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대로 산다는 것]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난관에 부딪힙니다. 그러다보면 점점 내 소신을 잊고 다른 사람들의 말에 맞춰 살아가게 되죠. 그러나 목숨이 걸린 극한의 상황에 처한다면 어떨까요. 그렇게 되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당장 살아야하는 와중에 남의 의견에 귀 기울일 시간 따위는 없을 것입니다. 여기 그것을 몸소 체험하게 된 남자가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에이즈에 걸리게 된 남자 론의 이야기,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입니다.
[오프닝에서는 주인공의 두드러지는 특징이 드러난다]
영화의 오프닝은 주인공이 여성 인물과 관계를 맺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주인공의 모든 이야기는 여자로 통하고, 그는 에이즈에 걸린 동성애자 배우를 비난하죠.
오프닝에서 전달하는 정보는 오직 하나입니다. 바로 주인공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여자’라는 것이죠. 이 영화 같은 경우 오직 이 사실 하나로 모든 서사가 진행되기 때문에 다른 정보는 필요가 없습니다. 이렇게 주인공이 극단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을 경우 관객들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것이 변화하게 될 것임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주인공의 ‘변화’의 과정이 이 영화가 가장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죠. 여기서 알 수 있는 또 다른 정보는 그는 여자에 미쳐있을 뿐 아니라 호모포비아라는 것입니다. 이것 또한 그가 변화해야하는 또 하나의 성향이죠. 결과적으로 관객은 오프닝을 통해 론이 여자들과 시도 때도 없이 관계를 맺는 방탕한 생활을 하고, 더 나아가 그가 영화에서 언급된 배우처럼 ‘성병’에 걸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까지 알 수 있습니다.
[시한부들에게 적용되는 일반적인 법칙]
론은 전기 기술자입니다. 그는 어느 날 일을 하다가 작은 사고를 당해 병원에 가게 되죠. 그리고 그곳에서 에이즈에 걸려 30일밖에 못 산다는 진단을 받지만 부정합니다.
이 장면에서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불치병 판정을 받고 그 후 반응까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법칙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영화 뿐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적용되는 법칙이죠. 먼저, 예기치 못하게 병을 발견합니다. 대부분 불치병 환자들은 처음에는 감기 같은 작은 병 때문에 병원에 가게 되죠. 그곳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우연히 바이러스를 발견하고 불치병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됩니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환자들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다른 병원에 가는 것이죠. 그들은 의사의 판단을 오진으로 여기고 대형병원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병을 ‘부정’합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일상생활에 임하죠. 론 역시 그랬습니다. 그는 의사에게 욕을 하고 병원을 나와 친구와 다른 여자들이 있는 곳에 찾아가죠. 부정의 다음 단계는 ‘불안’입니다. 환자들은 처음에는 애써 사실이 아니라 생각했으나 점점 내면에서 두려움이 밀려오죠. 이 영화에서는 그것을 론이 달력에서 ‘30’이라는 숫자만 보고도 움찔하는 모습으로 표현합니다. 영화 중간 중간 자막으로 그가 진단을 받은 날로부터 며칠이 흘렀는지 나오는데 이것은 관객들에게 영화의 긴장감을 더욱 극대화시키는 효과를 주죠.
[작은 편견에도 주목한다]
론은 여의사에게 간호사라고 부르며 진짜 의사를 데려오라고 소리칩니다. 그리고 남자 간호사를 의사로 착각하고 스타일이 멋지다고 칭찬하죠.
사소해보이지만 이것은 이 영화가 작은 편견도 놓치지 않고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장면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간단하죠. 바로 론에게 여성을 남성보다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론만이 가지고 있는 편견이 아니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남자는 의사, 여자는 간호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죠. 여의사가 많이 늘어나긴 했지만 아직도 남자 의사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편견에 반기를 듭니다. 의사를 여성으로 설정한 것도 특별하지만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간호사를 남자로 설정했다는 것이죠. 영화에서는 남자간호사를 당연히 의사로 생각하고 여의사를 간호사로 여기는 론의 모습을 제시하며 관객들을 저격합니다. 이는 론만의 모습이 아니죠. 비록 그가 다른 사람들보다 유난히 편견에 사로잡힌 인물이긴 하지만 이것은 이미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설정을 통해 영화는 론의 성향에 대한 정보를 전달함과 더불어 현실 속에 실재하는 문제적인 선입견을 함께 꼬집어내었습니다.
[말보다 상처가 되는 것은 행동]
론은 친구들이 있는 술집에 찾아갑니다. 그러나 친구들은 그의 병을 비웃고 몸에 묻은 그의 흔적들을 질색하며 닦아내죠.
불치병 환자, 그것도 전염성이 있는 불치병 환자가 되면 부딪히게 되는 가장 큰 난관이 있습니다. 바로 ‘외로움’이죠. 자신이 병에 노출될 위험에 처하게 되면 사람들은 인간적인 정을 잃습니다. 어제까지 친구였던 사람이라도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심정으로 기꺼이 그 사람을 멀리합니다. 과거 마을에서 문둥병에 걸린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가족들은 모두 쫓겨났죠. 그리고 전염성 바이러스를 주제로 한 영화에서도 이러한 모습들이 등장합니다. 이렇게 돌변한 사람들의 태도를 표현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직접적으로 가까이 오지 말라고 소리치는 것도 상처가 되지만, 말보다 더 큰 아픔을 주는 것은 행동이죠. 이 영화에서 친구들의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론을 호모라고 비웃는 대사가 아닙니다. 바로 그 다음에 이어지는 그들의 행동이죠. 론의 타액이 몸에 묻자 비누를 찾고 수건을 달라고 하는 것. 이 짧은 행동을 바탕으로 영화에서는 론이 더 이상 그들에게 친구가 아닌 그저 ‘전염병 덩어리’에 불과하게 되었다는 것을 가장 임팩트 있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변화시킬 동반자의 등장]
결국 병원에 입원하게 된 론은 자신과 같은 병을 앓고 있는 환자를 만납니다. 여성적인 모습을 하고 다니는 동성애자 레이언이죠.
오프닝에서 론이 변화해야 할 두 가지 대상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영화에서 ‘호모’라고 칭해지는 동성애자와 ‘여자’입니다. 그렇다면 그를 변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이것을 대표하는 인물을 가까이에 두어야하죠. 그가 가장 하대하는 것들을 바로 옆에 두어야 그 인물을 변화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선택한 파트너는 극단적인 호모의 모습을 한 레이언이었죠. 이 병원 속에 있는 수많은 환자 중에 왜 하필 레이언이 론의 옆자리에 있던 걸까요. 이 영화 속에서 제시된 변화의 대상 중 하나인 ‘여자’는 이미 등장했습니다. 론이 편견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여의사 이브죠. 그렇다면 남은 건 무엇일까요. 바로 론이 그토록 질색하는 ‘호모’입니다. 따라서 스토리의 진행을 위해서는 이곳에 반드시 호모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있어야합니다. 그래서 선택된 인물이 바로 레이언이죠.
이렇게 기피의 대상을 가까이 두어야 주인공이 변화하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바로 그가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깨트릴 수 있기 때문이죠. 일반적으로 무언가에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경우 그것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저 겉으로만 보이는 모습을 보고 거부감을 느끼죠. 그러나 그 대상과 오랜 시간 함께 지내다보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이 영화에서도 그렇습니다. 론은 레이언과 함께 지내며 그가 생각보다 친절하고, 오히려 여성적인 면이 많아서 더욱 사려 깊다는 것을 알게 되죠. 그러면서 점점 그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깨닫게 된 삶의 귀중함]
론은 남자간호사에게 소개받은 멕시코 의사를 찾아가 약을 받고 예정된 날이 지난 후에도 목숨을 부지합니다. 그러면서 점점 삶의 소중함을 느끼죠.
전반부에서 론의 모습은 내일이 없는 사람 같았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여자들과 방탕한 생활을 하고 술과 마약에 빠져 살았죠. 그러나 시한부가 되고 예정된 사망일이 지난 후, 그는 달라졌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면 삶을 보는 시각이 변하죠. 그들이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것들이 모두 축복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며 살기 시작합니다. 영화에서는 론의 변화된 면을 달력에 ‘행복한 날’을 기록하는 것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론의 삶에 ‘감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죠. 오히려 부정적으로 여기는 것들이 더 많았습니다. 그는 항상 부족했습니다. 아무리 여자들을 만나고 돈을 벌어도 행복해지지 않았죠. 그러나 삶의 고비를 넘기고 나서 마침내, 그 모든 것들이 행복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그에게 행복의 기준이 달라졌고 그가 행복하다고 느끼게 된 날이 더 많아진 것입니다.
[사라지기 시작한 편견]
론은 마트에서 우연히 경찰 친구를 만납니다. 그리고 그에게 레이언을 자신의 친구라 소개하죠.
론의 변화가 시작되었음을 가장 잘 나타내는 장면입니다. 론은 호모들이 모여 있다 말하며 환자모임에 가기를 꺼려했고 레이언과 가까이 앉는 것조차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그와 지내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호모라는 존재는 그가 생각했던 것처럼 독특하지 않았죠. 그리고 더 나아가 론은 이런 자신의 태도를 숨기지 않고 드러냈습니다. 론은 레이언에게 대놓고 거부감을 표현하는 친구에게 억지로 그와 악수를 하도록 시킵니다. 론은 레이언과 함께 지내면서 그가 만나는 연인과 그들의 사랑에 익숙해졌죠. 그에게 더 이상 호모는 기분 나쁜 존재가 아니게 된 것입니다.
[한 인물의 역사는 자라온 환경에서 시작된다]
이브와 론은 서로 자신이 직업을 선택하게 된 배경과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비록 가상의 인물이지만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현실처럼 여겨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빠지면 안 되는 것이 그들의 ‘가정환경’이죠. 성인이 된 현대인이 겪는 모든 문제점은 가정환경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따라서 가정환경이란 한 인간이 자라는 데 가장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요소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영화에서 인물이 자라게 된 모든 배경을 구구절절 설명할 수는 없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만 언급해 주어야 합니다. 이는 회상 씬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대사를 통해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 영화가 선택한 방법은 후자였습니다. 영화에서 론의 아버지는 그와 같은 전기 기술자였죠. 그리고 그것에 흥미를 보인 론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었습니다. 론은 이렇게 원하는 일을 응원해주는 적극적인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비록 자유로움이 지나쳐 극단적인 방탕함이 되기는 했지만 말이죠. 반대로 이브의 가정환경은 수동적이었습니다. 이브는 역사 공부를 좋아했으나 아버지가 미래에 도움이 안 된다고 해서 과학 공부에 매진해 의사가 되었다 말합니다. 이러한 환경에 의해 이브는 소극적이고 변화에 쉽게 저항하지 못하는 성향을 갖게 된 것이죠.
[삶의 끝에서 그가 깨달은 것]
론은 꽃을 가져가라는 레이언의 말에 방에 걸려있던 야생화 그림을 가지고 가서 이브에게 선물합니다. 이 그림은 화가였던 엄마가 그린 것이었죠.
영화에서 가장 하이라이트가 되는 장면입니다. 론의 엄마는 그의 그림처럼 자유롭고 구속받지 않는 야생화를 닮은 인물이었습니다. 엄마처럼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 이것이 오랜 시한부생활 끝에 론이 얻은 결론이었죠. 론은 이것이 가장 바람직하게 사는 방법이라 여겼고 그것을 수동적인 삶을 살고 있는 이브에게 전수해주고 싶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앞서 말했듯 이 그림은 어머니가 직접 그린 ‘작품’입니다. 따라서 론에게는 단순한 꽃 그림이 아닌 큰 의미를 가진 그림이죠. 그러나 그런 그림을 이브에게 선물해주었습니다. 이브가 그만큼 론의 삶에서 큰 의미를 갖게 된 것이죠. 이브가 이 야생화 그림을 적극적인 못질로 벽에 달면서 앞으로의 변화를 암시해줍니다.
[함께 성장해나가는 이야기]
대부분의 작품 속 주인공이 성장하긴 하지만 이 영화 속 론의 성장은 조금 특별합니다. 바로 ‘관객들과 함께하는’ 성장이기 때문이죠.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론과 함께 조금씩 자랍니다. 론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그간의 행동을 반성하고 앞으로의 행보를 다짐하죠.
영화 속 론의 삶은 끝났지만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삶은 이제 막 다시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론의 성장을 지켜보며 자신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으니, 이제 그것을 밟고 날아오르는 일만 남았습니다.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단순한 오락거리를 넘어서 한 편의 ‘성장지침서’입니다.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으니 ‘하고 싶은 대로’ 살라는 것. 그게 이 영화가 관객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내용도 좋았지만 주인공 연기력에 또 한번 감탄했던 영화였네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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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운이 많이 남는 영화였어요 덧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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