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과 윤리에 관하여

in kr •  5 years ago  (edited)

법과 윤리가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어 물리적 즉 외적으로 구속력을 갖는 객관적 규범임을 주장하는데 반해서 도덕은 개인이 자율적으로 선택한 자신의 주관적 규범으로서 오로지 그 자신에게 심리적으로 내면적으로만 적용되는 주관적 구속력을 행사한다. 윤리와 도덕이 다 같이 일종의 규범이라는 데는 서로 다를 바가 없지만, 윤리라는 규범이 실정법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법의 범주에 속하는 사회적 규범인데 반해서 도덕이라는 규범은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실증법과는 달리 한 개인이 주체적으로 자신에게만 적용하기 위해서 자율적으로 선택한 실존적 개인의 규범이다. 이와 같이 볼 때 법적으로 옳은 것은 원칙적으로 윤리적으로 옳은 것과 일치하지만, 도덕적으로 옳은 것과는 때로는 완전히 일치 할 수도 있고 때로는 완전히 배치될 수도 있다.

법과 윤리가 다같이 사회의 공통적 행동 규범인데 반해서 도덕이라는 규범은 사회적 규범 즉 사회를 지배하는 행동규범과는 상관 없이 윤리적으로 옳은 것이 자동적으로 도덕적으로 옳은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때로는 법적 및 윤리적으로 옳지 않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가 자주 경험하게 되는 도덕적 고민의 중요한 이유의 하나는 법 및 윤리로 대변되는 사회적 규범과 어떤 특정한 시점에서 우리가 한 실존적 개인으로 선택한 행동 규범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법은 윤리에 비추어서, 그리고 윤리는 도덕에 비추어서 정당화 되어야 하지만, 도덕이 윤리나 법에 의해서 정당화 되지는 않는다. 핵심적으로 말해서 인간의 은밀한 인간적 느낌 즉 도덕적 감수성을 무시하거나 떠난 어떠한 법적, 윤리적 그리고 도덕적 담론도 공허하지만, 윤리나 법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도덕은 자율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도덕은 물론 윤리 그리고 법의 문제는 그 근원에 논리나 지식의 객관적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은밀한 심성과 감성의 주관적 문제에 귀속된다.

근대 이후의 국가 체제에서는 도덕과 윤리는 공리에 따른다. 공동체 집단의 이익에 따라서 집단 윤리나 개인의 도덕도 좌우된다. 개인의 선택에 따른 자율적 규범의 도덕 마져 크게는 국가 공동체 부터 작게는 가족에 귀속된다. 여기서 하나 더 짚고넘어가야할 공리는 자본주의에서 개인이다. 푸코의 신자유주의 분석의 계보학에 따르면 개인은 하나의 기업화가 목표다. 사회의 가장 최소 구성원인 개인이 하나의 기업 이데올로기로 창출되는 체제가 신자유주의라고 푸코는 지적한다. 그래서 현대 사회에서 개인은 하나의 집단으로 가상화되어 도덕의 규범은 공리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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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倫理'라는 낱말은 그리스말에 어원을 둔 영어 ethic, 불어 ethique, 독어 Sittlichkeit라는 낱말, '도덕道德'이라는 낱말은 라틴어에 어원을 둔 영어 morality, 불어 moralite, 독어 moralitat라고 쓰는 낱말의 동의어로서 한자漢字로 표시한 것이다. 한편, 유교와 불교의 인간의 기본을 이루는 동아시아에는 윤리와 도덕 개념이 없었다. 단지 유교에서 내려오는 인륜과 도가 있지만 서양에서 넘어온 윤리와 도덕은 새로운 개념이다. 인륜과 도는 나라는 개인보다는 관계를 통한 '우리'가 기반에 깔려있다.

한국의 도덕과 윤리는 '우리'라는 동양적 상호관계에서 '개인'이라는 자유주의가 생략 됐을뿐만아니라 개인이 하나의 기업단위인 신자본주의 체제에 돌입했기 때문에 새로운 분석사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더이상 도덕은 개인의 선택 규범이 아니라, 우리라는 가상의 공리의 규범으로 윤리의 자리를 탈취한다. 그리고 윤리는 새로운 차원의 분석이 필요하다. 바로 소비주의 사회의 욕망이다.

라캉의 정신분석적 윤리

라캉은 전통적인 윤리를 지배권력의 질서를 유지하고 정당화시키는데 기여하는 단순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라캉의 정신분석 윤리의 근거는 가장 비윤리적인 욕망과 금지된 도덕적 행위 를 위반하는데서 발견된다. 그의 정신분석 윤리는 죽음 충동의 만족을 위해서 쾌락의 원칙을 넘어서는 것이며, 충동과 희열을 가지고 체제에 순응하는 태도를 거부하는 기쁨과 욕망이다. 그러므로 라캉은 욕망이 사회적 규범을 깨뜨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고, 새로운 윤리는 금지된 충동에서 비롯된 개인적 욕망의 만족을 추구하는 위반적인 행위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순수욕망의 만족을 요구하는 라캉의 윤리는 결국 새로운 질서를 지향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이 윤리가 추구하는 새로운 질서는 욕망의 무한한 실현을 위해 다양성과 독특성을 끝없이 열어젖힐 것이다. 결국 이 윤리는 끊임없이 욕망을 창출하면서 지배질서와의 균열을 초래할 것이며, 다양한 욕망의 공존을 가능케 하는 새로운 열린-질서를 지속적으로 추구할 것이다. 마침 내 라캉의 윤리는 성숙한 자아의 욕망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지배적 윤리에 저항하면서 곳곳에서 단절과 파열을 곳곳에서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따라서 억압이 없는 충동이 몰고 오는 순수 욕망의 만족을 위한 윤리는 승화를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는데, 그것은 억압에 의존하면서 공리적 통치에 근거 하고 있는 전통적 도덕질서를 극복해야만 하는 것이다. 결국 라캉의 윤리는 비 타협적인 욕망을 위하여 궁극적으로 기존질서의 파괴를 부르는 행동을 요구하 는 것이다.

새로운 잠재성의 윤리

윤리는 일관된 행동에서 나온다. 이 일관성은 개성을 무시하는 모든 것이 같아야 하는 획일성과 다르다. 사회적 도덕 규범에 의하면 윤리는 개인이 공동체에서 지켜야하는 선택이다. 항상 삶의 형태를 지킨다 하더라도 윤리에 따른 가치 판단 기준은 개인을 옭아맬 뿐만 아니라 규범에 규범에 의한 법적 판결에서 예외를 발생시키는 아포리아이다.

인간의 본성이 선과 악의 물음은 동서양의 철학자들이 많은 질문을 해왔던 익숙한 주제이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인간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혼돈(CHAOS)의 존재이다. 혼돈의 존재로 태어난 인간은 유아기를 거쳐 관계를 맺으며 윤리의식을 지닌다. 인간이 혼돈의 존재라면 윤리는 존재(~being)가 아니라 소유(~having)이다. 인간은 언제든지 윤리에 벗어날 수 있는 카오스의 존재이므로 도덕적 규범의 잣대는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기득권의 가치판단 기준이다. 이런 판단 기준은 모든 집단에서 적용되고 최종적으로 법정립적이다. 그래서 권력을 지닌 기득권은 권한을 누리며 도덕적 기준을 만들며 개인적인 선택의 윤리를 강요한다. 벤야민의 법정립적 폭력과 법보존적 폭력은 권력 유지 수단과 가치판단의 기준을 끊임없이 생성하는 폭력적 순환을 설명한다. 이런 순환을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윤리는 인간의 카오스적 존재의 새로운 윤리를 정립하는 어쩌면 신적 폭력의 범주일 수 있다.

벤야민의 예외상태를 새로운 삶의 형태로 승화시키는 아감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잠재성에서 삶의 형태의 철학을 내세운다. 그가 말하는 잠재성은 존재가 '~를 하지않을 권리'와 '~를 할 수 있는 잠재력'이다. 아감벤은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에서 바틀비가 말하는 I would prefer not to에서 '~하지 않는' 모든 행위를 중지시키는 태도를 비잠재성이라 칭한다. 여기서 새로운 윤리의 형태를 끌어오고자 한다. 기득권을 위한 도덕적 규범의 판단 기준의 연쇄 고리를 중지시키는, 도덕적 결벽증으로 인해 정치활동의 잠재성을 박탈하는 비판적 정치세력을 위한 윤리이자, 구원없이 판단으로 결정하는 법정립적 폭력의 좌표를 살짝 비트는 윤리적 행위이다.

새로운 도덕적 윤리의 기준은 존재의 잠재성을 박탈시키는 행위의 여부에 있다. 사회적 영향을 준 가해자는 다수의 더 큰 잠재성의 박탈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윤리적 기준과 도덕적 판단을 뛰어넘어 잠재성이라는 새로운 윤리 기준으로 판단하면, 판단의 부재를 중지시키며 새롭게 피조물을 구제하는 삶의 형태가 도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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