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와 믿음의 리더십 : 마르쿠스 카토 (13)

in kr •  6 years ago  (edited)
☐ 이기는 리더, 승리하는 리더십
- 인내와 믿음의 리더십 : 마르쿠스 카토 (13)


카토는 스파르타쿠스 같은 카리스마적 반란자의 출현을 원천봉쇄하고자
건장한 남성 노예들에게 매매춘을 알선하는 등의 온갖 꼼수를 동원했다.

카토는 아들이 말귀를 알아들을 나이가 되자 즉시 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로마의 출세한 엘리트들 사이에는 그리스 출신의 유식한 노예를 자식들의 가정교사로 삼는 것이 유행이었지만 카토는 평소의 꼼꼼한 성격답게 직접 아들을 가르쳤다.

그가 아들에게 교육한 내용을 보면 한국의 웬만한 대입종합학원 뺨치는 수준이었다. 그는 글공부에 더해 무술과 승마, 수영과 심지어 주먹싸움까지 가르쳤다. 카토는 자신이 엮은 책인 「로마의 역사」를 아들에게 큰 글씨체로 필사하도록 시켰다. 자식이 조국의 자랑스러운 전통과 역사에 대해 통달하게 만들려는 목적에서였다.

그는 지덕체를 겸비하는 전인교육을 지향했다. 따라서 아들 앞에서는 마치 신전 안에 있는 것처럼 말조심을 했으며, “가족끼리 왜 이래”라는 식으로 함께 발가벗고 목욕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아들을 빼어난 인물로 키워내려고 거의 매니저처럼 행동했다. 그렇다고 항상 원칙적 잣대만을 자식 교육에 경직되게 들이민 것은 아니었다. 카토는 아들이 허약한 체질임을 참작해 그가 고집해온 지나치게 금욕적인 생활방식을 자식에게까지 무리하게 강요하지는 않았다.

카토의 아들은 아버지의 바람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는 부족한 체력을 강한 정신력과 두둑한 배짱으로 메우며 전쟁터에서 이름을 날렸다. 파울루스 아이밀리우스를 따라 페르세우스 왕과의 전쟁에 종군한 카토의 아들은 난전 중에 손에 쥐고 있던 칼을 땅에 떨어뜨렸다. 그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다른 무기를 들고서 싸움을 계속했다.

전투는 로마군의 대승으로 끝났고, 카토의 아들은 전사자들의 시신과 부러진 병장기들이 마구 뒤엉켜 작은 산더미를 이루고 있는 곳에서 잃어버린 칼을 되찾았다. 카토의 아들은 나중에 파울루스의 딸이자 소 스키피오의 누이인 테르티아와 결혼했다. 평범한 가문 출신의 카토에게 명문가와 사돈을 맺을 수 있다면 정파의 차이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로마의 여느 부자들처럼 카토는 수많은 노예들을 부렸다. 그는 인도주의 정신이 넘치는 노예주는 아니었으나 합리적 노예 소유주이기는 했다. 그는 전쟁 포로 출신의 노예들을 선호했는데 노예가 되기 전에 규율 잡힌 생활을 경험했던 터라 훈련시키기가 다른 노예들에 비해 편하기 때문이었다. 카토는 노예들에게 일을 하지 않을 때에는 잠을 자도록 했다. 그래야 노예들이 피로를 빨리 풀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카토는 남자 노예들이 도망을 치거나 사고를 치지 못하게끔 하려면 그들에게도 성생활을 시켜줘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노예들에게 돈을 받고는 여자 노예들과의 동침을 허락했다. 가외 소득도 거두면서, 노예들이 반항적이지 않게끔 다독이는 일석이조의 방책이었다.

출세하기 전의 카토는 먹을 것을 가지고 투정하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권력자가 되고 형편이 나아진 다음에는 손님들과 친구들을 대접하는 일에 크게 신경을 썼다. 그는 음식을 부실하게 내오거나 시중을 소홀히 하는 노예에게는 호된 채찍질을 가했다. 카토 본인이 밑바닥에서 일어난 까닭에 그는 아랫사람들이 어떤 경우에 불만을 품으며, 어떠한 방식으로 그러한 불만을 조직적으로 분출시키는지를 잘 알았다.

그는 노예들이 서로 화목하게 지내며 단결을 꾀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농간을 부렸다. 카토의 사전에 스파르타쿠스 같은 비범하고 리더십 있는 노예는 있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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