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깔려 죽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라! 이미지 출처)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책도락가는 충분히 넓은 집을 갖춘 사람, 충분한 관리 여유를 갖춘 사람, 그리고 이사할 필요 없이 한곳에 뿌리 내릴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문제는 책도락가가 그런 사람일 가능성은 적다는 것이다. 책도락가의 책장에는 돈 버는 법에 대한 책만은 없게 마련이다. 베리 공작 장 혹은 니콜로 니콜리 같은 사례는 전체적으로 봤을 때 드문 행운이다. 많은 책도락가들은 반강제적 유목민이게 마련으로, 수레에 두루마리를 잔뜩 싣고 달그닥달그닥 소리를 내며 옮겨다녀야 한다. 이 과정에는 가죽끈이 끊어지거나 얼음 구멍에 빠질 위험, 하늘로 솟거나 땅으로 꺼질 위험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책도락가들이 최신 테크놀로지와 거리가 멀다는 것, 심지어 노골적인 반감을 보이기도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책의 미덕은 시간의 세례를 받았다는 것, 도망가지 않는다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신 테크놀로지는 e북이라는, 인류 문화사에서 손꼽을 만한 진보를 책도락가들에게 선물해주었다. e북은 위에서 든 모든 문제들을 단번에 해결한다. 더 나아가 책은 이제 어디든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는 것, 얼마든지 줄을 치고 메모를 써넣고도 어떠한 고생도 티도 없이 간편하고 말끔하게 지울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 주체할 수 없다는 고민도 e북에 의해 단숨에 해결된다. 한국에는 e북화된 책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책도락이 단순히 광대하고 제약 없는 관념적 콘텐츠의 하늘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것만이 아니라는 데 있다. 동시에 책도락은 철저히 물질적인 감각의 문제기도 하다. 철저히 지상적인 기쁨인 것이다. 책도락가들은 현대인들 중 최고의 아날로그(?) 감성 애호가들, 앤티크 애호가들이며, 손에 얹히는 기분 좋은 무게감, 책장 넘기는 감각 등에 희열을 느끼는 코덱스 페티시스트들이고, 은은하게 책 냄새가 풍기는 나만의 근사한 서재라는 가장 사치스러운 허영에 빠져 있는 자들이다. 책도락가란 한 책을 동시에 2권, 심지어 3권을 주문하기도 하는 자들이다. 한 권은 실제 독서용, 한 권은 소장용. 물질적 소유욕은 책도락의 중요한 구성 요소다. 언제나 불황인 출판업계에는 고마운 일이다. 캐릭터빠들이 오덕업계에 대해 그러하듯.
책과 깊이 관계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책을 마치 집이나 옷과 같이 향유하는 방식이다. 그들은 책에 낙엽을 꽂고 제라늄을 두른다. 갖가지 컬렉션들로 자기만의 성채를 쌓아올린다. 이것이 보통 책도락이라고 불린다. 다른 하나는 책을 먹어치우는 방식이다. 굶주린 맹수들인 그들은 책을 우적우적 씹어먹는다. 뼈 하나도 남기지 않고 부러뜨려서 골수까지 쪽쪽 깨끗이 빨아먹는다. 후자가 전자에 대해 어떤 불쾌감을, 낭비와 허영(소위 교양과 감성)에 대한 불쾌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맹수는 집이나 옷이라는 개념 자체에 반감을 느낀다. 그러나 독서 경험 및 기억의 강한 물질성을 부정할 수 있을까? 강렬한 독서의 기억에는 언제나 그 순간의 손 감촉, 책장 및 글자의 형태, 주변의 조용하고 상쾌한 공간, 책만큼 은은하게 향긋한 커피가 함께 어우러져 있다. 마들렌은 가루 떨어지니까 먹지 말자.
물질성은 책도락을 제약하는 한계인 동시에 그 기쁨의 근본 조건이다. 사실 책이 관념적 콘텐츠 이전에 그 물질 자체로 탐닉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유서 깊은 전통이다. 오늘날의 종이책 애호가들은 「e북에는 책 읽는 풍미가 없다!」고 주장하는데, 마찬가지로 르네상스 시대의 책도락가들은 새로 보급되기 시작한 인쇄본 책들, 필사본에 비해 천박하기 짝이 없는 인쇄본 책들을 불쾌해했다.
결국... 책 보관이 문제... ㅠㅠ 사고 싶은 책도 못 사는... ㅠㅠ 그래서 전자책을 주로 삽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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