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말이 무어냐고 물으면 ‘사랑’이라는 말이라고 답을 할 겁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 정의를 하고 그에 대한 책을 썼지만, 여전히 ‘사랑’이라는 말은 저에게 참 어렵고 다가가기 힘든 말입니다. 그만큼 사랑이라는 말이 무척이나 다층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사랑에 대해 몇 가지 예를 들어 단편적으로 이러니 저러니 말은 할 수 있지만 저는 여전히 사랑이라는 말을 하나로 종합해서 말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한 단편적인 생각 가운데 하나가 자신의 치부까지 사랑할 줄 모르면 그건 사랑이 아니다, 라는 생각입니다. 이게 참 어려운 일인데요. 저는 술을 참 사랑합니다. 이것도 사랑의 범주에 들어가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런데 술을 많이 마시고 난 다음날 아침이면 무척이나 괴롭습니다. 지난밤 술자리에서 뱉어낸 말들, 어설프고 과장되고 때로는 폭력적이기도 한 행동들이 떠올라 견디기가 힘들지요. 내가 나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지는 순간들입니다.(지금 이 순간도 그렇습니다. 어제 4차까지 달리면서 술을 많이 마셨거든요. ㅋㅋ).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것조차도 저인 것을요. 제가 살아가려면 그러한 저의 모습을 못난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늘 반성하면서 더 이상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문제는 인간이 참으로 나약하고 간사한 존재라서, 그러한 반성은 하루를 못 넘긴 채 저녁이면 다시 술자리를 찾아가고, 거기서 또 횡설수설 되지도 않는 말을 늘어놓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쓸데없는 이야기가 너무 길었습니다. 자신의 치부까지 사랑할 줄 모르면 그건 사랑이 아니다, 라는 말 때문에 시작이 되었는데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고 밝힌다는 건 참 어려운 일입니다. 아니 두려운 일이지요. 저도 가능하면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고, 그 기억을 떠올려 이야기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무척이나 원망스럽습니다. 몰랐을 때는 괜찮은데, 기억을 되살리면 견디기가 힘들거든요. 그런데 내가 기억을 안 하고, 혹은 못하더라도 있었던 사실이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내가 아니라도 그 자리에서 있었던 누군가는 기억을 하고 있으니까요. 도망간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니라는 거지요.
저는 박유하 교수의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스스로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던 부분을 살려내고 똑바로 보아야 한다고 하는 데서 학자의 ‘용기’를 생각했습니다. 저라면, 제가 책에 나온 내용들을 연구하고 밝혀냈다고 해도 책을 쓰기가 어려웠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자신의(그토록 자랑스러운 우리 민족의) 치부를 모두 드러내야 하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거기서 출발하지 않으면, 그러한 치욕의 기억까지 사랑하지 않으면, 대체 사랑이라는 말은 얼마나 공허할까요?
저는 아래와 같은 구절에 나온 박유하 교수의 뼈아픈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결코 일본에게 우리의 요구를 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결코 잘난 게 아닌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비록 힘들지만 그게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안부’의 피해는 보상되어야 하지만 ‘조선인 위안부’는 한국이 바라는 방식으로 ‘기림’을 받기에는 모순이 없지 않은 존재다.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면, 있는 그대로, 식민지의 모순적인 존재로서, 가난한 부모를 봉양하고 오빠를 위해 희생한 가부장제하의 가난한 누이로 기억되어야 한다. 그리고 국가와 자국의 남성들이 지키지 못해 타국의 남성들에게 가혹한 환경에서 성을 제공해야 했던 존재들로 기억되어야 한다. (311쪽)
나아가 일본이 우리에게 했던 것과 같은 그러한 범죄로부터 우리는 자유로운가 하는 점도 짚어야 합니다. 저는 박유하 교수의 책이 좋았던 이유 중의 하나가 ‘조선인 위안부’ 문제를 넘어 제국 전반의 문제, 그리고 우리가 우리나라 안에서, 그리고 베트남에서 운영한 위안소 문제까지 살펴볼 수 있도록 스펙트럼을 넓혀 보여주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얼마 전 국내의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낸 사실을 기사로 접하고, 박유하 교수의 책이 직접 영향을 미쳤는지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나, 우리가 감추고 싶었던 역사의 아픔을 드러내고 치유하는 일이 조금씩 진전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 의해 지탱되어 온 근대 국민국가 체제는, 국가세력을 확장하거나 유지하기 위해 군대를 조직했고 고향을 떠나 ‘나라를 위해’ 일하는 그들을 ‘위안’할 여성들의 조직을 유지해왔다. 그런 의미에서는 러일전쟁 시대의 일본인 위안부도, 태평양전쟁 시대의 조선인 위안부도, 해방 후 한국에 주둔하게 된 미군을 위한 위안소도, 기본적으로는 모두 똑같이 국가(안보 혹은 경제)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동원된 피해자들이다.(287쪽)
한국은 그 냉전체제 속에서 미국의 용병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고, 그 전에 일본이나 미국이 했던 일을 베트남에서 했다. 식민지 시대를 비판하면서도 의식적으로는 철저하게 식민화의 길을 걸었던 셈이다. 베트남은 아직 한국에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한 적이 없지만, 그건 양국의 암묵적인 합의에 따른 것일 뿐이다.(이토 마사코). 언젠가 베트남 여성들이 한국군의 강간과 폭행에 관한 사죄와 보상을 청구하는 날이 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289쪽)
베트남에 대한 부분에 공감합니다
한국은 식민지배를 받았지만 대부분 감정적으로 일본을 싫어할 뿐 정작 식민통치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많이 얻었는지는 의문이네요
Downvoting a post can decrease pending rewards and make it less visible. Common reasons:
Submit
Congratulations @francesco.nar! You have completed some achievement on Steemit and have been rewarded with new badge(s) :
Award for the number of upvotes
Click on any badge to view your own Board of Honor on SteemitBoard.
To support your work, I also upvoted your post!
For more information about SteemitBoard, click here
If you no longer want to receive notifications, reply to this comment with the word
STOP
Downvoting a post can decrease pending rewards and make it less visible. Common reasons:
Subm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