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로 읽는 우리 역사 - '뽕쟁이'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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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연쩍을 만큼 한국의 우수성을 강조하거나 한국인의 위업을 찬양하는 콘텐츠를 우리는 ‘국뽕’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뽕’이 무슨 뜻인지는 아니? 뽕이라는 말은 ‘히로뽕’에서 왔어. 일본에서 합법적으로 유통되던 각성제 또는 피로회복제 ‘필로폰(philopon)’이 한국으로 건너오면서 붙은 이름이야. 즉 상품명이 마약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경우지. 우리가 승합차를 승합차 상표였던 ‘봉고차’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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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폰의 학명은 메스암페타민이야. 이 약물은 20세기 인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치명적인 마약이 되었단다. 일본인들이 감기약을 만들다가 합성해낸 메스암페타민의 각성 효과에 착안해 세계 각국은 이 약을 군인들에게 투입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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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지상군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베네룩스 삼국을 짓밟고, 프랑스군을 격멸하고, 영국 원정군을 독 안의 쥐로 몰아넣게 되지. 전차와 보병, 항공기와 공수부대가 조화를 이루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상대방의 허리를 자르고 들어갔던 독일군의 기동을 두고 우리는 ‘전격전(Blitzkrieg)’이라고 불러. 독일군이 이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었던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메스암페타민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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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들은 메스암페타민 성분이 함유된 퍼버틴(pervitin)이라는 각성제를 먹었는데 이 약을 먹은 독일군 보병들은 잠을 며칠 동안 자지 않고도 훌륭하게 전투를 수행했고, 죽음을 불사하며 돌격을 감행하는 ‘뽕 맞은’ 모습을 보여줬단다. 메스암페타민의 발명자라 할 일본인들도 자살 특공대, 즉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에게 이 약을 술에 섞어 마시게 했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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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암페타민은 전쟁에서만 사용된 게 아니라 일상에서도 합법적으로 생산되고 판매됐어. 〈오즈의 마법사〉라는 영화 기억나니? 당시 열여섯 살 나이에 주연을 맡았던 주디 갈랜드는 빡빡한 촬영 일정에 지쳐 쓰러지기 일쑤였는데 그때마다 이 메스암페타민을 먹었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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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그녀는 “메스암페타민 중독 증상과 불면증에 시달렸고 제작진은 수면제인 바르비투르산을 권했다. 당연히 바르비투르산도 현재 마약으로 분류돼 있다(〈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주디 갈랜드는 평생 약물중독에 시달리다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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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도 1951년까지 필로폰은 합법적으로 사람들에게 팔렸어. 그러나 중독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그 피해 사실이 알려지면서 곧 필로폰 제조가 금지돼. 일본 정부는 강경한 필로폰 단속에 나섰고 마약상들에게 사형까지 선고하며 필로폰을 뿌리 뽑으려 들었지만 여의치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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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의 배후에 중남미의 마약 농장과 무시무시한 갱단이 버티고 있듯, 일본 근처에는 질 좋은 필로폰 생산지가 있었기 때문이야. 바로 한국이었어. 한국의 초창기 필로폰 제조 기술자들은 일본군에 징용돼 필로폰 만드는 기술을 배운 사람들이었으니 일본으로서는 아주 황망한 자업자득을 경험한 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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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필로폰은 질이 좋아서 동남아산을 제치고 일본 필로폰 시장을 장악했지. 2018년 개봉한 영화 〈마약왕〉은 바로 한국 마약상들의 탄생과 성장의 역사를 다루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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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약왕〉에서 한국 필로폰계의 거목으로 성장해가는 주인공 이두삼은 1970년대를 풍미한 여러 마약상을 합친 캐릭터야. 우선 금 밀수 조직의 일원이었다가 필로폰을 알게 되고 이를 제조한 다음 일본에 수출해 큰 부를 일구었던 이황순이라는 인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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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순은 당시로서는 최첨단이라 할 CCTV, 음파탐지기를 갖춘 으리으리한 저택에서 살았는데 1980년 3월 체포 과정에서 수사관들과 총격전까지 벌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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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스포츠팀을 후원하고 각종 행사에 얼굴을 들이밀면서 지역 유지 행세를 했던 건 또 다른 마약왕 심상호를 참고했을 가능성이 크다. 심상호는 지역 정화위원을 포함해 무려 8개의 공식 직함을 가지고 지역 유지로 행세하는 한편, 논밭으로 둘러싸인 집에서 필로폰을 대량으로 만들어 팔아먹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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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순·심상호와 더불어 1970년대 마약 ‘4대 거물’로 불린 이로 최재도와 최판호가 있어. 최재도는 1980년대까지도 마약 제조와 밀매를 거듭하다가 1989넌 체포돼 마약사범으로는 최초로 사형선고(상급 법원에서 징역 20년으로 감형)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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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폰의 대부’라 할 최판호는 아예 비극적으로 삶을 마치게 되지. 최판호 역시 부산시 체육회 간부로 오래 재직했고,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양정모가 귀향했을 때 카퍼레이드를 열어주기도 한 지역 유지였다. 그의 딸 결혼식에는 부산 지역 고위급 인사들이 총출동했다고도 해. 최판호는 흔한 전과 하나 없었어. 마약 밀매를 하면서도 무수한 공무원들을 바람막이 삼아 살아왔기에 그는 “내가 잘못되면 50명이 옷을 벗는다”라고 호언할 정도였지(조갑제닷컴의 ‘히로뽕 지하제국탐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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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1월14일 기세등등하던 최판호의 집에 대검찰청 수사관들이 들이닥쳤어. 권총까지 빼든 수사관들은 최판호를 끌고 2층으로 올라갔는데 그곳에서 즉석 고문판이 벌어져 최판호는 갈비뼈가 10개나 부러진 끝에 사망하고 말았지. 한때 이황순 등 마약 거물들이 ‘그의 그늘 아래 컸다’는 악명이 자자했고 부산 지역 마약 담당 공무원들과도 호형호제하며 지냈던 마약 대부는 공권력에 덜미가 잡힌 날, 공권력의 손에 저승길로 떠나고 만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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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약왕〉에서 주연 송강호는 이렇게 외친다. “애국이 별게 아니다! 일본에 뽕 팔면 그게 바로 애국인기라!” 이건 영화 속 설정만은 아니었어. 실제로 필로폰‘꾼’뿐만 아니라 필로폰꾼들에게 돈을 받아먹고 그들을 감싸며 형 동생 하던 공무원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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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가깝고 그만큼 필로폰 불법 제조와 밀매가 성행했던 부산 지역에는 이렇게 말하는 공무원들이 많았다고 한다. “히로뽕 밀수가 뭐 나쁩니까. 일본놈들한테 그런 히로뽕을 많이 보내 모두 중독자로 만들었으면 속이 시원하겠습니다.” “우리도 밀수입만 하는 게 아니라 밀수출을 할 게 있다니 자랑스러운 일 아닙니까. 히로뽕이라도 밀수해서 무역 역조를 시정해야지요(조갑제닷컴 ‘히로뽕 지하제국탐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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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위기에서 필로폰 업자들은 물을 만났고 호시절을 누릴 수 있었던 거야. 고문 끝에 죽임을 당한 최판호의 경우, 대검찰청 수사관들이 최판호를 차분히 취조하지 못하고 냅다 고문부터 퍼부었던 것은 시간을 끌 경우 현지의 비호 세력이 움직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는 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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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만이 살길이다”라는 슬로건 속에 노동자들을 갈아 넣어 수출탑을 쌓아가던 시절. ‘히로뽕’이라도 수출해 돈을 벌자는 기괴한 발상에는 많이 엇나간 민족감정까지 결부돼 있었단다. 물론 그건 100% 필로폰으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필로폰 업자들과 또 그로부터 상납을 받아먹으며 배를 불렸던 부패 공무원들의 치졸한 자기합리화일 뿐이지. 필로폰꾼들이 ‘애국적으로’ 한국인에게는 필로폰을 팔지 않을 리도 없고, 마약으로 대일 무역 역조를 보완한다는 건 그야말로 ‘도둑질이든 뭐든 부자만 되면 된다’는 격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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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막말이 그럴듯하게 들리는 시대가 있었음은 기억해두어도 좋을 것 같구나. ‘뽕’과 황금이 내뿜는 열기에 취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던 부나방들의 역사, 그리고 20세기를 풍미했고 지금도 곁을 떠돌고 있는 필로폰의 역사도 아울러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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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윤종빈 감독이 촬영하는 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도 남미 지역에서 활동했던 한국인 마약상에 관한 이야기인데 산하님 글을 보니 갑자기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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