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벌고 하루살기] 시작하면서

in kr •  7 years ago 

[하루 벌고 하루살기] 시작하면서

제목을 뭘로 하면 좋을까? '노동일기'? 세상의 모든 일이 노동 아닌 게 없겠지만 용역(일용직 노가다) 나가서 기본 단가 12만원에서 소개료 10%를 떼고 받는 10만8000원짜리 인생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거창해지고 딱딱하다 못해 계급의 냄새를 풍기는 노동의 등 뒤에 숨어서 현실을 애써 긍정하려는 것 같아서 노동일기는 패스, 다음 수순으로 '노가다 일지'나 '용역 일지'가 떠오르는데 일한 날 체크하는 오야지 데스라 장부 제목 같아서 또 패스, '하루 벌어 하루살기' 그럴듯한데 전지구의 일용직 노동자들을 하루살이로 만들어 버릴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토씨하나 살짝 고쳐서 [하루 벌고 하루 살기]. 그래 매일 딱 오늘만 살자!

주로 그 날 나간 현장 이야기를 할 것이다. 아침에 일을 배정받고 낯선 곳에 가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하는 모습들을 기록할 것이다. 개인의 기록을 넘어 생생한 현장 기록이 묻어나면 좋겠다. 하지만 주 목적은 민나우부스터를 통해서 자가발전 하기 위한 포스팅, 이야기가 필요해서다. 내 이야기에 내 돈으로 내 가격을 매길 것이다. 보팅을 위해 억지로 대화하고 싶지 않다. 내가 하고 싶을 때 수줍게 할꺼다.

변전소 일이 걸렸다. 살면서 지역에 변전소가 있는지 모르고 사는 사람 많다. 나도 몰랐다. 송전탑의 끝이 어디인지 궁금해 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가 송전탑을 타고 고압으로 보내어지면 지역 가까이의 변전소는 그 고압의 전기를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저압의 전기로 변환해 준다. 그러니 발전소에서 시작한 송전탑의 끝은 변전소인 셈이다. 생각지 않은 부분인데 적고 보니 말이 된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한다. 20만볼트,15만4천볼트라고 적힌 팻말 앞에 활선이란 글자들이 띠처럼 둘러져 있다. 살아 있다는 뜻이다. 반대는 사선이다. 웅하는 소음이 끝없이 이어진다. 이런 혐오시설들이 요즘 땅이나 건물로 들어가는 추세다. 이걸 지중화 사업이라고 하는 모양인데 덕분에 오늘 하루 여기서 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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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은 접지 작업 보조다. 유압으로 작동하는 굶은 전선의 슬리브 집는 기계를 발전기와 함께 이리 저리 옮겨 줘야한다. 전기 관련 시설을 집어넣을 건물의 철근 작업과 겹쳐져서 작업이 더 힘들어졌다. 다 결속되지 않은 철근 위를 걸어 다녀야 할 판이다. 발이 빠지거나 넘어지면 큰일 난다. 철근을 무시하다간 넘어지거나 부딪치고 나서야 아 이게 철덩어리구나 하고 절감하게 된다.

어린 학생 같아 보이는 친구가 철근 일을 하고 있다. 한국 작업자와 의사소통을 하면서 오케이를 크게 외치는 것으로 봐서 한국 사람이 아니다. 한 손엔 신호를 또 다른 손에는 결속선을 지고 십자로 배열된 철근을 열심히 묶고 있다. 저 손놀림이 익숙해질 때쯤 저 친구의 단가는 올라가리라. 그만큼 저 친구 나라의 부모, 형제들은 윤택해지리라. 무사히 다치지만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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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뉴스에서 노인들이 한 달 내내 박스를 주워도 채 십만원을 벌기 힘들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것과 비교해 보면 하루의 일당이 결코 작은 금액일 수가 없다. 하지만 이건 멀쩡한 몽뚱아리와 힘을 가지고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당장 걷기만 불편해도 노가다는 쫑이다. 그러니 하루 벌고 하루 살기 위해서는 먼저 건강해야 한다. 먼 미래가 아니라 당장 오늘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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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조심하셔야 겠어요
화이팅 입니다~
팔로 꾸욱~❤즐거운 하루되세요🍀

경건해지지 않을 수 없군요. 매일 다치시지 말고 무사히 하루하루 일 마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