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 안가는 것

in kr •  5 years ago 

이해가 안가는 것을 마주했다.

나도, 너도, 누구도 그 것을 모른다. 우리가 하나의 어떤 것을 언어로 지시하면 그 대상은 의미를 지니고 지배 영역에 들어온다. 그러나 내가 의미를 부여하여 끊임 없이 분석하려 해도 답을 찾을 수 없다. 보편성을 지닌 객관적 방법론으로 그 이해 안가는 것에 주관적 특수성을 부여하여 이해하려 해도 혼돈의 소용돌이에 빠진다. 이해가 안가는 것, 이해 할 수 없는, 알 수 없는……그것이 나를 결핍시킨다. 그리고 결핍된 세계를, 욕망의 세계를, 상상의 세계 앞에 우두커니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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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해 안 가는 것에 마주할 때 이해가 안가는 것은 텅 빈 것이다. 나의 텅 빔이며 의미의 텅 빔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결정을 강요 받는다. 결정을 통해서 의미를 만들어야만 한다. 결정에 앞서 자유로운 선택의 여지를 남긴다면, 이는 자유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주체적 윤리이다. 자유로운 선택은 항상 열려있지만, 우리는 열려 있는 것을 마주보며 선택의 두려움 때문에 어떠한 결정하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머뭇거릴 때 공허함은 불안을 만들고 주체를 도덕이라는 기표에 복종시킨다. 결정하지 못하는 자의 결핍은 이해를 못하는 자의 결핍이다. 자유도 마찬가지로 선택의 결핍은 윤리의 결핍이다. 결핍된 주체는 껍데기라는 불안을 견디지 못하고 물신화를 결정의 도구로 받아들인다. 물신화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나는 자유롭고, 이기적이다라는 결핍된 욕망의 잔여물이다. 나는 책임지지 않는 완벽한 주체가 되려는 유기적 환상이다.

환상의 횡단은 시간의 구분 짓기이다. 물신화된 주체는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의 시간성을 현 시간을 과거(before)와 미래(after)로 구분 짓는다. 원인과 결과만 있는 분리된 시간에서 과거와 현재의 중간 영역의 현존의 현재는 제거된다. 현재는 과거이고 미래라는 동시성의 명제는 철저히 원인과 결과라는 의미 부여로 제거 된다. 현재는 물신 만이 있는 시간이며, 물신 이외의 모든 것은 모두 유령(데리다의 유령)이다. 우리는 유령을 만나는 순간을 회피하기 위해 욕망이라는 이름으로 시간을 ‘연기’한다. 결정된 미래를 위해 현재를 부정하고 과거의 욕망을 끄집어 낸다. 이러한 시간의 대립 구조 속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마주하는 최초의 순간의 선택에 복종한다. 그리고 의미를 부여하는 지식 체계의 이해 공간을 만든다. 결정하고 구분 짓기의 의미 안에서 혼란에 빠진 주체는 모든 원인이 외부로부터의 지식 체계라고 책임을 미룬다. 내부의 혼란과 외부의 체계 사이에 보이지 않는 틈이 있다. 보이지 않는 틈을 주시하면 원초적인, 물신된 나를 반갑게 맞아 주는 유령들이 있다.

내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을 마주할 때 그 틈을, 결핍을 의미 체계로 들어가게 하기 보다는 그 자체로 나는 드러내게 하는 것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마주할 때 구분 지어 결정하기 보다는 결핍되는 틈을 마주하여 한계를 알아 내면 어떨까?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을 마주하려면 이해하지 못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 발 걸음을 내 디디면서 “우리는 이해가 안 가는 것을 마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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