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고금소총 - #3 갚지 않는 은덕은 없다

in kr •  7 years ago  (edited)

<고금소총(古今笑叢)은 민간에 전래하는 문헌소화(文獻笑話: 우스운 이야기)를 모아놓은 편자 미상의 책으로 조선 후기에 최초 발간되었습니다. 문헌소화의 편찬의도는 반드시 권계(勸戒)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좀 지나친 외설담이라 할지라도 은연 중 교훈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안성고을 청룡사의 중 종혜(宗惠)와 이(李)라는 한 고관은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이가 그 고을 원으로 부임하자 종혜는 남들에게 두 사람 사이를 크게 자랑했다.
“새로 부임한 원은 나의 친구이니 사찰 일을 잘 돌보아 줄걸세.”
그러나 막상 이가 원이 되자 종혜가 두세 차례나 뜰 앞에 엎드려 뵙기를 청했으나 이는 모른 체하고 거들떠 보지를 않았다.
종혜는 벌컥 화를 내며,
“늙은 도둑놈이 어떻게 해서 한 고을 원이 되었다고 감히 이렇게 교만할 수 있는가! 어디 두고 보자.”
하고 분해했다. 그런데 때마침 감사가 그 고을을 순시한다는 소문을 들은 종혜는, 암쥐똥 두어 되를 구하여 백분을 묻혀 빛깔을 깨끗이 하여 흰 종이에 싸서 겉에다가 이렇게 써서 원에게 보냈다.
“산중 사람이 다행이 법제(法製)한 콩을 얻었기에 한 번 맛이나 보여 드릴까 합니다.”
원은 크게 기뻐하여 이것을 감사에게 바쳤다. 감사는 이를 먹어 보고는 원을 크게 증오하게 되었지만 부끄러워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원도 그 사실을 알게 되자 당혹감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원이 이질에 걸려 편지를 보내 그 종혜를 불렀다. 종혜는,
“그래도 병이 위급하니 친구를 만나자는 것이로구나.”
하고 가여운 생각이 들어 달려갔다. 원은 홀로 누워 종혜의 손을 이끌어 앉게 하더니 간곡히 청했다.
“이 늙은이가 엉덩이 사이에 종기가 났으니 여자를 멀리해야 할 게 아닌가. 대사는 나의 친구이니 이를 좀 보아 주게나.”
대사는 연로하여 눈이 어두웠다. 바싹 엉덩이에 눈을 들이대고 환부를 살펴 보려는 순간이었다.
그때 원이 바짝 힘을 쓰니 이질 줄기가 우박처럼 쏘는 게 아닌가.
대사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머리와 얼굴에 모두 오물을 뒤집어 쓰고 말았다. 원은 그제서야 소매자락으로 그것을 닦아주면서 조용히 이르기를,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무슨 은덕이고 갚지 않는 것이 없다 하였으니 나에게 쥐똥을 선사한 것을 이 오물로 갚는 것이네.” 하자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고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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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