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과 통합의 리더십 : 로물루스 (4)

in kr •  7 years ago  (edited)
이기는 리더, 승리하는 리더십
- 창업과 통합의 리더십 : 로물루스 (4)

로물루스에게 개방과 통합은 동전의 양면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인 코미티움에 도랑을 판 다음 이곳에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열매와 씨앗들을 넣었다. 그러고는 사람들에게 각자의 고향에서 가져온 흙을 그 위에 조금씩 뿌리도록 했다. 이 도랑을 ‘문두스’, 즉 하늘이라고 불렀다. 로물루스가 이질적 분자들로 구성된 신생 국가의 백성들을 한마음 한뜻으로 통합하는 일을 하늘을 받들 듯이 중시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문두스를 중심으로 그린 원이 도시의 경계가 되었다.

건국 초기의 로마는 청동기 시대가 철기 시대로 이행하는 과도기에 놓여 있었다. 무기는 철제로, 농기구는 청동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흔했다. 로물루스가 한 쌍의 수소와 암소 목에다 건 쟁기에 청동제 보습이 달린 이유다. 그가 쟁기로 도시 주위에 깊게 고랑을 파자 뒤따라온 백성들이 왕이 퍼 올린 흙덩어리들을 도시 안쪽으로 향하게끔 다독여 정리했다. 성벽이 들어설 자리임을 알리는 표시였다. 성문이 들어설 곳은 땅을 갈지 않았다. 도시를 정식으로 창건한 날은 4월 21일로 선포되었다. 이후 로마인들은 이 날을 도시의 생일로 기념하여 대대적으로 축제를 열었다.

도시가 건설되자마자 로물루스가 제일 먼저 착수한 일은 군대를 조직하는 작업이었다. 그는 무기를 들 수 있는 연령대에 해당하는 남성 전원을 군단(레기온)으로 조직했다. 1개 군단은 보병 3천 명과 기병 3백 명으로 편성되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릴 정치적 조직체를 꾸리는 데도 나섰다. 로물루스는 민중(포풀루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자 1백 명을 뽑은 후에 이들 무리를 세나투스, 즉 원로원이라고 명명했다. 원로원의 구성원들에게는 파트리키우스라는 호칭이 붙었다.

원로원 의원들을 파트리키우스라고 부른 배경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제기되어왔는데, 플루타르코스는 영향력 있는 시민들은 일반 대중을 아버지가 자식을 보살피는 것처럼 아끼고 돌보며, 일반 대중은 윗사람들을 선의와 진정성을 갖고 따르라는 의도에서 로물루스가 이러한 작명을 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로물루스는 통치자들은 명예와 품위를 지키고, 피치자들은 질투와 시기를 멀리하는 조화로운 나라를 꿈꿨다.

통치자와 피치자는 보호자(파트로네스)와 피보호자(클리엔테스)로 불리기도 했는데 이들은 단순한 주종관계라기보다는 상호 존중하는 능동적 협력관계에 더욱 가까웠다. 파트로네스는 이를테면 법정 같은 곳에서 클리엔테스의 이해와 요구를 적극적으로 대변해줄 의무가 있었다. 클리엔테스는 어려운 처지에 빠진 통치자를 도울 책무가 있었다. 생계가 곤란한 파트로네스에게 딸의 결혼 지참금을 대신 마련해줄 정도였다. 파트로네스 입장에서 클리엔테스에게 되레 재정적 후견을 받는 것은 물론 몹시 창피한 일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도시를 세운 지 넉 달 후에 사비니족 여인들을 탈취해온 사건이 벌어졌다. 로마는 신생 국가였다. 한마디로 고대의 뉴프런티어였다. 서부개척 시대의 미국처럼 여성들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모자랐다. 로마가 유지되고 성장하려면 인구 증가가 필수적 과제였다. 그런데 다른 일은 몰라도 이건 남자들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이뤄낼 수 없는 목표였고, 로물루스는 이웃한 사비니 부족의 여인들을 납치해올 계획을 세운다. 이때 로마에는 다음과 같은 신탁이 내려졌는데 이는 로물루스의 떳떳치 못한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 사후에 꾸며낸 얘기였을 가능성이 크다.

“로마는 전쟁을 자양분으로 삼아 팽창할 것이며 가장 크고 위대한 도시가 될 것이다.”

바늘 가는 데 실 가듯이 전쟁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약탈이 따라붙기 마련이었다. 로마가 약탈을 통해 급격히 성장했음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역사적 진실이다.

로물루스가 세운 도시는 그의 문호개방 정책 덕분에 순식간에 외지인들로 가득 찼다. 그들 대부분은 가난하고 이름 없는 어중이떠중이로 결혼은 꿈도 못 꿀 처지였다. 그러니 사회적 결속력이 단단할 리 없었다. 로물루스는 건달 반, 부랑아 반의 국민들을 성실한 양민으로 교화시킬 방법은 단 하나, 장가를 보내는 것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건국 직후의 로마는 현대 한국의 스포츠팬들의
성비 분포에 못잖은 극심한 남초 현상을 겪었고
로물루스는 대단히 부도덕한 방식으로
이 문제의 해결을 꾀하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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