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와 믿음의 리더십 : 페리클레스 (12)

in kr •  6 years ago 
☐ 이기는 리더, 승리하는 리더십
- 인내와 믿음의 리더십 : 페리클레스 (12)


인류사의 걸작 문화유산인 파르테논 신전을 건립한 페리클레스,
그러나 그 또한 측근 관리에 실패해 커다란 곤욕을 치르게 된다.

그럼에도 아테네인들의 적개심은 전혀 가라앉지 않았다. 아테네는 메가라를 1년에 두 번씩 침략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까지 만들어 통과시켰다. 9‧11 테러로 뉴욕의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졌어도 미국 의회가 아프간이나 이라크를 연중행사로 공격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비록 고대의 일일지언정 아테네의 처사에는 지나친 측면이 분명 있었다. 메가라는 결백을 호소하면서 아테네의 여론이 자꾸만 강경론으로 치닫는 사태를 아스파시아와 페리클레스 탓으로 돌렸다.

페리클레스가 그리스 세계를 전쟁의 참화에 끌어들일 위험성을 무릅쓰고 메가라 제재를 고집한 이유를 어떤 사람들은 그의 오만하고 호전적인 성격에서 찾았다. 좀 더 객관적 시각을 유지하려는 이들은 페리클레스가 무엇이 국익을 증진하는 방법일지에 대한 나름의 소신과 판단에서 메가라와 스파르타를 적대시했다고 분석했다.

결국 그리스 전체를 파멸에 이르게 만든 페리클레스의 일련의 결정들에 대한 가장 혹독한 비판은 그가 측근들이 연달아 낙마하는 데서 비롯된 정치적 궁지에서 벗어나고자 전쟁을 부채질했다는 주장이었다.

최초의 낙마자는 페이디아스였다. 그는 아테네 여신의 조각상을 제작하는 일을 책임진 인물로서 페리클레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페이디아스에 대한 공격은 그의 조수였으나 페리클레스의 정적들에게 포섭된 메논이 맡았다. 메논은 페이디아스가 조각상에 쓰일 황금의 일부를 빼돌렸다고 고발하였다. 횡렴 혐의는 근거 없는 모함으로 밝혀졌지만 메논이 면책특권을 사전에 확보해놓은 터라 무고죄에 대한 처벌은 이뤄지지 않았다.

페이디아스의 운은 여기까지였다. 그는 신을 모독한 혐의로도 법정에 섰는데, 페이디아스가 만든 아테네 여신의 방패에 새겨진 장식무늬에 페리클레스는 물론이고 그 자신의 얼굴마저도 들어간 사실은 움직일 수 없는 유죄 증거였다. 페이디아스는 감옥으로 끌려가 그곳에서 죽었고, 그를 고발한 메논은 면세와 신변안전의 권리를 면책특권에 더해 덤으로 얻었다.

페리클레스의 정부 아스파시아와 멘토인 아낙사고라스는 거의 동시에 낙마하였다. 아스파시아의 죄목은 자유민 여성과 페리클레스의 밀회를 불경스럽게 주선했다는 것이었고, 아낙사고라스는 신들을 부정하면서 혹세무민을 일삼는다는 이유로 공격을 받았다.

페리클레스는 아스파시아의 재판에 직접 증인으로 참석해 눈물까지 흘리며 애인의 무고함을 배심원들에게 증명하려고 애썼다. 그는 만약 재판이 열리면 유죄 평결이 확실시되는 스승 아낙사고라스는 법정이 서기 전에 아예 도시 밖으로 미리 내보냈다. 법의 단죄는 가까스로 피했지만 이 두 사람이 종전처럼 페리클레스를 지근거리에서 더 이상 돕기는 어려워졌다.

페리클레스의 손발을 잘라낸 그의 반대파는 드디어 몸통을 겨냥했다. 그들은 페리클레스에게 그간 사용한 공금의 지출 내역을 각 부족에게 보고하도록 강제하면서 공금횡령 여부를 가릴 재판 절차를 차근차근 밟아나갔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 페리클레스는 자신에 대한 비판을 일거에 잠재우고 그의 장기집권을 지겨워하는 대중의 염증을 불식하는 수단으로 라케다이몬과의 갈등을 일부러 부추겼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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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권을 모두 골고루 나누어 맡고 나라에 뭔가 기여를 할 수 있다면 가난해도 상관없다는, 그런 믿음의 시발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