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는 리더, 승리하는 리더십
- 창업과 통합의 리더십 : 테세우스 (5)
크레타에 도착한 아테네의 젊은 남녀들은 곧장 미궁으로 끌려갔다. 미궁에는 황소의 머리에 인간의 몸을 한 반인반수의 괴물인 미노타우로스가 살고 있었다. 인질들은 미노타우로스의 밥이 되거나, 아니면 미궁을 이루고 있는 복잡한 미로 안에서 밖으로 빠져나갈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비참하게 굶어죽어야만 했다.
보다 현실적 설명은 크레타의 미궁은 감시가 삼엄한 지하감옥이었으며, 그곳에 갇힌 아테네인들은 운동경기의 우승자에게 노예로 주어졌다는 것이었다. 플루타르코스 또한 이러한 가설에 무게를 실어줬다. 그렇다면 크레타 문명에는 왜 터무니없이 잔인한 신화가 따라다녔을까? 플루타르코스는 크레타가 풍성한 언어와 화려한 문학을 꽃피운 아테네에게 하필이면 조공을 강요했던 데서 그 이유를 찾았다. 크레타는 압도적 국력을 자랑하는 강국이었고, 미노스는 이러한 나라를 건설한 뛰어난 입법자였다. 아테네 입장에서는 크레타를 만악의 근원으로 매도하고 공격하는 것이 치욕의 역사를 은폐할 수 있는 효과적 수단이었다.
테세우스가 아이게우스의 친아들로 인정받은 지 얼마 후 크레타에 세 번째로 조공을 바칠 시기가 됐다. 조공으로 바쳐질 희생자들은 제비뽑기로 선발되어왔다. 무고한 젊은이들이 무더기로 죽어나가는 참사를 벌써 두 차례나 경험한 아테네의 민심이 좋을 리 없었다. 사람들은 아무런 대응책도 마련하지 못한 아이게우스를 맹렬히 성토했고, 그 불똥은 급기야 테세우스한테까지 튀었다. 아이게우스가 백성들의 자식들은 지켜주지 못하면서, 자기 혈육에게는 나라의 통치권을 알뜰하게 챙겨주는 모양새가 만들어진 탓이었다.
테세우스에게는 곤혹스럽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아테네인들은 그가 얼마나 험난한 여정을 헤쳐 왔는지 헤아려주지 않은 채 테세우스를 영락없는 금수저 왕자님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시민들의 억측과 오해를 푸는 길은 백성들과 고난과 위험을 함께하는 데 있음을 기민하게 눈치 챘다. 테세우스는 크레타로 가기를 자청함으로써 백성의 운명이 자신의 운명임을 증명해보였다. 아들의 고집 센 성정을 잘 알고 있던 아이게우스는 테세우스의 크레타행을 만류하는 대신, 나머지 인질들을 선발하기 위한 추첨 작업을 계속 진행해나갔다.
볼모의 파견과 관련해 아테네와 크레타 사이에는 두 가지 약정이 맺어져 있었다. 첫째는 크레타로 향하는 아테네 청년들이 무장을 하지 않는다는 조항이었다. 둘째는 미노타우로스가 죽임을 당하면 더 이상 청년들을 공물로 보내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비무장의 인간이 강하고 흉포한 미노타우로스를 제거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시피 했으므로 이는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떠나는 젊은이들도, 떠나보내는 가족들도 재회의 희망을 포기하다시피 했고, 출항하는 배에는 오직 검은색 돛만 준비돼 있었다.
그럼에도 테세우스는 자신만만했다. 그는 일행 전부가 무사히 생환할 것을 확신했다. 아이게우스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서 배에다 여분의 흰색 돛을 싣게 하고는, 선박의 키잡이에게 테세우스가 살아 돌아올 경우 돛대에 하얀 빛깔의 돛을 달라고 사전에 단단히 일러두었다. 테세우스는 일행인 청년들을 데리고 시청과 신전을 차례로 들른 다음 무뉘키온(모우니시온) 달 엿새 째 되는 날 닻을 올리고 바다로 나갔다.
플루타르코스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신화를 매개로 접해봤을 테세우스의 활약상에 대해서는 심드렁하다고 해야 할 만큼 아주 짤막하게 소개해 놨다. 미궁에 들어간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가 넘겨준 실타래 덕분에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다음 크레타로 동행했던 아테네 젊은이들과 고향으로 금의환향했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플루타르코스가 정성들여 상세히 기술해놓은 내용은 그와는 많은 면에서 달랐다. 단적으로 그는 다이달로스의 아들인 이카로스에 관해서 언급해놓지 않고 있다.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하늘 높이 날다가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는 바람에 날개가 녹아 추락해 죽었다는 유명하면서도 무모한 젊은이 말이다. 신화 속의 얘기와 달리 역사 속의 다이달로스는 여느 인간답게 배를 타고 크레타를 탈출했다. 테세우스는 다이달로스의 신병을 인도하라는 크레타 측의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한 후 크레타 원정에 필요한 함대를 은밀히 건조하기 시작했다. 전함들의 일부는 외할아버지 핏테우스의 지휘 아래 트로이젠에서 만들어졌다.
<)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퇴치하는 모습
- 창업과 통합의 리더십 : 테세우스 (5)
크레타에 도착한 아테네의 젊은 남녀들은 곧장 미궁으로 끌려갔다. 미궁에는 황소의 머리에 인간의 몸을 한 반인반수의 괴물인 미노타우로스가 살고 있었다. 인질들은 미노타우로스의 밥이 되거나, 아니면 미궁을 이루고 있는 복잡한 미로 안에서 밖으로 빠져나갈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비참하게 굶어죽어야만 했다.
보다 현실적 설명은 크레타의 미궁은 감시가 삼엄한 지하감옥이었으며, 그곳에 갇힌 아테네인들은 운동경기의 우승자에게 노예로 주어졌다는 것이었다. 플루타르코스 또한 이러한 가설에 무게를 실어줬다. 그렇다면 크레타 문명에는 왜 터무니없이 잔인한 신화가 따라다녔을까? 플루타르코스는 크레타가 풍성한 언어와 화려한 문학을 꽃피운 아테네에게 하필이면 조공을 강요했던 데서 그 이유를 찾았다. 크레타는 압도적 국력을 자랑하는 강국이었고, 미노스는 이러한 나라를 건설한 뛰어난 입법자였다. 아테네 입장에서는 크레타를 만악의 근원으로 매도하고 공격하는 것이 치욕의 역사를 은폐할 수 있는 효과적 수단이었다.
테세우스가 아이게우스의 친아들로 인정받은 지 얼마 후 크레타에 세 번째로 조공을 바칠 시기가 됐다. 조공으로 바쳐질 희생자들은 제비뽑기로 선발되어왔다. 무고한 젊은이들이 무더기로 죽어나가는 참사를 벌써 두 차례나 경험한 아테네의 민심이 좋을 리 없었다. 사람들은 아무런 대응책도 마련하지 못한 아이게우스를 맹렬히 성토했고, 그 불똥은 급기야 테세우스한테까지 튀었다. 아이게우스가 백성들의 자식들은 지켜주지 못하면서, 자기 혈육에게는 나라의 통치권을 알뜰하게 챙겨주는 모양새가 만들어진 탓이었다.
테세우스에게는 곤혹스럽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아테네인들은 그가 얼마나 험난한 여정을 헤쳐 왔는지 헤아려주지 않은 채 테세우스를 영락없는 금수저 왕자님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시민들의 억측과 오해를 푸는 길은 백성들과 고난과 위험을 함께하는 데 있음을 기민하게 눈치 챘다. 테세우스는 크레타로 가기를 자청함으로써 백성의 운명이 자신의 운명임을 증명해보였다. 아들의 고집 센 성정을 잘 알고 있던 아이게우스는 테세우스의 크레타행을 만류하는 대신, 나머지 인질들을 선발하기 위한 추첨 작업을 계속 진행해나갔다.
볼모의 파견과 관련해 아테네와 크레타 사이에는 두 가지 약정이 맺어져 있었다. 첫째는 크레타로 향하는 아테네 청년들이 무장을 하지 않는다는 조항이었다. 둘째는 미노타우로스가 죽임을 당하면 더 이상 청년들을 공물로 보내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비무장의 인간이 강하고 흉포한 미노타우로스를 제거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시피 했으므로 이는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떠나는 젊은이들도, 떠나보내는 가족들도 재회의 희망을 포기하다시피 했고, 출항하는 배에는 오직 검은색 돛만 준비돼 있었다.
그럼에도 테세우스는 자신만만했다. 그는 일행 전부가 무사히 생환할 것을 확신했다. 아이게우스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서 배에다 여분의 흰색 돛을 싣게 하고는, 선박의 키잡이에게 테세우스가 살아 돌아올 경우 돛대에 하얀 빛깔의 돛을 달라고 사전에 단단히 일러두었다. 테세우스는 일행인 청년들을 데리고 시청과 신전을 차례로 들른 다음 무뉘키온(모우니시온) 달 엿새 째 되는 날 닻을 올리고 바다로 나갔다.
플루타르코스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신화를 매개로 접해봤을 테세우스의 활약상에 대해서는 심드렁하다고 해야 할 만큼 아주 짤막하게 소개해 놨다. 미궁에 들어간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가 넘겨준 실타래 덕분에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다음 크레타로 동행했던 아테네 젊은이들과 고향으로 금의환향했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플루타르코스가 정성들여 상세히 기술해놓은 내용은 그와는 많은 면에서 달랐다. 단적으로 그는 다이달로스의 아들인 이카로스에 관해서 언급해놓지 않고 있다.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하늘 높이 날다가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는 바람에 날개가 녹아 추락해 죽었다는 유명하면서도 무모한 젊은이 말이다. 신화 속의 얘기와 달리 역사 속의 다이달로스는 여느 인간답게 배를 타고 크레타를 탈출했다. 테세우스는 다이달로스의 신병을 인도하라는 크레타 측의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한 후 크레타 원정에 필요한 함대를 은밀히 건조하기 시작했다. 전함들의 일부는 외할아버지 핏테우스의 지휘 아래 트로이젠에서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