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과 통합의 리더십 : 테세우스 (1)

in kr •  7 years ago 

□ 이기는 리더, 승리하는 리더십
- 창업과 통합의 리더십 : 테세우스 (1)

“저 변두리에는 불가사의의 것과 꾸며낸 것이 가득하며 그곳에는 시인과 이야기꾼이 살고 있다. 믿을 만한 것도, 명백한 것도 없다.”

플루타르코스는 그의 영웅전에 실려 있는 테세우스에 관한 서술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전설의 영역으로부터 이성의 두레박으로 퍼 올린 얘기들임을 아이스킬로스 비극의 한 토막을 인용하는 형식으로 순순히 자백하였다. 이는 당사자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일종의 허위자백에 해당했다. 지금처럼 문자에 입각한 기록문화가 발달한 시대와 달리 고대의 고대, 즉 선사시대를 갓 벗어난 직후에 인류가 경험한 사건들의 대부분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구비문학의 서사 형식을 빌려서 문명세계 안에 갈무리되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일반인들이 글을 읽고 쓸 줄 알게 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심지어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일부 국가들에게는 인구 가운데 대다수가 아직까지도 문맹 상태로 남아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해보면 고대에 글을 읽고 쓸 줄 안다는 것은 상당한 고급기술에 속했다.

글을 쓰는 것과 글을 장시간 보존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작업이다. 과거에는 설령 글을 쓸 줄 알았다고 해고, 자신이 쓴 글을 온전한 상태로 오랫동안 보존할 방법을 찾기가 마땅치 않았다. 손톱만 한 메모리칩 하나에 백과사전 수십 개가 너끈히 들어가고도 남을 현대적인 컴퓨터는 당연히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꿈같은 일이었고, 종이든 파피루스든 양피지든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대량생산이 되지 않았던 탓이다. 따라서 벽화 등의 그림이야말로 장황하고 복잡다단한 역사적 사실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후세에 남길 수 있는 최고의 기록수단이었다.

또 한 가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바로 인간의 뇌였다. 생각해보라. 전원공급도 필요하지 않고, 기본적으로 수십 년 동안 수명과 성능이 보장되며, 더욱이 휴대하기에 간편한 저장장치로는 사람의 머리를 능가할 만한 물건(?)이 여전히 개발되지 않고 있다. 문제는 인간의 두뇌는 입력할 때의 내용과 출력할 때의 내용이 같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그것도 주관적인 망각의 동물이다.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잊고 싶은 것은 잊는다. 자랑스러운 건 키우고, 부끄러운 건 줄인다.

그러나 세월의 풍화와 사람들의 취사선택에도 불구하고 뼈대와 근본은 거의 원형에 가깝게 건사되기 마련이다. 수천 년의 장구한 시간을 두고서 머리에서 머리로, 입에서 입으로 전승돼왔을 우리네 단군신화와 그리스인들의 일리아드가 단지 꾸며낸 이야기만은 아닐 수 있는 이유다. 이러한 이야기들의 사실성과 신빙성은 고조선의 수도인 평양성이 자리를 잡았던 곳으로 추정되는 중국의 요서 지방이나, 도시국가 트로이가 존재했던 장소로 알려진 터키 서해안 지방에서 끊임없이 대량으로 출토․발굴돼온 유물과 유적들로 인해 생생하면서도 구체적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그 내용이 아무리 읽어도 믿음이 가지 않고 있을 법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독자 여러분께서 고대의 이야기임을 염두에 두시고 슬그머니 넘어가주기를 빈다.”

이다희 선생이 완역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권에 담긴 플루타르코스의 육성이다. 필자는 이것이 플루타르코스의 지나친 겸손인 듯해 마치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플루타르코스마저 이토록 지독한 겸양을 보이면 그의 역작을 그야말로 내 멋대로 요리하고 소화해놓은 나란 사람은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표현처럼 얼굴에 미군이 자랑하는 최첨단 벙커버스터 폭탄으로도 뚫지 못할 초강력 합금을 깔고서 뻔뻔스럽게 글쓰기를 이어가는 것을 빼고는 별다른 뾰족한 자구책이 없을 성싶다.

필자의 신상발언은 이 정도로 충분할 테니 이제 본래의 주제로 되돌아가도록 하겠다. 플루타르코스는 「영웅전」의 애당초 출발지점이 로마의 아테네를 창건한 테세우스나 로마의 건국자인 로물루스가 아니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는 이에 앞서서 리쿠르고스와 누마 왕의 생애를 이미 다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강물을 따라서 상류로 올라가다보면 마침내 시원과 맞닥뜨리는 법이다. 플루타르코스는 그리스와 로마라는 두 개의 거대한 강의 물줄기를 참을성 있게 거슬러 올라온 호기심 강한 탐험가였다. 따라서 그가 이름 높은 아테네를 세운 테세우스와, 천하무적의 영광스러운 도시인 로마의 아버지라고 할 로물루스를 차례로 만나는 것은 전연 어색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대단원이었다.

테세우스와 로물루스는 비교의 대상으로 삼기에 딱 알맞은 이상적 한 쌍이었다. 그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굉장히 많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힘과 지혜를 겸비한 뛰어난 전사였다. 자신들이 세운 도시를 대도시로 우뚝하게 성장시킨 점과, 여자들을 폭력적으로 거칠게 대한 점과, 불행하고 부끄러운 가족사를 가진 점에서 공통적이었다. 친척들의 미움과 분노를 피하지 못한 일과, 인생 말년에는 시민들과 갈등을 빚다가 석연치 않게 죽은 일 또한 양자 간의 두드러진 공통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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