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바르 뭉크, <해>. 이미지 출처)
겨울 하늘을 걷고 봄 햇볕이 비추었다. 아직은 차가운 기운이 조금 남아 있고 빛도 소박하지만, 그만큼 풋풋하고, 필연적 도약을 의심 없이 품고 있었다. 모든 것이 싱싱하고도 깨끗했다. 그것이 너무나 아름답고도 슬퍼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어째서 햇볕이 가웨인을 슬프고 약해지게 만드는가? 그 빛이 아름다운 만큼 많은 불가역적 죽음들이 쌓이고 겹쳐져 반짝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햇빛을 뜨겁게 사랑하며 들이마신 만큼 그것들은 지울 수 없이 욱신거리는 상처가 된다. 심술궂은 녹색 새가 덧붙였다. 「〈많은 불가역적 죽음들'만'이〉라고 해야지, 이 산송장아! 고자야!」 해는 지상의 막대기에 시간의 저주를 내린다. 해는 모든 것을 끝없이 비출 뿐 아무것도 되돌려 주지 않는다. 그래서 금빛으로 반짝이는 모든 아련함은 슬프고 저주스러운 눈물이기도 한 것이다. 금빛은 가장 슬프고 무력한 색이다. 해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해를 등지고 그것이 비추는 앞으로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 새끼를 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말이나 드베르그와는 다른 인간 종족의 운명이다. 누군가는 그림자의 태엽이 잠깐 풀린 순간 목격한 영원의 무도에, 방향 없는 미에 사로잡힐지도 모르지만. 란슬롯도 갤러해드도 될 수 없는 그는, 시간도 무덤도 증발해 버린 투명한 영원의 사막에서만 다시 매가 되어 난다. 위에 앉은 녹색 새가 덧붙인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