뚤어졌는지 이해가 가면서도 건방지고... 프로메테우스 보면 이것저것 생각할 거리가 많아 계속 돌려보고 검색하게 돼서 끝이 없다. 너무 재밌어..
시리즈물 후편을 먼저 보고 전편을 보면 후편의 기억이 흐릿해져 어쩔 수 없이 2차를 찍으러 가게 된다. 그래서 난 오늘도 씨지브이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