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과 응시

in kr •  5 years ago  (edited)

우리가 알고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세계의 중심에 있는 주체가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이론화되어 있다. 사르트르와 라캉은 이러한 중심화된 주체를 해체하기 위해 주체가 외부로부터 끊임 없이 위협 받는 다는 시선과 응시 개념을 만들어 냈다. 사르트르와 노마 브라이슨에서 '시선'을 라캉의 정신분석학에서 '응시'를 도출하여 앞으로 시선과 응시에 대해 전개하고자 한다.

  • 사르트르(J.P.Sartre) 「존재와 무」에서 타자의 시선 개념
  • 라캉(J.Lacan) 「정신분석학의 4가지 기본 개념」
  • 노만 브라이슨(Norman Bryson) 「기호학과 시각예술」

사르트르의 시선(Regard)

사르트르에게 "타자는 나를 바라보는 자"로 주체는 그를 하나의 객체로 동시에 한 인간으로 파악한다. 타자의 출현은 나의 세계와 나의 우주에 균열을 일으킨다. 타자는 나를 즉자 존재로 의식한다. 나는 스스로 존재의 근거를 찾아볼 수 없는 대자존재이기에 내가 실존의 근거를 알 수 있는 근거는 타자의 시선을 통해서다. 그리고 주체는 타자의 시선으로부터 나의 객관성을 얻는다. 그래서 주체는 타자를 즉자 존재로 바라본다. 타자라는 대자 존재의 출현으로 인해 세계는 구멍(Trough)이 된다. 그 구멍 속에서 나는 타인의 시선에 의해 사로잡힌 존재가 된다. 사르트르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인 열쇠구멍에 의하면 주체에 대한 시선의 출현은 주체가 열쇠구멍으로 어딘가 엿보고 있을 때 갑자기 일어나는 상상이다. 이를 상상적 단계라 한다. 즉, 사르트르의 시선은 어떤 대상, 타인에 대한 시선이지만 구체적인 타인이라기 보다는 주체의 경험 속에 들어와 있는 타인이다. 불분명한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사로잡힌 나는 상상적 단계에 이르고, 이러한 상상적 단계에서 나는 타인의 시선에 사로 잡힌 존재가 된다.

하이데거는 두 가지 양식의 시선(Vision)을 제시한다. 첫째는 인식론적인 시선으로 세밀한 관찰을 통한 사물의 객관성에 대해 인식 하는 것으로 존재에 대한 열림과 트인 공간이 전제한다. 두번째는 주체가 타자를 바라보는 존재론적인 시선이다. 이와 반대로 사르트르는 이를 비판하며 반 시각 중심주의에 의한 '시선(Regard)' 개념을 설파한다. 그렇기에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현상을 바라보는 관념적 인식론을 넘어선 유물론적인 존재론이다.

노만 브라이슨(Norman Bryson)은 「기호학과 시각예술」에서 공원의 관찰자 시나리오로 예를 들면 관찰자는 공원에서 혼자 있음을 발견한다. 공원 안의 모든 것은 중심으로부터 시선(Reagrd)이 된다, 공원의 모든 것은 살아 있는 지평선의 절대중심 앞에 펼쳐지는 자기 소유의 최초의 기쁨 상태이다. 이 때 타인이 침입한다. 관찰자가 누리던 풍요와 평온이 끝나 버린다, 타인은 관찰자의 평화를 깨뜨리고 관찰자의 자기 울타리를 무너뜨린다. 관찰자에서 관찰대상으로의 시선의 중심이 타인(침입자) 앞으로 수렴되고 다른 원근법이 생긴다. 관찰자에게서 옮겨져 타인이 새로 등장한 지점으로 향한다. 이제 이전의 관찰자는 중심이 아닌 접선이 된다. 관찰점이 아닌 소실점으로 타자의 관점에서 보면 머나먼 지평선이다. 시선의 중심은 이전의 관찰자는 없어지고 침입자 중심으로 바뀐다. 침입자는 관찰자가 누렸던 풍요를 뽑아내는 배수구이자 관찰자로부터 광경을 진공 속으로 삼켜 버리게 밀어 넣는 블랙홀과 같다. 보는 주체의 자기 소유는 그 자체의 말소 법칙으로 보는 그 순간 중심으로서의 주체는 소멸된다는 법칙을 형성한다.

주체의 지평선에 타자가 침입함으로써 자아는 파멸된 위협을 받고 이제 자아를 타자와의 관계 하에 광경 혹은 대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타자가 그의 시선으로 인해 대상화되는 것처럼 관찰자는 타자의 시선에 의해 대상화되지만, 주체와 대상은 그 충돌 상태에서도 그대로 상호 존재한다. 서로에게 위협을 받지만 근본적으로는 누구에게도 침해 받지 않았다. 침입자 대상이 관찰자인 주체를 위협하지만 실제로 주체를 해체시키지도 무효화시키지도 않는 변화에만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변화에 의해 주체는 강하게 살아남고 주체가 된다는 생각은 더 커진다.

라캉의 응시(Gaze)

정신분석의 욕망 이론에 기반을 둔 라캉의 응시는 감각기관의 현상학적 시각으로부터 상상적인 인식에 대한 비판을 위해 응시라는 개념을 도출한다. 기호학에서 언어의 영역 내에서 기표가 ‘말하는 주체’를 산출 하듯이 시각의 영역 내에서도 기표는 ‘보는 주체'를 산출한다. 즉, 본다는 것은 시각에 의해 작용하는 기표들의 산물로 삼는 주체를 산출한다고 가정한다. 주체는 시각 분야를 통솔하는 위치에서 시각의 중심에 선다는 데카르트의 코기토 개념을 제거한다. “나는 생각하지 않기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라캉의 선언이다. 나는 사라지고 사물이 나를 응시한다. 응시는 감각기관의 눈이 아니라 대상 a 이다. 대상a는 주체가 그림을 바라볼 때, 내 눈을 보고 있는 것은 만드는 시각 충동이며, 주체를 불안하게 하는 "죽음 충동"이다. 죽음 충동을 일으키는 사악한 눈은 탐욕스러운 눈이자 욕망의 눈이다. 이 때 주체가 응시를 넘어 대상a를 대하는 순간 실재와 조우하고 기표의 상징계는 붕괴한다. 주체가 자리잡게 되면 모든 새로운 시각의 자료는 시각 경험을 가로지르면서 조직되는 기표의 연쇄에 귀속되어야 한다. 이 연쇄라는 궤도의 사회적 형성 속에 미리 설립된 기표로부터 주체에 의해 내면화 되는 것을 응시라고 한다. 주체의 중심화된 정체성의 감각이 산출되는 심리 과정을 가상적(Imaginary)라고 부른다. 가상적(Imaginary)는 환영, 응시, 상징적 질서 일반을 구성하는 객관적 실재와 대립되지는 않는다.

시선(Regard)과 응시(Gaze)

돌아본다는 것의 원천은 샤르트르의 경우는 관찰자가 침입하는 것이고, 라캉의 경우는 시각영역에서 기표가 침입하는 것이다. 우선 기표의 막에 대한 정의를 한다면 사회 영역화된 시각에 대한 온갖 담론들로 이루어진 막은 망막과 세계 사이에 걸쳐 있다. 첫째 막은 그늘을 드리운 암점(scotoma 또는 얼룩)으로 우리가 보는 것, 외부로부터 우리에게 온 그물망에 걸친 그것이다. 둘째 막은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내가 보는 모든 것은 ‘본다’는 문화적 산물과 조화이며 문화적 산물은 내 인생과 무관하게 존재한다. 셋째 막은 시야를 억제 한다. 의미화, 의미하는 것은 빛에서 빛으로 더불어 작용하지만 그 자체는 빛을 지니지 않거나 혹은 나의 눈으로부터 빌린 빛 밖에 없다. 시각의 영역 내에 의미하는 것이라 불리는 어떤 것들이 끼어든다. 그 어떤 것들을 회화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라캉은 H.Holbein의 <대사들The Ambassadors, 1533>을 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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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전경에 있는 해골을 보면 기호들의 막인 암점의 삽입 효과를 알 수 있다. 보는 주체가 더 이상 시각적 경험의 중심에 있지 않다는 것으로 언어의 기표체계가 나를 중심에서 밀어 낸다. 왜곡된 형상인 해골은 침입자에 의해 당황한 관찰자로부터 주체의 소멸을 보여준다. 해골은 상징적 질서의 작업에 복종해야 하는 시각의 운명을 상징한다. 라캉은 시각과 회화의 모델만을 부정적이거나 위협적인 응시의 모델로 제공한다. 주체 형성은 자연으로부터가 아니라 문화 및 역사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다. 이렇듯 라캉의 중심 주제는 ‘탈중심’이다. 홀바인의 그림에서 해골과 선에서 던져진 방식은 이전에 사고했던 토대로부터의 근본적인 전환을 의미한다. 시각을 탈 해체하고자 하는 라캉의 응시 개념은 어떻게 권력이 시각 안에서, 순수형식의 신화 속에서, 순수인식과 문화의 보편적인 시각에서 그들의 작전을 위장하고 은폐하는가를 분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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