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와 믿음의 리더십 : 마르쿠스 카토 (8)

in kr •  7 years ago 
☐ 이기는 리더, 승리하는 리더십
- 인내와 믿음의 리더십 : 마르쿠스 카토 (8)


마르쿠스 카토는 송해 선생처럼 영원한 현역으로 남기를 바랐다.

카토를 진짜로 심각하게 힘들게 한 것은 야만인들의 반란이 아니라 같은 로마인인 스키피오의 노골적 견제와 시샘이었다.

스키피오는 카토의 지휘권을 박탈하는 데 성공했으나, 카토는 귀국하는 길에 라케타니 족을 복속시키고 로마군 탈주병 6백 명을 처형함으로써 스키피오의 행동이 질투에 찬 부당한 처사였음을 증명했다. 그는 스키피오와 같은 로마의 귀족들이 태생이 낮은 이들에게 승리의 영예를 양보하지 않고, 카토처럼 평민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가문이나 명성이 더 뛰어난 이들과 자유롭고 공정하게 용맹을 겨룰 때 로마는 진정으로 위대한 나라가 될 것이라는 뼈 있는 말을 덧붙였다. 스키피오에게 한방 제대로 먹이면서도 로마의 본원적 강점을 정확히 묘사한 이야기였다.

스키피오가 적극적으로 방해공작을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원로원은 카토가 이베리아 반도에서 진행한 일들을 전폭적으로 비준함으로써 이 콧대 높은 귀족의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 로마로 돌아온 카토는 화려하고 성대한 개선행진을 벌여 스키피오의 속을 또다시 박박 긁어놓았다.

그때까지 로마에서는 개선행진을 마친 다음에는 곧장 공직에서 물러나 여유 있는 은퇴생활을 즐기는 것이 오랜 전통이었다. 카토는 이러한 관행을 거부하고 승진과 출세에 목마른 새내기 공직자처럼 신발끈을 다시 꽉 졸라맸다. 그의 사전에 불가능은 있을지언정 은퇴란 없었다.

물욕은 없으되 권력욕과 명예욕은 끝이 없는 카토에게 동방 원정은 학수고대해온 무대와 마찬가지였다. 그는 집정관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를 보좌해 트라키아 지방과 다뉴브 강 유역을 정벌했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밑에서는 군단 호민관 자격으로 안티오코스 3세와의 일전에 나섰다.

안티오코스 3세는 이베리아 반도의 고만고만한 야만족과는 비교가 어려운 강적이었다. 그는 과거 셀레우코스 니카토르가 다스렸던 아시아의 땅 대부분을 수복한 장본인으로서 이미 여러 호전적 국가들을 발아래 무릎 꿇린 바 있었다. 안티오코스 3세에게 서방의 신흥 강국 로마는 꼭 맞장을 뜨고 싶은 나라였다.

그리스 해방의 기치를 내건 안티오코스는 대군을 이끌고 유럽으로 건너왔다. 이때의 그리스는 로마 덕분에 마케도니아의 압제에서 진즉에 벗어난 상태였다. 그러나 반로마 성향의 대중 선동가들은 안티오코스 치하에서 그리스가 진정한 자유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청사진을 약속함으로써 그리스인들을 기대하는 무리와 우려하는 집단으로 반분시켰다.

로마는 발 빠르게 대응에 나섰다. 티투스 플라미니누스는 로마와 안티오코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도시들을 로마 쪽으로 확실히 잡아놓았다. 카토는 코린토스와 파트라이와 아이기온을 로마 편으로 단단히 줄 세웠다.

☞ 이 무렵의 카토와 갈등을 빚은 스키피오는 한니발과 싸운 대 스키피오(BC 235년~BC 183년)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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