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는 리더, 승리하는 리더십
- 위기 극복의 리더십 : 카밀루스 (11)
만리우스는 급진적인 체제변혁을 시도하다가
기록마저 말살당하는 비극적 운명을 맞이했다는 점에서
로마공화국의 레온 트로츠키(1879~1940)였다고 볼 수도 있다.
침략자들을 되레 침략해 크나큰 성공을 거둔 카밀루스가 다음에 밟을 순서는 화려한 개선행진이었다. 이제는 단 한 사람을 제외한 그 어떤 로마인도 카밀루스의 승리를 순전히 행운의 소산으로 돌리며 그를 노골적으로 시샘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위대한 로마의 구원자에게 감히 공공연히 반기를 든 무모한 자는 누구였을까? 그는 다름 아닌 마르쿠스 만리우스였다. 카피톨리움에 침입한 갈리아인들을 이 잡듯이 소탕한 용감한 전쟁영웅 만리우스 말이다.
만리우스는 수도의 심장부를 결사적으로 지켜낸 공적을 인정받아 동료 시민들 사이에서 카피톨리누스라는 영광스러운 별명으로 통하고 있었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만리우스는 대중의 환심을 사기 위해 부채탕감 조치를 취하고, 옥에 갇힌 자들을 풀어주었는데 이러한 행위들은 다수의 불평불만 분자들을 규합해 로마에 독재정을 수립한 후에 만리우스 자신이 그 우두머리가 되기 위한 계략이었다.
필자는 만리우스가 행한 작업들은 실제로 사실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가슴 속에 독재자가 되려는 야심이 진짜로 있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아마도 만리우스는 민중의 힘을 빌려 급진적 개혁을 시도한 듯하고, 거기에 공포심을 집어먹은 온건개혁 세력에 의해 전격적으로 제거된 듯하다. 만리우스 숙청을 주도한 일이 카밀루스의 이력에서 공적이 아닌 오점에 가까운 이유다.
만리우스 제거를 위해 첫 번째로 총대를 멘 사람은 퀸투스 카피톨리누스였다. 그가 독재관에 임명된 것은 오로지 만리우스 타도에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만리우스를 끝장내기에는 너무나 약골이었다. 민중이 만리우스 체포에 항의해 상복을 입고서 시위를 벌이자 이 소심한 독재관은 이내 죄인의 석방을 지시했다.
자유의 몸이 된 만리우스는 더욱더 기세등등해졌다. 퀸투스 카피톨리누스는 정치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패착인 상대를 죽이지도 못하면서 약만 올리는 실수를 저지른 셈이었다. 결국 카밀루스가 구원투수로 또다시 긴급 투입되었다. 종전의 등판과 차이가 있다면 외환이 아닌 내우를 처리하고자 마운드에 올랐다는 점이었다.
카밀루스는 과감성과 지략을 겸비한 최고의 소방수였다. 게다가 권위마저 갖추고 있었다. 갈리아인들과의 전쟁에서 세운 전공에 관해서라면 만리우스는 카밀루스 앞에서는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격이었다. 카밀루스야말로 만리우스를 처단하기에 최상의 적임자였다.
군사 호민관에 다시금 임명된 카밀루스는 재판정을 카피톨리움 언덕이 보이는 포룸에서 도시 밖의 페텔리누스 숲으로 즉시 옮겼다. 만리우스는 재판에서 불리한 상황에 처할 때마다 울먹이는 표정으로 카피톨리움을 향해 두 팔을 뻗으며 대중의 동정심을 자극하곤 했다. 카밀루스는 이 수법이 먹혀들 여지를 원천봉쇄했다. 카밀루스의 주도면밀한 법정 전략 덕분에 만리우스에게는 유죄가 선고되었다. 그는 카피톨리움 언덕 아래로 떨어져 죽는 벌을 받았으니 만리우스의 성공과 파멸이 똑같은 장소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만리우스를 처형한 카밀루스는 카피톨리움에 들어서 있던 만리우스의 집을 철거한 다음 그 자리에 모네타 여신에게 바치는 신전을 짓는 일종의 부관참시를 시행했다. 그는 어느 원로원 의원도 다시는 그곳에 집을 짓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후속조치를 취함으로써 만리우스 사건을 최종적으로 마무리지었다. 카밀루스는 만리우스의 육신은 물론이거니와 그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마저도 이 세상에서 깡그리 말살시키려 했다.
- 위기 극복의 리더십 : 카밀루스 (11)
만리우스는 급진적인 체제변혁을 시도하다가
기록마저 말살당하는 비극적 운명을 맞이했다는 점에서
로마공화국의 레온 트로츠키(1879~1940)였다고 볼 수도 있다.
침략자들을 되레 침략해 크나큰 성공을 거둔 카밀루스가 다음에 밟을 순서는 화려한 개선행진이었다. 이제는 단 한 사람을 제외한 그 어떤 로마인도 카밀루스의 승리를 순전히 행운의 소산으로 돌리며 그를 노골적으로 시샘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위대한 로마의 구원자에게 감히 공공연히 반기를 든 무모한 자는 누구였을까? 그는 다름 아닌 마르쿠스 만리우스였다. 카피톨리움에 침입한 갈리아인들을 이 잡듯이 소탕한 용감한 전쟁영웅 만리우스 말이다.
만리우스는 수도의 심장부를 결사적으로 지켜낸 공적을 인정받아 동료 시민들 사이에서 카피톨리누스라는 영광스러운 별명으로 통하고 있었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만리우스는 대중의 환심을 사기 위해 부채탕감 조치를 취하고, 옥에 갇힌 자들을 풀어주었는데 이러한 행위들은 다수의 불평불만 분자들을 규합해 로마에 독재정을 수립한 후에 만리우스 자신이 그 우두머리가 되기 위한 계략이었다.
필자는 만리우스가 행한 작업들은 실제로 사실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가슴 속에 독재자가 되려는 야심이 진짜로 있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아마도 만리우스는 민중의 힘을 빌려 급진적 개혁을 시도한 듯하고, 거기에 공포심을 집어먹은 온건개혁 세력에 의해 전격적으로 제거된 듯하다. 만리우스 숙청을 주도한 일이 카밀루스의 이력에서 공적이 아닌 오점에 가까운 이유다.
만리우스 제거를 위해 첫 번째로 총대를 멘 사람은 퀸투스 카피톨리누스였다. 그가 독재관에 임명된 것은 오로지 만리우스 타도에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만리우스를 끝장내기에는 너무나 약골이었다. 민중이 만리우스 체포에 항의해 상복을 입고서 시위를 벌이자 이 소심한 독재관은 이내 죄인의 석방을 지시했다.
자유의 몸이 된 만리우스는 더욱더 기세등등해졌다. 퀸투스 카피톨리누스는 정치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패착인 상대를 죽이지도 못하면서 약만 올리는 실수를 저지른 셈이었다. 결국 카밀루스가 구원투수로 또다시 긴급 투입되었다. 종전의 등판과 차이가 있다면 외환이 아닌 내우를 처리하고자 마운드에 올랐다는 점이었다.
카밀루스는 과감성과 지략을 겸비한 최고의 소방수였다. 게다가 권위마저 갖추고 있었다. 갈리아인들과의 전쟁에서 세운 전공에 관해서라면 만리우스는 카밀루스 앞에서는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격이었다. 카밀루스야말로 만리우스를 처단하기에 최상의 적임자였다.
군사 호민관에 다시금 임명된 카밀루스는 재판정을 카피톨리움 언덕이 보이는 포룸에서 도시 밖의 페텔리누스 숲으로 즉시 옮겼다. 만리우스는 재판에서 불리한 상황에 처할 때마다 울먹이는 표정으로 카피톨리움을 향해 두 팔을 뻗으며 대중의 동정심을 자극하곤 했다. 카밀루스는 이 수법이 먹혀들 여지를 원천봉쇄했다. 카밀루스의 주도면밀한 법정 전략 덕분에 만리우스에게는 유죄가 선고되었다. 그는 카피톨리움 언덕 아래로 떨어져 죽는 벌을 받았으니 만리우스의 성공과 파멸이 똑같은 장소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만리우스를 처형한 카밀루스는 카피톨리움에 들어서 있던 만리우스의 집을 철거한 다음 그 자리에 모네타 여신에게 바치는 신전을 짓는 일종의 부관참시를 시행했다. 그는 어느 원로원 의원도 다시는 그곳에 집을 짓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후속조치를 취함으로써 만리우스 사건을 최종적으로 마무리지었다. 카밀루스는 만리우스의 육신은 물론이거니와 그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마저도 이 세상에서 깡그리 말살시키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