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집>

in kr •  7 years ago 

사상체질뿐 아니라 MBTI나 에니어그램, 나아가 골상학이나 사주나 별자리 등은 '과학적 수준'을 별도로 하면 인간 이해, 곧 자기나 타인을 이해하려는 유형화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자신을 포함한 사람을 만나다 보면 일종의 유형을 '발견'하게 되는데, 간혹 초면이나 잘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그간의 정리된 유형을 그에게 덧씌운다. 


개별자를 분별하는 데에 드는 정신적 비용이 크니, 이 유형은 간편하게 세상을 살게 도와준다. 유익이 없지 않다. 그러나 유익만 있는 것은 아니고, 비용도 따라온다. 상대방이나 자신을 특정한 유형으로 간주하면 링크하는 노래 가사에 나오는 '새장' 속에 파악 대상을 두기 마련이다. 


우리 삶과 내면은 단일하지 않고 매우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때로 내 안에 특정 성질이 여건을 만나 나오고, 그것에 스스로 놀라고 당황할 때도 있다. 그것이 부정적이라면 자책과 자기 혐오를 하기도 한다.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특별히 내가 반대하거나 거절하는 견해를 내세우는 사람을 볼 때 나는 그를 유형에 가두기보다는 '그'를 보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나도 그 유형에 가두지 말라는 요청이기도 하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생긴 유형에 붙잡히지 않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유형은 어쩌면 존경 혹은 경멸의 양자택일로 우리를 몰아가는지 모른다. 


나는 '존중'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20대 때 내 아버지는 자신은 누구를 존경하지도 않고, 누구에게서 존경받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아주 좋은 말이라 생각하여 지금도 기억한다. 나도 실상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는다. 아버지로서 존중한다. 나도 자식들에게 존경받고 싶지도 않고, 그럴만하지도 않다. 선생으로서도, 또 다른 무엇으로도 가능하지도 않은 존경받는 것과 거리가 멀어지고 싶다. 


정말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존경받는 것이 아니라 이해받는 것 혹은 사랑받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우리는 끊임 없이 누군가를 '새장' 속에 가두고 그 새장 속에 있는 누군가가 실제인지 허수아비인지는 뒤로 미뤄둔 채 사랑하고, 존경하고, 흠모하고, 미워하고, 경멸하고, 혐오하는 병집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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