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극복의 리더십 : 카밀루스 (4)

in kr •  6 years ago 
☐ 이기는 리더, 승리하는 리더십
- 위기 극복의 리더십 : 카밀루스 (4)


로마를 중흥시킨 카밀루스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처럼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참척의 고통을 딛고서 나라를 구했다.

그를 향한 원성과 비난이 빗발치는 와중에 카밀루스의 아들 하나가 병으로 요절했다. 그럼에도 시민들의 분노는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아 급기야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라는 자가 그를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사랑하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 참척의 아픔도 모자라 피고소인 신세까지 돼버린 카밀루스는 비통한 심정으로 집에서 칩거에 들어갔다. 집안의 여인들만이 그의 동지가 되어주었다.

카밀루스가 받은 혐의는 에트루리아 원정 당시 전리품을 부당하게 챙겼다는 것이었다. 그의 집에서는 증거물로 황동문짝 한 개가 발견되었다. 카밀루스는 친구와 동료들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며 도와줄 것을 부탁했지만 그들은 재판에서 유죄판결이 떨어지면 벌금을 보태주는 것 이상의 행동으로는 나아가지 않으려 했다. 카밀루스를 돕다가 괜히 자기까지 미운털이 박힐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카밀루스는 믿었던 지인들의 외면과 배신에 치를 떨면서 로마를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마친 카밀루스는 로마 밖으로 나가는 성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성문에 이르자 그는 몸을 뒤로 돌리고는 카피톨리움의 신전을 향해 이렇게 간절히 기도했다.

“제가 고향에서 쫓겨나는 것이 저를 시기하는 자들의 비방 탓이라면 로마인들이 이러한 잘못을 뉘우치고 저 카밀루스를 필요로 하는 일이 반드시 일어나도록 해주시옵소서!”

이건 분명 저주였다. 그는 태어나 자란 조국을 저주할 만큼 악에 받쳐 있었다. 피고인이 자리를 비운 궐석재판에서 카밀루스는 1만 5천 아스의 벌금형에 처해졌다. 로마인들은 카밀루스를 박해한 것을 그의 바람대로 머잖아 후회하게 되었다. 그들이 받은 천벌은 카밀루스가 원하고 상상한 수준과 규모를 훨씬 뛰어넘어 로마는 유례없는 파괴와 지독한 불명예를 겪어야만 했다.

로마를 덮칠 불행을 예고하는 조짐은 여러 가지였다. 먼저 감찰관 율리우스의 죽음이 있었다. 감칠관은 로마인들이 각별히 존중하고 신성시하는 벼슬이었다. 그 직책의 담당자가 돌연사했으니 좋은 징조라고는 말하기 어려웠다. 다음 조짐은 다가올 비극의 성격을 더 뚜렷하고 구체적으로 예시했다. 정직함으로 유명한 마르쿠스 카이디키우스가 길을 가던 도중에 사람의 음성보다 더 우렁찬, 그러나 출처를 알 수 없는 목소리로부터 이와 같은 경고를 들었기 때문이다.

“관리들에게 아침 일찍 가서 전해라. 갈리아인들이 곧 들이닥칠 것이라고 말이다.”

갈리아 사람들은 켈트족의 후손으로서 알프스 산맥과 피레네 산맥 사이의 광대한 땅에서 살아왔다. 그들 중 일부는 영국 해협을 건너 브리튼 섬과 아일랜드 섬에 차례로 정착하였다. 이렇게 도처로 이주했음에도 불구하고 갈리아인들은 급격한 인구팽창으로 말미암아 고생해온 터였다. 그들은 공기가 기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하듯이 이탈리아 반도로 흘러들어왔는데, 그들을 로마로 이끈 결정적 원인은 포도주에 있었다.

포도주를 생전 처음 마셔본 갈리아 족은 그 맛을 도저히 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처자식까지 데리고 포도주가 나는 땅을 찾아 알프스를 넘어 로마를 향해 밀려들어왔다. 그들에게 포도주가 산출되지 않는 원래의 거주지는 이제는 거칠고 쓸모없는 황무지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갈리아인들의 첫 번째 공격 목표가 된 곳은 에트루리아 사람들이 세운 도시인 클루시움이었다. 클루시움 사람들은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갈리아인들을 당해내기 어렵다고 생각하고는 로마에 도움을 요청했다. 로마에서는 명성 높은 파비우스 집안의 남자들을 사절단으로 파견해 중재에 나서도록 했다. 중재가 성사되면 좋은 일이고, 설사 실패하더라도 지원군을 조직할 시간을 벌 수 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리라. 로마의 사절단이 이탈리아 반도로 쳐들어온 이유를 묻자 갈리아의 왕 브렌누스는 호탕하게 웃으면 대답했다.

“클루시움은 작은 도시 주제에 큰 땅을 자치하고 있소. 그게 바로 그들의 잘못이오. 로마도 주제에 맞지 않게 커다란 땅덩어리를 차지하고서 주변의 도시들을 계속 정복해오지 않았소?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가진 것을 양보하는 것은 신들도, 인간도, 심지어 짐승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오.”

로마가 하면 로맨스이고, 갈리아가 하면 불륜이냐는 브렌누스의 반문에 로마인들은 딱히 반박할 명분이 없었다. 브렌누스가 협상할 의사가 없음을 확인한 파비우스 집안의 사내들은 클루시움 사람들을 부추겨 전투에 임하도록 했다. 그런데 전투에 참여한 퀸투스 암부스투스가 브렌누스에게 도전했다가 되레 사로잡히고 말았다. 브렌누스는 중재 임무를 띠고 파견된 로마인들이 교전행위에 가담한 것은 명백한 약속 위반이라며 클루시움 공략을 전격적으로 중단시키고는 곧장 로마를 향해 진격을 개시했다.

브렌누스는 빈틈없는 책략가였다. 그는 암부스투스를 살려 보내면서 전쟁을 피하고 싶으면 그를 처벌할 것을 로마에 요구했다. 전쟁을 도발한 책임을 로마에 전가하려는 교묘한 술책이었다. 콧대 높고 호전적인 로마 시민들이 단지 적과 싸웠다는 이유만으로 명성 높은 파비우스 집안 출신의 남자를 처벌할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브렌누스는 로마의 자중지란을 유도하고자 행군 속도를 일부러 늦추는 영리함까지 보였다.
Authors get paid when people like you upvote their post.
If you enjoyed what you read here, create your account today and start earning FREE STE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