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데릭 바스티아 연재(3)] 교환과 자연법 (프레데릭 바스티아 VS 장 자크 루소)

in kr •  7 years ago  (edited)

안녕하십니까? @jin90g 입니다. 오늘은 프레데릭 바스티아 VS 장 자크 루소
자연법 이론의 대결을 다루는 날입니다.
요즈음과 달리 고전기 경제학과 정치경제학은 주로 자연법 문제와 어우러져서
논쟁이 진행된 걸로 보이네요.

프레데릭 바스티아의 정치경제학, 그리고 고전기 경제학 담론과 논재을 이해하고
이로써 현재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역시 기초부터 천천히 해야할 것 같습니다.

그럼 글을 시작합니다.


지난번에 이야기 했던 바스티아의 자연법 이론은 아래의 공리로 설명할 수 있다. 이렇게 요약해보자.

  • 하나, 서로 다른 본성을 가진 실재들과 그것들 사이에 성립하는 법칙이 존재한다.
  • 둘, 모든 생물들이 고유한 생존·번영의 원리를 타고 난다.
  • (인간의 경우 / 사유능력과 자유의지를 타고난다.)
  • 셋, 각 생물들의 자연상태는 각자 고유한 생존·번영의 원리를 통해 생육·번성하는 상태이다.
  • (인간의 경우 / 인간의 자연상태는 사유능력과 자유의지를 통해 생육·번성하는 상태이다.)

지금까지 필자는 바스티아의 『경제적 조화』에서 사용되는 자연법 이론을 간단하게 정리했다. 각 생물들은 저 마다 고유한 생존의 원리를 통해 번영한다. 인간의 고유한 생존 원리는 사유능력과 자유의지다. 인간이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는데 방해받지 않는다면, 인간은 생존·번영한다. 따라서 만약 인간이 교환 없이 생존·번영할 수 없다면, 교환 또한 인간의 자연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이 경우 교환을 사유능력과 자유의지를 사용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교환 개념은 바스티아가 증명하고자 하는 “모든 정당한 욕구들의 자연적 조화”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자연법 학자들이 바스티아의 자연법 원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처음에 말했듯이, 바스티아는 자연법과 자연상태를 말하는 루소를 인공적 사회조직의 대변자라고 비판했으니까. 그러므로 바스티아가 자신의 자연법 이론을 루소의 자연법 이론과 차별화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모든 자연법 철학자들이 자연법과 자연상태라는 개념을 엄격히 동일하게 사용하지는 않는다는 것도 분명하다.

자연법이 혼란된 뜻으로 사용된다면, 바스티아의 경제적 조화 이론을 교환개념으로 설명하려는 우리의 시도는 큰 오해를 받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바스티아의 자연법이 다른 학자들, 특히 루소의 자연법과 어떤 차이점을 갖는지 밝혀, 바스티아의 자연법 이론이 갖는 학문적 위치를 명확히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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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티아의 루소 비판]

필자는 바스티아의 루소 비판을 중심으로 바스티아가 어떻게 자신의 자연법을 루소의 자연법이론과 차별화하는지 밝히고, 그의 자연법 이론이 차지하는 위치를 명확히 밝히고자 한다. 바스티아는 인간 본성에 대한 루소의 이해를 중점적으로 비판한다. 바스티아는 루소가 인간을 ‘질료적 존재’로 다루었다고 이해했다. 그래서 바스티아는 루소의 사회계약론이 인간의 본성을 입법자 마음대로 변실 시킬 수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고 지적했다.

  • 루소 『사회계약론』 中 / “민중을 창설하려는 기획을 단행하는 자는 말하자면 인간의 본성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어야 한다. …… 자연으로부터 받은 물리적이고 독립적인 실존을 부분적이고 도덕적인 존재로 대체할 수 있다고 그는 느껴야 한다.” (부북스 김성범 역)

  • 바스티아 『경제적 조화』 中 / “언젠가부터, 우리는 루소와 그의 계약론을 신봉하는 사람들을 동포애의 사도로 상상해왔다. 질료인 사람들, 기계공인 군주, 발명가인 국부(國父)들, 그 모든 것 위에 철학자가 자리하고, 그러니까 저들이 우리에게 약속한 동포애라는 게 이런 것인가? …… 사회가 자연에 반하는 상태라는 생각에서 시작하는 것, 다른 조합에다 인간성을 복종시키는 길을 모색하는 것, 저들의 동기(動機)가 저들 자신 안에 있다는 관점을 상실하는 것, 사람들을 저열한 질료로 숙고하는 것, 그래서 사람들에게 운동과 의지를 부여하고, 감성과 생명을 주기를 열망하는 것, 이렇게 인류 위에 셀 수 없이 높은 고도에다 그 자신을 놓는 것, 여기 있는 것들이 사회 조직의 발명자들 모두에 대한 공통된 특징이다. 발명품들은 다르지만, 발명가들은 서로 닮아있다.”


(자유와 평등의 사도인가 새로운 인민을 빚어내려는 또 다른 조물주인가)

바스티아는 자연적인 사회 법칙이 존재하며, 성문법은 이를 바꿀 수도 폐지할 수도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바스티아가 보기에,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인공적 사회조직을 암시했다. 사회 상태에 대한 두 학자의 상이한 이해는 인간 본성에 대한 상이한 이해에서 생겨났다. 바스티아는 인간에게 욕구와 자유의지 그리고 사유 능력이 있다고 봤지만, 루소는 사유능력에 대해 다른 견해를 보였다. 루소는 추상적 사유와 언어 능력을 인간의 본성에서 배제했다.

  •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 생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모두 본능 속에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사회에서 생활하는데 필요한 것만을 연마된 이성 안에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회 상태는 추상적인 사유와 언어 그리고 이것들로 형성된 사유재산 개념의 창조물이므로, 그는 사회 상태를 자연에 반하는 상태, 약탈자들이 의도적으로 기획한 상태, 인류의 자유와 행복이 망가진 타락의 상태로 분류했다.

  • 루소 (같은 책) / “어떤 지역에 울타리를 치고, ‘ 이곳이 내 땅이다!’ 라고 선언하고, 사람들이 그 말을 믿을 만큼 단순하다는 것을 안 최초의 사람이, 시민 사회의 진정한 창설자였다. 울타리의 말뚝을 뽑아내고 개천을 메우며 ‘저 사기꾼 말을 듣지 마시오. 열매는 모두의 것이고 땅은 누구의 소두요 아니라는 것을 잊으면 여러분은 파멸합니다.’ 라고 외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는 얼마나 많은 범죄, 전쟁, 살인, 가난 그리고 공포를 인류에게서 없애주었을까?”

그러므로 바스티아의 자연법은 루소의 자연법과 큰 차이를 갖고 있다. 전자는 인간의 이성과 사유능력을 인간의 본성으로 인정하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다. 전자는 사회를 인류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자연적 조건으로 간주하지만, 후자는 사회를 타인을 착취하려는 사람들이 형성한 인공적 창조물로 이해했다.

  • 루소 (같은 책) / “한마디로 한편으로는 경쟁과 대립관계, 다른 한편으로는 이해환계의 대립, 그리고 항상 다른 이들을 희생시켜 자신의 이익을 얻으려는 숨겨진 욕망, 이 모든 악이 사유(私有 사적 소유)의 첫 번째 결과이고 갓 생겨난 불평등과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바스티아는 자유를 문제의 해법으로 제시하지만, 루소는 망가진 자연 상태를 보강할 세련된 사회조직의 수립, 그리고 조직을 구성할 초월적 입법자를 문제의 해법으로 제시한다.

  • 루소 『사회계약론』 / “입법자는 모든 면에 있어 국가 내에서 특출한 자다. …… 그것은 인간 제국과는 아무런 공통점도 갖지 않는 개별적이고 우월한 기능이다. …… 그렇게 해서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두 가지를 입법 작업 내에서 동시에 보게 된다. 하나는 인간의 힘을 넘어서는 하나의 계획이고, 다른 하나는 그 계획을 실행하기 위한 아무것도 아닌 권위다.”

따라서 바스티아에게 루소는 자연법 철학자가 아니라 인공적 사회 조직과 인위적인 계획을 주장하는 기획자다. 바스티아에게 루소의 계약론은 사기·협잡에 가깝다. 왜냐하면 루소의 입법자는 민중을 설득하는데 힘도 이론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폭력 없이 끌어갈 수 있고 증명하지 않고도 설득할 수 있는 다른 범주의 권위”, 다시 말해 “하늘의 중재”에 호소하기 때문이다. 바스티아는 루소의 이론이 도출하는 이 같은 암울한 결론을 지적하며, 루소의 사상으로부터 다양한 국가주의와 사회주의가 파생되어 나온다고 이해했다.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은 루소의 철학이 잉태한 파리의 빛과 어둠이었던 것이다.


(Jin90g [정복 대 교환])

결론적으로 바스티아의 자연법 이론은 루소의 자연법 이론과 상반된다. 물론 그들은 서로 다른 본성을 가진 실재들, 그리고 그것들 사이에 성립하는 법칙의 존재를 인정한다. 그들은 모든 생물들이 고유한 생존·번영의 원리를 타고 난다는 것 또한 인정한다. 그러나 인간성에 대해, 그들은 결코 양립할 수 없다. 바스티아는 인간이 사유 능력과 자유의지를 갖고 태어난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루소는 인간의 이성이 태생적 능력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인간성 일반 법칙으로부터 도출되는 사회의 본질에 대해서도, 그들은 양립할 수 없다. 따라서 바스티아의 자연법은 루소의 자연법과 상반된다. 이 둘은 서로 대척점에 서 있다.

필자가 보기에, 바스티아의 자연법과 자연 상태 이론은 루소의 견해 보다는 로크의 견해와 비슷하다. 로크는 『통치론』에서 만인을 구속하는 자연법의 존재를 인정했다. 그리고 그는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의 자연 상태를 인정했으며, 인간을 지배하는 자연법을 이성, 다시 말해 신이 인류에게 준 공통의 규칙과 척도라고 규정했다. 나아가 로크는 신이 인간을 사회생활에 적절한 본성을 가진 피조물로 만들었다고 보았다. 로크의 생각은, 자연법과 인간의 자연상태에 대한 바스티아의 생각과 유사하다. 물론 사회 조직의 본성과 사유재산의 원칙 그리고 사물의 가치 등의 문제에 대해서 두 사람은 차이를 보인다.

같은 이유로 현대의 로스바드(Murray N. Rothbard)의 자연법 이론이 바스티아의 자연법 이론과 유사하다. 로스바드는 ‘친시장적 무정부주의 정치경제학’을 정초한 학자라고 할 수 있다. “로스바드 정치경제학의 철학적 토대는 그가 ‘자유론’(Theory of Liberty)이라고 명명한 자연법적 소유권 이론이다.”(정연교, 「로스바드의 자연법적 소유권 이론에 대한 비교 방법론적 고찰」, 『자유와 시장』 제2권 제1호)

물론 자연법을 이해하는 방식에 있어서 바스티아와 로스바드는 차이를 보인다. 바스티아는 자연법으로 정치경제학과 관련된 일반적인 선(좋음)을 논증하는 반면, 로스바드는 『자유의 윤리』에서 자연법으로 도덕적 선과 정의까지 명시적으로 정당화한다.

  • 로스바드 『자유의 윤리』 中 / “자연법(적) 윤리학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위해 ‘선’(goodness)이란 그 유형의 피조물을 위하여 최선의 것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판결을 내린다. 그러므로 ‘선’이란 그 피조물의 속성에 달린 것이다.” (전용덕, 김이석, 이승모 역)

또한 바스티아는 로크처럼 신에게 자연법 창조의 영광을 돌리지만, 로스바드는 ‘과학’으로서 자연법을 다룬다. 자연법이 창조의 문제를 다루는 이론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스바든느 자연법을 종교에 대해 중립적인 이론으로 이해한다.
이에 대해 필자가 다른 형이상학 논문의 구절을 빌려 주석하자면, ‘왜 존재하는가?’는 학문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 질문이다. “왜냐하면 ‘왜?’라는 물음 자체가 존재를, 그것도 최소한 둘 이상의 존재자와 그들 사이의 연결을 전제로 하는 존재 내부에서의 물음이기 때문이다. 존재는 있고 하여간 무無는 아니라는 것, 이것이 모든 분석이 끝나는 종착점이지, 그것 자체가 다른 것에 의해 설명되어야 할 어떤 것이 아니다.” (최정식, 「플라톤의 기초존재론초」, 『서양고전학연구』 제7권)

따라서 우리는 바스티아가 자신의 자연법 이론을 어떤 식으로 차별화하는지 말할 수 있다. 바스티아는 인간이 자유의지와 더불어 사유 능력을, 이성을 갖고 태어난다는 것을 인정한다. 물론 자유의지는 잘못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내포한다. 또한 바스티아는 사회 조직을 계약의 작품이기 보다는 인간성 일반 법칙으로부터 생겨난 자연적 조직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자연적 사회 법칙과 조화가 존재한다.

그에게 사회는 교환으로 이루어진 질서이므로, 사회의 법칙은 교환의 법칙이다. 자연법이 사회 법칙의 토대이기 때문에, 사회는 전능하고 위대한 정치가의 개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번거롭게 인공적인 사회를 디자인할 필요가 없다. 인간이 의지할 사회의 견고한 토대가 이미 주어져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신께서 창조하셨다. 따라서 바스티아의 자연법 이론은 루소에 상반되며, 로크와 닮았고, 로스바드에 비교하여 종교적인 색채를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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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신의 창조’라는 마지막 지점에서, 바스티아의 자연법 이론은 한 가지 비판을 받는다. Cubeddu와 Masala는 바스티아의 자연법을 ‘신의 계획’이라고 해석했고, 그의 자연법 이론에 가톨릭 섭리 개념이 뒤섞였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그들은 바스티아의 조화 이론이 결국 신의 ‘계획’이라는 뜻에서, 섭리주의자들의 설계 이론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필자가 보기에 그들의 비판은 매우 적대적이며, 동시에 바스티아의 정치경제학 기초개념에 반하는 비판이다. 필자는 이 지점을 지적하여 바스티아의 자연법 이론을 정당화하고, 교환 개념 분석의 토대를 보다 견고하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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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 태그는 언제까지 달아야 하는 건가요? 기준이 있을텐데 잘 모르겠네요.... 어쩌지.. 누구한테 물어보나...

명성도 55였나, 그럴거에요 ㅎㅎ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