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2호선의 등장

in kr •  7 years ago 

1984년 5월 22일 지하철 2호선 완공

학창 시절 무슨 모임에선가 이대앞에서 만나 흐드러지게 술을 먹은 후 집에 가려고 전철을 탔다. 당시 얹혀 살던 이모댁이 동부이촌동이었던지라 좀 돌긴 해도 동대문운동장까지 가서 4호선을 탈 요량이었다. 그런데 깜박 졸다가 깨어나보니 아뿔싸 다시 이대앞 역이었다. 꾸벅꾸벅 졸며 한 바퀴를 돈 것이다. 이제는 정신차리자 하고 몸을 추스르고 보니 전철 좌석이 아니라 벤치에 앉아 있는게 아닌가. 타지도 않고설랑 한 바퀴 돌았다고 착각한 맹추. 나만 이런 경험이 있는 줄 알았더니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꽤 있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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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5월 22일 지하철 2호선 ‘을지로 순환선’ 2호선이 완성됐다. 78년 3월 착공된 후 근 6년만의 완공이었다. 그런데 왜 을지로 순환선일까? 1980년 10월 최초로 완공된 2호선 구간은 요즘의 2호선 지선이라 할 신설동에서 종합운동장을 잇는 구간이었다. 노선은 슬금슬금 서울을 길게 감싸 안는 지하의 성벽처럼 동서로 확장됐고 시내 방향의 지하를 뚫으면서 2호선 노선의 큰형님(?) 신설동 - 성수 노선을 지선으로 전락시켰다. 서울대를 거쳐 신도림을 지나 당산철교를 넘어 신촌골을 통과하여 한양대를 지나 을지로를 관통해 온 지하통로가 서로 만난 곳이 을지로입구역이었고 48.8킬로미터, 지선까지 치면 60킬로미터의 세계최장급의 지하철도 구간이 완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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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연대생들이 고대생들과 쓸데없는 입씨름을 벌일 때 고대생들을 찍어 누르는 가장 큰 무기 가운데 하나가 “느네 학교 지하철 있어?”였다. 지하철 2호선은 연대 뿐이 아니라 가히 고3들에게는 꿈의 노선이라고 부를만한 노선이었다. 서울대, 연대,이대, 서강대, 건대, 경기대, 한양대, 교대 등등이 그 노선에 버티고 있었으니 “2호선 타고 학교 가자.”는 머리띠를 매는 것도 과히 틀린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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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이름이 그냥 붙여진 것은 아니었다. 최초로 역명으로 대학이 사용된 것은 교대역이 처음이었는데 각 학교와 학생들은 전철역에 자신의 학교 이름을 붙이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원래 동교역은 홍대입구역으로 바뀌었고 화양역은 건대 입구 역이 됐다. 건대생들은 이를 위해 몇 차례의 데모도 불사하며 그 이름을 쟁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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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신촌역은 연세대와 서강대의 팽팽한(?) 대결 속에 그냥 신촌역으로 낙찰을 봤다고 전한다. 다 그럴듯하지만 서울대입구역만은 너무 어거지라고 이 연사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은 대학교 1학년의 3월에 친구 만나겠다고 서울대 입구역에서 내려 서울대까지 걸어 올라가다가 토할 뻔 했던 기억이 스멀거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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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선은 가장 많은 승객을 실어나르는 노선으로서 성추행 피해가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노선이며 요즘은 완연히 한물 간 듯 보이지만 소매치기들이 제일 활개를 쳤던 주 무대도 2호선이었다. 몇년 전 고등법원 판사 나으리가 추행을 하다가 그 못된 손에 수갑 차고 끌려갔던 건 잠실역이었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춥고 배고프고 갈 곳도 없어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소매치기를 했는데 그 지갑에 단돈 100원이 들어 있어서 ‘피해액 100원’으로 감방에 가야 했던 불운한 소매치기의 무대는 2호선 을지로입구역이었다. 경찰은 "2호선에서 소매치기 범죄가 많이 발생한 것은 이용객이 많고 혼잡하며 역구내는 범인의 도주가 용이하고 혼잡한 동선으로 범죄가 용이하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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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림역 러시아워

어느 지하철 어느 역이 그렇지 않을까마는 지하철 2호선의 각 역은 거의 모든 역이 사연 한 아름씩을 안고 있다. 대학생들이 많이 타는 전철 노선이었지만 그들같이 유복하지 못했던 또 다른 젊은이들은 구로공단역에서 내려 일자리를 찾아야 했고 경기도에서 출퇴근하던 많은 직장인들은 신도림에서 사람의 홍수 속에 좌우로 갈라지며 만원 지하철에서 켁켁거려야 했고 한때 경마장이 있던 뚝섬은 한탕을 노리는 꾼들의 함성 소리 그득했으며 잠실역과 신천역은 가을의 어느 날이면 빨강 파랑 모자를 쓴 고대와 연대생들로 별안간 초만원을 이뤘고 서울을 한 바퀴 돈 신촌역에 토해 놓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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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 신림역은 봉천동 신림동 고갯길만큼이나 팍팍한 오늘을 넘어 미래의 달빛을 움켜쥐리라 바지런히 움직이던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닳고 닳았고 오늘날 대림역은 내리자마자 여기가 한국인지 중국인지 헛갈리는 한자간판의 홍수에 휩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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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평양 축전 때 뚝섬에서 내린 대학생들이 일시에 철로를 점거하고 철로를 뛰어 한양대에 진입하는 ‘환상의 텍’으로 경찰들을 아연실색시킨 것도 2호선이었고, 87년 6월 항쟁 때는 그 많은 대학들을 그냥 지나치고 을지로 입구 역에서 내려 계단을 뛰어올라서는 최루가스와 경찰에게 덤볐던 수많은 학생들을 뿜어낸 것도 2호선이었으며 운나쁘게 잡혀간 친구들의 재판을 보기 위해 올라탔던 지하철도 법원이 위치한 서초역이 있는 2호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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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포스팅을 읽는 분들도 역 하나 하나를 다시 되짚는다면 그곳 하나 하나에 서려 있긴 하지만 한 번도 더듬어 본 적이 없는 추억들이 산(酸) 만난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번져 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지금의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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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관심이 많으신가보네요~ 좋은 글 많이 써주실거죠?

네 이런 저런 얘기 계속할게요 ^^

좋은글 잘보고가요

감사합니다.

제 경우엔 2호선 하면 종합운동장 옆 신천역이 생각나네요. 5층짜리 주공아파트 살았는데 지금은 롯데타워를 비롯해서 잠실 '엘-리-트'아파트로 유명하더라구요. 아 이름도 잠실새내역으로 바뀌었군요.

신천역은 ... 생긴 뒤 택시 기사들한테 악명이 높았다고 합니다. 시청역인지 신촌역인지 헛갈렸다고 해요 ㅋㅋ 그래서 항상 확인했다고 합니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은평구 신사동의 전철역은 새절역으로 이름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