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언어를 디자인하는 재미

in kr •  7 years ago  (edited)

 글을 쓰는 게 재밌다고 말하면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들은 속으로 '저 사람은 글을 잘 쓰니까' 혹은 '저 사람은 글이 적성에 맞으니까'라고 생각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타고난 글쟁이는 아니어서 처음부터 글쓰기가 재밌지 않았다. 말주변이 없어서 그런지 말보다 글로 표현하는 게 편리했을 뿐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글은 나에게 편리한 소통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편지를 쓰거나, 낙서에 가까운 글을 끄적이거나, SNS에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거나 하는 정도가 궁상맞은 내 글쓰기 생활이었다. 더군다나 그때의 나는 글의 내용에 무게를 두고, 글의 형식을 가벼이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서른 즈음이었나. 표현력에 갈증을 심히 느꼈을 때가. 같은 내용이더라도 형식에 따라 와닿음이 다르다고 깨달았을 때가.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글에 스민 적절한 양념이 아름답다고 느꼈던 순간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시나브로 글의 형식이 주는 감칠맛을 알게 됐다. 

기묘하고 아름다운 글의 맛에 중독된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그 중독이 얼마나 짜릿한지 침대에 누워 책을 읽다가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글을 쏟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고도 직성이 풀리지 않았다. 그때부터 글은 나에게 소통 도구를 넘은 취미 생활이 되었는데, 인스턴트 커피에서 벗어나 깊게 우러난 차의 향을 알게 된 느낌과 흡사했다. 

여름과 겨울의 차이만큼이나, 글이 취미가 되기 전과 후는 극명하게 달랐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작가들의 섬세한 표현들이 눈에 띄었고, 내 감정과 생각을 표현할 문장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굳이 윤동주 시인의 명시인 '서시'를 예로 들자면,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부분에서, 예전에는 눈에 띄지 않았던 '한 점'이라는 표현이 가슴에 콕 하고 박혔다. '한 점',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라는 표현이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청자에게 절박하게 전해주는 걸 새삼스레 깨달은 까닭이었다. '나는 부끄럼이 없기를 바랐다.'라는 문장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라는 어구는 같은 내용이지만, 사람의 가슴에 파열음을 내는 정도가 달랐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이 없기를'도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이 신기해서 나는 '한 점'이라는 두 글자가 좋아졌다. 


작은 단어 하나하나의 정갈한 배치가 주는 짜릿한 각성은, 어떤 음식보다도 맛있었고, 훌륭한 미술 작품만큼이나 눈과 마음을 충만케 했다. 


요즘에는 '문득'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좋다. '문득 그녀가 보고 싶었다. 문득 부모님 얼굴이 생각이 났다.'와 같은 표현들. '문득'이라는 단어가 앞에 붙으면서 그리움의 깊이가 더해졌다랄까. 사랑이 더 감성적으로 느껴진다고 할까. 나는 '문득'이라는 단어가 어떤 반대급부나 계산 없이 어느 순간 갑자기 느껴지는 순수한 인간의 감정을 담고 있는 것 같아서 좋다. 그래서 '문득'이라는 단어로 문장을 디자인하곤 한다. 가령, '그녀가 보고 싶었다.'보다 '그녀가 보고 싶었다. 오늘 문득...'이 내가 그녀가 갑자기 보고 싶어진 느낌을 더 잘 담은 문장이 된다. 

단어를 재발견하는 일은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것만큼 흥미로웠으며, 내가 좋아하는 단어로 나를 드러내는 작업은 내가 좋아하는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설렜다. 마치 음악을 해석하는 능력이 향상되는 만큼 곡을 잘 쓰게 되는 것처럼. 곡을 어떻게 만들까 고민하다 보니 음악이 새롭게 들리는 것처럼. 새로운 표현을 발견하게 되는 독서와 그 표현을 활용해서 내면을 드러내는 글쓰기는 변증법적으로 발전했다.

글을 디자인하는 재미를 느끼고 나서야 형식의 힘을 알게 됐다. 실용적이지만 아름답지는 않은 것들이 있다. 빛이 잘 들고, 방열과 방음이 잘 되지만, 칙칙한 빛깔의 외벽에 군데군데 얼룩진 주택. 성능 좋은 엔진에 높은 연비를 자랑하지만, 촌스러운 색에 포인트가 없어 밋밋한 자동차. 대부분 사람은 이러한 것들에 정을 주지 않는다. 사람은 실용적이면서도 아름답고 의미 있는 것들에 정을 준다. 비록 실용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더라도 같은 성능이라면 아름다운 것에 끌린다. 


글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아름다운 글에 마음을 연다. 


'야, 물 좀 가져와.'와 '미안한데, 물 좀 떠다 줄 수 있니?'의 형식 차이가 마음에 다른 물결을 일게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논어에 있는 '내용이 형식보다 승하면 거칠고 형식이 내용보다 승하면 사치스럽다.'라는 대목도 같은 맥락이다. 좋은 형식을 갖추지 못한 문장은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지 못하고, 형식에만 신경 쓴 문장은 내용 없이 튀기만 하기에 내용과 형식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그 문구는 내용과 형식의 통일을 강조한다. 

내가 전하고 싶은 내용을 어떤 그릇에 담을 것인가. 언어라는 그릇을 디자인하는 재미에 빠진다면, 문득 글이 쓰고 싶어질 때가 많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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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디자인한다라는 말이 너무 인상적이네요.ㅎ

그렇게 느껴지더라고요. 빠른 댓글 감사합니다.

마음을 담는 그릇이 언어일텐데 가꾸고 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언어를 디자인한다.. 여러 생각이 들게 하는 글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팔로우하고 갑니다!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맞팔하겠습니다.

페이스북 그룹보고 왔습니다 :) 좋은 글 잘보고 가요! 팔로우 보팅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맞팔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