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과 통합의 리더십 : 로물루스 (8)

in kr •  7 years ago  (edited)

이기는 리더, 승리하는 리더십
- 창업과 통합의 리더십 : 로물루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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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물루스는 로마에서는 철의 여인 대처 총리 같이 통치하고,
알바에서는 입헌 군주 엘리자베스 2세처럼 군림하기만 했다.

로마의 욱일승천하는 기세는 주변국들을 긴장과 공포로 몰아넣었다. 약소국들은 로마에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 데 만족해하며 한껏 몸을 낮췄다. 반면에 국력에 자신감을 가진 나라들은 로마가 더 강성해지기 전에 미리 싹을 잘라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표적 경우가 에트루리아인의 도시인 베이이였다.

피네나이가 로마의 침략을 당했을 때 베이이는 피데나이의 구원 요청을 쌀쌀맞게 외면하는 것도 모자라 불난 데 부채질하는 격으로 부스러기라도 차지하려고 시도했었다.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이들은 로마가 피데나이 전체를 합병하자 피데나이의 지위와 영토의 원상회복을 요구했고, 로물루스는 이러한 요구를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일축했다. 개전의 명분을 확보했다고 생각한 베이이는 군대를 두 방면으로 나눠 진격해왔다. 한 무리는 피데나이로 향했고, 한 무리는 로마군을 공격하고자 접근해왔다.

서전은 베이이의 승리였다. 이 싸움에서 로물루스는 2천 명의 병사를 잃었다. 다음번 전투는 피데나이 근교에서 펼쳐졌다. 이번 싸움에서 로물루스는 절정의 완숙한 기량을 뽐냈다. 그는 지략과 용맹의 완벽한 결합을 구현했고, 인간이라고 믿기 어려운 경지의 초인적 괴력과 인내심을 발휘했다. 이 전투에서 에트루리아인들은 8천 명이 불귀의 객이 되었다. 승세를 잡은 로물루스는 베이이를 향해 말머리를 돌렸고, 베이이인들은 1백 년간 지속될 우호관계를 체결하자고 애원하면서 화평을 제의했다. 로마에게는 베이이를 완벽히 제압할 힘이 아직까지는 없었고, 로물루스는 일곱 개 구역에 달하는 커다란 땅덩어리를 할양받는 조건으로 강화 제안을 받아들였다.

소금은 인간 생활의 필수품이자 고대의 전략물자였다. 이 귀중한 소금을 풍부히 얻을 수 있는 드넓은 염전도 이때 로마의 수중에 들어왔다. 50명에 달하는 베이이의 족장들을 볼모로 데리고 온 일 역시 빼놓고 말해서는 안 되겠다.

베이이와의 싸움은 로물루스가 참여한 마지막 전투였다. 이후 로물루스는 손쉽게 권력과 명예를 쥔 자들처럼 권위주의적으로 변해갔다. 그가 새로운 성과를 거두는 일에 도전하기보다는 과거의 업적에 안주하기를 더 즐긴 탓이었다. 먼저 복식부터가 바뀌었다. 그는 소박하고 간소했던 옷차림을 버리고, 진홍색 속옷 위에다 가장자리를 값비싼 자줏빛 물감으로 물들인 토가를 걸쳐 입는 화려하고 거추장스러운 복장을 선택했다. 방문객들을 접견할 때는 왕좌에 누워 오만한 자세로 그들을 만났다.

이제 로물루스는 백성들이 언제라도 다가설 수 있는 친근한 존재가 더 이상 아니었다. 켈레레스, 즉 ‘재빠른 자들’이라는 의미를 지닌 일군의 젊은이들이 그를 밀착해 수행하며 로물루스의 시중을 들었기 때문이다. 켈레레스의 일부는 막대기를 들고서 로물루스 앞에서 걸었다. 시민들이 그에게 다가오는 것을 차단하려는 목적에서였다. 이들은 가죽으로 만들어진 노끈도 들고 있었는데, 이 끈은 로물루스가 체포를 명령한 자들을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즉각 현장에서 결박하는 용도로 쓰였다. 만년의 로물루스는 전형적인 폭군의 모습을 점점 닮아갔다.

알바를 대할 때의 로물루스는 로마를 대할 때의 로물루스와 다르게 여전히 젊고 푸르렀다. 외조부인 누미토르가 세상을 떠나자 로물루스는 자연스럽게 왕국의 왕위를 물려받았다. 그를 제외한 나머지 상속자들은 로물루스의 명성과 위세에 짓눌려 감히 왕권을 주장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입헌군주의 태도를 취했다. 1년을 단위로 매해 적당한 인물들에게 교대로 나라의 실질적 지배를 맡김으로써 대중의 지지를 확보했다. 이는 로마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려는 행동이기도 했다. 로마인들은 모두가 번갈아 백성이 되며, 모두가 돌아가면서 통치자가 되는 정치체제를 내심 원했다.

이때까지도 원로원 의원의 자리는 명예직에 가까웠다. 그들은 정사에 깊숙이 관여하지 않았다. 관례상 원로원에 모였을 따름이었다. 원로원 의원들에게는 나랏일을 결정할 실권이 아닌 상징적 지위와 예복만이 주어졌다. 일반 백성들이 갖지 못한 특권이 있다면 왕명이 공식적으로 선포되기 이전에 그 구체적 내용을 미리 알 수 있다는 것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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