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는 리더, 승리하는 리더십
- 위기 극복의 리더십 : 카밀루스 (6)
카밀루스는 관군이 붕괴한 상황에서
의병들을 조직해 외적의 침입해 맞섰다.
노인들의 근엄한 모습은 침입군에게조차 신비로운 위압감을 주었다. 마침내 용기를 낸 갈리아 병사 하나가 파피리우스 마르쿠스에게 다가가 수염을 잡아당겼고, 노인은 버럭 화를 내며 손에 들고 있는 지팡이로 이 건방진 야만인의 머리를 가차 없이 내리쳤다. 느닷없이 머리통을 얻어맞은 병사는 칼을 뽑아 노인을 죽였고, 백주대낮의 포룸에서 당당히 죽기를 선택한 로마의 전직 고관들은 단 한 명도 남김없이 마르쿠스처럼 갈리아 병사들에게 살해당했다.
살육은 시내 전체로 번져 갈리아인들은 마주치는 로마 사람들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잔인하게 베고 찔렀다. 약탈과 방화가 기나긴 살인 행렬을 뒤따랐다. 그럼에도 카피톨리움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브렌누스의 항복 요구에 응하기는커녕 공격해오는 갈리아 병사들을 수없이 쓰러드렸다.
포위가 장기화되지 먼저 지쳐 나가떨어진 쪽은 갈리아 측이었다. 그들은 애당초 치밀한 원정계획 없이 로마로 쳐들어왔고, 따라서 곧 식량이 바닥나고 말았다. 이럴 경우 현지조달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만국 공통의 행동수칙이다. 갈리아 족은 부대를 나누어 일부는 왕의 인솔 하에 카피톨리움 공략작전을 계속하고, 나머지 대부분의 병사들은 로마 주변 지방으로 뿔뿔이 흩어져 약탈에 나섰다. 갈리아인들은 앞서의 전투들에서 잇따라 거둔 승리로 자신감을 넘어 오만함에 가득 차 있었다. 약탈에 나선 군대 중 가장 크고 최정예인 부대는 아르데아로 향했다. 여기는 낙향한 카밀루스가 은거해 있는 곳이기도 했다.
카밀루스는 세상을 달관한 은둔자로 한가롭게 소일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의 내면은 명예회복과 정계복귀를 향한 계획과 열망으로 꽉 차 있었다. 약탈과 주색잡기로 정신상태가 해이해질 대로 해이해진 갈리아 군대는 그의 재기를 위한 최고의 먹잇감이었다.
카밀루스는 갈리아가 강해서가 아니라 로마가 약한 탓에 전쟁에서 진 것이라고 젊은이들을 붙잡고 말했다. 아르데아의 청년들은 로마가 약해진 것은 지휘관들이 무능해서이지 보통의 로마인들이 용맹하지 못해서가 아니라는 카밀루스의 이어지는 이야기에 고개를 연신 끄덕이면서 앞 다퉈 무장을 갖췄다. 카밀루스와 청년들은 용기와 열정만 있다면 로마는 어떤 적을 만나도 승리할 수 있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 그러자 징집 연령에 해당하는 모든 남성들이 가세했고, 카밀루스는 완전무장한 이들을 성 안에 대기시키고는 날이 저물기만을 기다렸다.
갈리아인들은 로마와 싸우기 시작한 이래로 한 차례도 패배한 적이 없었다. 그들은 일개 지방도시인 아르데아가 무적의 갈리아 족에게 감히 덤벼들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자정 무렵, 술에 취해 깊은 잠에 곯아떨어진 갈리아 진영을 카밀루스의 의병들이 급습했다. 중앙정부의 명령으로 조직되지 않은 까닭에 이들은 사실 관군이 아닌 의병이었다. 술에 취하고 잠에 취한 갈리아인들은 대부분 그 자리에서 흙 덮고 영원히 잠들게 되었고, 무거운 다리를 억지로 이끌고 살아서 도망친 자들은 해가 뜨자마자 잔적 소탕에 나선 로마군 기병대에게 추격당해 추풍낙엽처럼 모가지가 떨어졌다.
로마가, 그것도 의병이 갈리아 군대를 상대로 최초로 거둔 승리에 관한 소식은 빛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이탈리아 반도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갔다. 알리아 강둑에서 겨우 살아남아 베이이로 수치스럽게 집단 도주한 패잔병들에게도 승전보는 어김없이 전해졌다. 그들은 비겁자들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모진 목숨을 구차하게 이어온 터였다. 복수의 욕망에 불타는 것이 당연했다. 베이이의 패잔병들은 자기들도 아르데아 사람들처럼 카밀루스의 지휘를 받고 싶다고 아우성을 쳤다.
카밀루스는 이들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직까지 그는 공식적으로 사면복권을 받지 못한 죄인의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의병장에게는 적군보다 더 두려온 것이 조정이기 마련이었다. 조일전쟁이 끝난 다음 선조 임금의 시기와 질투를 받아 화를 입은 조선의 내로라하는 의병장들을 기억하면 그 이유가 이해될 게다.
그러므로 카밀루스는 그 자신은 물론이고 휘하의 군대도 관군으로 인정받은 연후에야 베이이의 패잔병들을 통수하겠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베이이로 다시 넘어온 공을 이번에는 로마로 쳐 보낼 차례였다. 문제는 중앙정부가 피난해 있는 카피톨리움이 브렌누스의 갈리아군에게 철통같이 포위돼 있다는 점이었다. 비행기도, 무전기도, 휴대전화도 없는 시대인지라 연락을 취할 방법이 막막하기만 했다.
이때 폰티우스 코미니우스가 적군에게 점령된 로마로 잠입하는 위험한 전령 임무를 자청했다. 그는 애국심에 불타는 젊은이로서 적에게 붙잡힐 경우 서신에 적힌 내용이 발각될 것을 염려해 카밀루스의 메시지를 코르크 덩어리들에 새겨 옷 속에 넣었다. 코르크는 그가 강을 건널 때 부력을 제공하는 역할도 해줬다. 적군의 삼엄한 감시망을 뚫고서 어렵사리 카피톨리움 밑에 도달한 그의 앞을 경사가 가파른 낭떠러지가 가로막고 있었다. 코미니우스는 야음을 틈타 절벽을 기어올라 마침내 방벽을 지키는 로마군 보초병들과 만날 수 있었다.
- 위기 극복의 리더십 : 카밀루스 (6)
카밀루스는 관군이 붕괴한 상황에서
의병들을 조직해 외적의 침입해 맞섰다.
노인들의 근엄한 모습은 침입군에게조차 신비로운 위압감을 주었다. 마침내 용기를 낸 갈리아 병사 하나가 파피리우스 마르쿠스에게 다가가 수염을 잡아당겼고, 노인은 버럭 화를 내며 손에 들고 있는 지팡이로 이 건방진 야만인의 머리를 가차 없이 내리쳤다. 느닷없이 머리통을 얻어맞은 병사는 칼을 뽑아 노인을 죽였고, 백주대낮의 포룸에서 당당히 죽기를 선택한 로마의 전직 고관들은 단 한 명도 남김없이 마르쿠스처럼 갈리아 병사들에게 살해당했다.
살육은 시내 전체로 번져 갈리아인들은 마주치는 로마 사람들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잔인하게 베고 찔렀다. 약탈과 방화가 기나긴 살인 행렬을 뒤따랐다. 그럼에도 카피톨리움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브렌누스의 항복 요구에 응하기는커녕 공격해오는 갈리아 병사들을 수없이 쓰러드렸다.
포위가 장기화되지 먼저 지쳐 나가떨어진 쪽은 갈리아 측이었다. 그들은 애당초 치밀한 원정계획 없이 로마로 쳐들어왔고, 따라서 곧 식량이 바닥나고 말았다. 이럴 경우 현지조달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만국 공통의 행동수칙이다. 갈리아 족은 부대를 나누어 일부는 왕의 인솔 하에 카피톨리움 공략작전을 계속하고, 나머지 대부분의 병사들은 로마 주변 지방으로 뿔뿔이 흩어져 약탈에 나섰다. 갈리아인들은 앞서의 전투들에서 잇따라 거둔 승리로 자신감을 넘어 오만함에 가득 차 있었다. 약탈에 나선 군대 중 가장 크고 최정예인 부대는 아르데아로 향했다. 여기는 낙향한 카밀루스가 은거해 있는 곳이기도 했다.
카밀루스는 세상을 달관한 은둔자로 한가롭게 소일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의 내면은 명예회복과 정계복귀를 향한 계획과 열망으로 꽉 차 있었다. 약탈과 주색잡기로 정신상태가 해이해질 대로 해이해진 갈리아 군대는 그의 재기를 위한 최고의 먹잇감이었다.
카밀루스는 갈리아가 강해서가 아니라 로마가 약한 탓에 전쟁에서 진 것이라고 젊은이들을 붙잡고 말했다. 아르데아의 청년들은 로마가 약해진 것은 지휘관들이 무능해서이지 보통의 로마인들이 용맹하지 못해서가 아니라는 카밀루스의 이어지는 이야기에 고개를 연신 끄덕이면서 앞 다퉈 무장을 갖췄다. 카밀루스와 청년들은 용기와 열정만 있다면 로마는 어떤 적을 만나도 승리할 수 있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 그러자 징집 연령에 해당하는 모든 남성들이 가세했고, 카밀루스는 완전무장한 이들을 성 안에 대기시키고는 날이 저물기만을 기다렸다.
갈리아인들은 로마와 싸우기 시작한 이래로 한 차례도 패배한 적이 없었다. 그들은 일개 지방도시인 아르데아가 무적의 갈리아 족에게 감히 덤벼들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자정 무렵, 술에 취해 깊은 잠에 곯아떨어진 갈리아 진영을 카밀루스의 의병들이 급습했다. 중앙정부의 명령으로 조직되지 않은 까닭에 이들은 사실 관군이 아닌 의병이었다. 술에 취하고 잠에 취한 갈리아인들은 대부분 그 자리에서 흙 덮고 영원히 잠들게 되었고, 무거운 다리를 억지로 이끌고 살아서 도망친 자들은 해가 뜨자마자 잔적 소탕에 나선 로마군 기병대에게 추격당해 추풍낙엽처럼 모가지가 떨어졌다.
로마가, 그것도 의병이 갈리아 군대를 상대로 최초로 거둔 승리에 관한 소식은 빛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이탈리아 반도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갔다. 알리아 강둑에서 겨우 살아남아 베이이로 수치스럽게 집단 도주한 패잔병들에게도 승전보는 어김없이 전해졌다. 그들은 비겁자들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모진 목숨을 구차하게 이어온 터였다. 복수의 욕망에 불타는 것이 당연했다. 베이이의 패잔병들은 자기들도 아르데아 사람들처럼 카밀루스의 지휘를 받고 싶다고 아우성을 쳤다.
카밀루스는 이들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직까지 그는 공식적으로 사면복권을 받지 못한 죄인의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의병장에게는 적군보다 더 두려온 것이 조정이기 마련이었다. 조일전쟁이 끝난 다음 선조 임금의 시기와 질투를 받아 화를 입은 조선의 내로라하는 의병장들을 기억하면 그 이유가 이해될 게다.
그러므로 카밀루스는 그 자신은 물론이고 휘하의 군대도 관군으로 인정받은 연후에야 베이이의 패잔병들을 통수하겠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베이이로 다시 넘어온 공을 이번에는 로마로 쳐 보낼 차례였다. 문제는 중앙정부가 피난해 있는 카피톨리움이 브렌누스의 갈리아군에게 철통같이 포위돼 있다는 점이었다. 비행기도, 무전기도, 휴대전화도 없는 시대인지라 연락을 취할 방법이 막막하기만 했다.
이때 폰티우스 코미니우스가 적군에게 점령된 로마로 잠입하는 위험한 전령 임무를 자청했다. 그는 애국심에 불타는 젊은이로서 적에게 붙잡힐 경우 서신에 적힌 내용이 발각될 것을 염려해 카밀루스의 메시지를 코르크 덩어리들에 새겨 옷 속에 넣었다. 코르크는 그가 강을 건널 때 부력을 제공하는 역할도 해줬다. 적군의 삼엄한 감시망을 뚫고서 어렵사리 카피톨리움 밑에 도달한 그의 앞을 경사가 가파른 낭떠러지가 가로막고 있었다. 코미니우스는 야음을 틈타 절벽을 기어올라 마침내 방벽을 지키는 로마군 보초병들과 만날 수 있었다.
카밀루스에 대해 관심이 많이 생기네요.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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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에 대한 연구를 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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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습니다^^ 모든 영웅은 그 노력과 역경이 정말 어마어마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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