슘페터의 자본가 예찬과 스타킹 다리 튼살치료
수많은 초를 살 돈이 있고 그것을 관리할 하인이 있는 사람에게 전기는 특별히 행운일리 없다. 자본가가 만든 것 중 부자에게 유용한 것은 좀 더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옷, 면제품, 레이온, 신발, 자동차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도 실크 스타킹 덕을 본다. 그러나 자본가가 대단한 것은 여왕에게 많은 실크 스타킹을 제공했기 때문이 아니라 공장의 여직공도 조금만 노력하면 스타킹을 살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세계를 뒤흔든 경제 대통령들, 역사를 만든 경제정책 결정자 18인의 영광과 좌절, 유재수 지음, 삼성 경제 연구소, 페이지 222
조지프 슘페터(Joseph Alois Schumpeter, 1883년 2월 8일 ∼ 1950년 1월 8일)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출신의 미국 경제학자이다. 오스트리아 학파에 많은 영향을 준 경제학자로, 창조적 파괴라는 용어를 경제학에서 널리 퍼뜨렸다.
슘페터는 모라바(당시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였고 현재는 체코에 속함)에서 태어났다. 빈 대학에서 경제학을 배우고 체르노비츠 대학·그라스 대학 등의 대학 교수를 지냈으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트리아 공화국 정부 재무 장관·은행 총재를 거쳐, 다시 학계에 들어가 1926년 본 대학 교수를 지냈다. 그 후 미국에 가서 하버드 대학 교수가 되어, 1932년 미국에 귀화하였다.
그는 한계 효용 학파의 완성자로 수리적 균형 개념을 이에 도입하였고 혁신적 기업가가 이윤을 창조한다는 이론을 전개하였다. 슘페터는 (1) 발명을 위한 연구, (2) 혁신을 위한 개발, (3) 상품화의 3단계를 구분하고 발명보다는 혁신에 더 많은 비용이 소요되고 혁신보다는 상품화에 더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고 주장하면서, 따라서 충분한 자본을 가진 기업이 보다 많은 혁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저서
경제발전의 이론
경기순환론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Capitalism, Socialism and Democracy)
슘페터 이론의 핵심은 자본주의의 성공이 일종의 조합주의와 자본주의 자체를 반대하는 가치들을 만들어낸다는 데에 있다. 또한, 사회 분위기가 자본주의에 회의적이 되면서 결국 자본주의는 사회주의로 대체되게 된다. 다만 일반적인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이 생각하는 혁명이라는 방법으로 사회주의가 달성되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사회 민주주의에 대한 찬성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레 사회주의가 대두할 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복지 국가에 대한 요구, 슘페터가 자본주의의 핵심으로 보고 있는 기업가 정신에 대한 제한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자본주의는 내부로부터 붕괴할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일종의 정치적인 목적의 주장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경향성을 서술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만약 한 의사가 자신의 환자가 곧 죽을 것이라고 추정한다고 해서, 그 의사가 그것을 바란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지식인 계층이 자본주의의 종언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지식인'이라는 용어는 일련의 사람들을 의미하는데, 그들은 사회적 일들에 대한 비판 논리들을 개발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러한 사회적 일들에 대한 직접적 책임이 있는 계급에 속한다고 할 수는 없다.
또한 그는 전자본주의 사회에 대해 자본주의가 가지는 장점 중 하나는 바로 교육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전자본주의 사회에서 교육은 소수의 특권이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육은 많은 사람들에게 개방되어 있다. 하지만 노동의 기회는 제한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불만이 양산된다. 지식인 계층은 이러한 상황에서 시위를 조직하거나 자유 시장과 사유 재산에 대한 비판 논리를 개발할 수 있다.
자본주의와 다른 경제 체제인 사회주의는 사람들의 '진정한 요구'를 채울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할 수 있다. 또한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고유의 경향, 이를테면 경제 파동이나 실업 등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 결국 슘페터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대체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슘페터의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주의적인 의미에서의 '사회주의'와는 달리 '사회 민주주의'에 가까우며, 폭력적인 혁명의 가능성에 대해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또한 마르크스는 경제적 토대의 모순이 계급투쟁이라는 형태를 취함으로써 사회 변동이 일어난다고 보았지만 슘페터는 기업가의 혁신 즉 '창조적 파괴'가 자본주의 사회의 풍요로움을 가져오는 원동력으로 보았다. 동시에 이 풍요로움이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 책에는 또한 슘페터의 유명한 개념인 '창조적 파괴'가 소개되어 있다. 이는 기업가들의 혁신적 활동을 말한다. 슘페터는 레옹 발라의 이론에서 소개된 정태적인 자본주의는 어떠한 이윤도 창출하지 않으며 발전이 없는 정체된 사회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기업가들의 혁신 행위로 인해 '불균형'이 초래될 때 사회가 발전한다고 생각하였다.
기업가들의 혁신으로 인해 기존의 가치에 대한 파괴가 일어나지만 이는 장기적으로는 경제발전을 유지하는 원동력이다. 이는 단순한 발전을 넘어선 근본적인 변화를 뜻한다. 그가 이야기하는 혁신은 단순한 기술 발명, 경영상의 혁신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가들의 행위로 촉발된 사회 전체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근본적인 변화에 직면하여 기존에 시장에 자리잡고 있던 지배적인 기업들은 꾸준히 새로운 기술 개발에 투자하게 된다. 이러한 끊임없는 혁신이 바로 자본주의를 가장 뛰어난 경제 체제로 만들어주는 힘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제 2장에서 그는 결국 기업가의 혁신 행위 자체도 사회화되며, 장기적으로는 기업가들의 혁신 자체가 불필요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고 서술하였다.
경제분석의 역사(History of Economic Analysis)
저자는 조지프 슘페터를 성공한 경제학자, 실패한 재무장관이라고 챕터를 표시하였다.
필자는 중학교때 슘페터가 교과서에 나왔는데 선생님이 슘페터가 이름이 어려워 침뱉어로 기억을 하라고 했는데 시험에서 한 아이가 정말 정답을 침뱉어라고 썼다고 한 말이 기억이 난다.
슘페터의 말중에 창조적 파괴가 가장 유명한데 미국 달러를 파괴할자는 비트코인등 암호화폐이다. 필자도 동의보감에 안나오는 화상흉터나 튼살을 침으로 치료하니 창조적 파괴자이다.
16세기 중반 유럽의 귀족들은 스타킹을 반드시 착용해야 할 장신구로 여겼는데, 특히 값비싸고 부드러운 비단 스타킹을 선호했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1세는 모직물 스타킹만 신다가 1560년대에 처음으로 비단 스타킹 한 켤레를 선물 받고는 이렇게 선언했다. “나는 감촉이 좋고 곱고 섬세한 비단 스타킹이 무척 마음에 드므로 앞으로는 모직물 스타킹을 신지 않겠노라.”
여왕은 할 켤레에 2파운드나 하는 비단 스타킹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수습 시녀의 연봉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으나 여왕은 부를 과시하기 위해 스타킹을 일주일만 신고는 시녀들에게하사했다. 여왕의 속살에 닿았던 물건을 하사받는 것은 공연중에 록스타가 벗어던진 땀 젖은 티셔츠를 잡는 것만큼이나 어마어마한 영광이었다.비단 스타킹은 일반인의 벌이로는 절대로 살수 없는 물건이었고 울 스타킹이 훨씬 대중적이었다.
소소한 일상의 대단한 역사, 그레그 제너 지음, 서정아 옮김, 와이즈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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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론은 오늘날 나이롱환자같이 무언가 남을 속이거나 싸구려의 좋지 않은 것을 뜻하는 부정적인 느낌의 속어처럼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처음 등장했을 때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1939년 뉴욕세계박람회는 '놀라운 합성섬유(synthetic wonder fiber)'인 나일론으로 만든 양말을 신은 매혹적인 여러 명의 모델이 있는 듀폰(Dupont) 전시관을 특색으로 삼았다. 여성들은 처음 소개되는 이 나일론 스타킹을 구매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섰고, 1.15~1.35달러로 판매된 스타킹은 한 시간 만에 매진되었다.
나일론 스타킹의 인기는 감소하지 않았으나 그 공급은 일시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나일론 섬유의 수요가 공급을 소진시켜 나일론 스타킹은 값비싼 상품이 되었다. 나일론은 전쟁을 위한 낙하산, 텐트, 타이어, 밧줄 생산에 대부분 사용되었다. 스타킹을 신고 싶어 못 견디는 몇몇 여성들은 다리에 메이크업을 하고 아이라이너 펜슬로 다리 뒤에 세로선을 그렸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전쟁 동안의 한 조사연구는 전시 후에 여성들이 얻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아이템은 나일론 스타킹이며, 그다음이 남성이라고 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나일론 스타킹이 일반에 처음 시판되던 1940년 5월, 상점 앞에는 무려 3만 명의 여성이 이 스타킹을 구하려 줄을 섰고 구입하는 데 성공한 여성은 감격스러워하며 길거리에서 스타킹을 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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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슘페터는 어짜피 권력자나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사람은 상품을 모두 가질수 있지만 기업가의 혁신으로 제품을 대중화된 노력을 극찬을 한다. 필자도 슘페터의 견해에 동의한다.
그런데 한여름 더운 여름철에는 스타킹도 열기 때문에 벗어야할 수 있다. 감성변*라는 애칭이 있는 한 유명한 작곡가 겸 가수가 더우면 스타킹 벗고 하라고 농담을 했다가 억지고 콘서트에 끌려간 사람이 기분이 나쁘다는 글을 써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사과를 한 사건이 있었다.
아무튼 튼살이 있는 사람은 꽃샘추위도 풀리고 날씨가 따뜻해지고 여름처럼 무더워지면 더 고민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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