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니체’는 이 질문에 대한 자신의 답을 그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통해 세상에 역설한 바 있다.(cf. ‘차라투스트라’란 페르시아의 한 종교 지도자의 이름이었다.) 니체는 인생이란 주어진 것이 아닌, 만들어 가는 것이라 주장해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가 능동적인 자세를 취해야 함을 강조했다. 또한 니체는 인생이란 해체와 구성, 파괴와 창조의 과정이라 주장했으며, 서양에서 오래간 영향력을 가졌던 그리스 문명(플라톤의 이데아론 etc.)과 기독교 문명(초월자적 세계관)이 사실은 서양문명을 허약하게 만드는 데 크게 공조했다고 주장해 세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니체는 그의 처녀작, <비극의 탄생>이란 저서를 통해 비극은 우리의 삶을 활력 있게 만들어주는 일종의 윤활유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cf. 비극은 영웅을 숭배했던 문화와 디오니소스 신화에서 태동된 장르이다.) 사람들은 행복에 파묻혀 있을 때, 불행을 생각하고, 불행 속에 있을 때 행복을 노래하는 역설적인 행동을 취한다는 게 이 주장의 요지이다.결론적으로, 니체는 자신의 저서를 읽은 독자들로 하여금 삶의 의미를 찾고, 단순한 독서에서 그치지 않고 삶에 그 내용을 적용하기를 원했다.
니체는 그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통해 지난 수 세기간 서양 문명이 기독교 문명과 그리스 문명에 의해 퇴폐되고 허약하게 됐음을 강조했다.
이를 니체는 ‘니힐리즘(Nihilism)’이라 표현했는데, 후에 우리나라는 이를 허무주의로 번역했다. 니체는 니힐리즘이 발생한 원인을 또 다른 저서, <도덕의 계보>를 통해 설명했다. 본디 강자의 가치언어(선, 아름다움, 고귀함)와 약자의 가치언어(악, 추함, 천박함)는 구분되어 있는데, 약자들은 강자를 부러워하고, 그를 넘어 원한과 적개심(Ressentiment)를 품는다. 약자들은 강자처럼 되기 위해 교묘한 전략을 펼치곤 하는데, 그 중 하나가 신 혹은 피안의 세계를 통한 가치의 전도이다. 이는 서열에 혼란을 가져다주었으며, 결국 니힐리즘으로 이어지게 됐다.
니체는 또 허무주의를 ‘적극적 허무주의’와 ‘소극적 허무주의’로 나누어 허무주의를 다양하게 바라보았다. ‘적극적 허무주의’는 능동적인 성격의, 강자의 허무주의이며, 허무주의로 인한 침체되고 피폐한 상황을 발판으로 더욱 힘쓰자고 주장한다.
반면, ‘소극적 허무주의’는 수동적인 성격의, 약자의 허무주의이며, ‘적극적 허무주의’와는 달리 체념적인 성격을 갖는다.
니체는 이상적 인간상으로 ‘위버멘쉬’를 제시한다. ‘위버멘쉬’는 ‘이행적 인간’으로 번역될 수 있는데,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은 짐승과 위버멘쉬 사이에 있다고 니체는 주장한다. 또한, 짐승으로 가까워지는 것이 아닌, 끊임없는 자기고양을 통해 위버멘쉬로 다가가는 것이 바람직한 인간상이라고 한다.
니체는 위버멘쉬에 이르는 정신의 과정으로 낙타의 정신, 사자의 정신, 어린아이의 정신을 소개한다. 낙타의 정신은 기존가치에 순응하는, 짐승에 가까운 정신이며, 사자의 정신은 기존의 가치에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개혁에는 미치치 못하는 정신상태이다. 마지막으로, 어린아이의 정신은 사자의 정신에서 나아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며 스스로가 삶의 주인이 될 수 있게 하는 정신 상태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