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실세의 추억, 그리고 이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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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실세가 된 장제원 의원이 MBC 최승호 전 사장의 행보에 날을 세운 적이 있었다. 최승호 전 사장이 각지에 ‘유배’됐던 이들을 복귀시키는 한편 구 김장겸 사장 체제 하의 주요 보직자들을 물러나게 한 데 대하여 “가히 점령군답다. 블랙리스트가 작동하고 있나 보다”라고 비판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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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만 해도 어이가 없는 호통이었다. 지난 정권 내내 제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스케이트장으로 연수원으로 기타 등등으로 쫓겨간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요, 정권에 밉보인 나머지 아예 직장에서 목이 잘려 나간 사람도 지천인데 지금 누구의 입에서 ‘피의 숙청’ ‘공포의 보도 개입’ 류의 언사가 방출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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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어금니 깨물고 혀를 차며 참아 줄 수 있었다. ‘내로남불’ 즉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개념이 일종의 시대정신으로 승화되고 있는 대한민국 아닌가. 더구나 정치인으로서 말도 안되는 말(言)도 말이 되는 말로 만드는 능력 또한 출중하실 것이니 한 귀로 흘릴지언정 다른 한 귀로 들어 줄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의 다음 행동에서 그만 필자는 파안대소(破顔大笑), 박장대소(拍掌大笑), 가가소소(呵呵笑笑), 앙천대소(仰天大笑)를 합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글쎄 장제원 의원이 이육사의 시 <절정>을 비장하게 읊지 않았겠는가.
그의 수인번호 ‘264’에서 그 이름이 나왔다는 말이 정설로 여겨지지만 그 속내는 여러 번 바뀌었다. 처음에는 ‘역사를 도륙낸다’는 뜻의 육사를 썼고 다음에는 ‘고기 먹고 설사한다’라는 뜻의 육사를 썼다. 전자가 자신이 겪어야 했던 현실에 대한 분노라면 후자는 ‘그래봐야 별 수 없다’는 냉소가 아니었을지. 그러다가 한 친지가 “역사를 도륙낸다는 건 혁명의 뜻을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니 평평한 육지로 만든다는 이름을 써라”고 권유하면서 우리가 아는 그 육사로 스스로를 일컫게 된다. 그리고 그는 ‘역사를 평탄케 하는’ 노력에 몸을 던진다.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나리쟎는 그 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북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 속 깊이 꽃 맹아리가 옴작거려
제비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
- 이육사 〈꽃〉중에서
그는 툰드라 속에서 제비 떼 오기만을 기다리는 시인이 아니었다. 오히려 대단한 행동파였다. 그는 의열단원 윤세주의 주선으로 중국 난징으로 가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다녔고 이때 사격술, 변장술 등 무장투쟁에 필요한 훈련까지 몸에 익혔다. 시와 글이 무기였던 그의 손은 방아쇠와 폭탄 던지기에도 익숙해졌다. 아울러 그는 오늘날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장제원이 들으면 기겁을 하고 눈을 시뻘겋게 뜨고 덤빌 만한 이념을 수용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1933년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 1기 졸업기념 연극 <지하실>은 그야말로 사회주의 선전물 그 자체였다. 어디 그뿐인가. 의열단장 김원봉 앞에서 이육사는 이렇게 토로하고 있다.
“나는 도회지 생활이 길어서 도회지인의 심리를 잘 이해하고 있으므로 도회지에 머물러 공작을 할 생각이다. 곧 도회지의 노동자층을 파고들어서 공산주의를 선전하여 노동자를 의식적으로 지도 교양하고, 학교에서 배운 중ㆍ한합작의 혁명공작을 실천에 옮겨 목적을 관철한다.”
(<증인 이원록 신문조서>, 국사편찬위원회,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31)
장제원 의원은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물론 독립운동에 좌우가 있을 수 없고 공산주의든 민족주의든 무슨 ‘주의’가 되었든, 그 이념들은 조선 독립이라는 절대 과제를 위한 ‘도구’의 성격이 강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육사 역시 그런 분 중의 하나였다. 계속 궁금하다. 장제원 의원은 그 사실을 알고 있을까? 그걸 알고도 “빨갱이는 죽여도 돼” 방패를 든 일베 승려와 싱글거리며 사진 찍었던 MBC의 ‘뜻있는’ (장제원 의원의 표현) 기자들 (이들 중 하나가 지금 가세연에서 난리굿을 벌이고 있음) 을 이육사의 시로 격려할 엄두를 냈을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서울시가 '사회적 경제'라는 교과서를 만들어 초,중,고교에 배포된 경위를 사납게 따지며 이 교과서가 사회주의 편향적인 내용이 담겼다고 우기던, ‘사회’자만 들어가도 경기 일으키던 바로 그 장제원 의원이 한때 투철한 ‘빨갱이’였던 이육사의 과거를 알고도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를 읊었다면 우리는 그의 포용력을 인정해야 할까 아니면 갈피 잡히지 않는 혼미함에 당황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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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장제원 의원께 혹시 이육사의 과거를 아셨습니까 여쭙고 싶지 않았다. 만약 장제원 의원이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면 교육부총리 이하 교육감들을 찾아다니며 <광야>든 <청포도>든 이육사의 시를 다 빼 버리라고, 어떻게 빨갱이(?) 시가 자유대한의 아이들 교과서에 실릴 수 있느냐고 길길이 날뛰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제 윤석열 정권도 시작되니 그 열정은 더해지지 않을까 사뭇 걱정되는 것이다.
안동 여행길에 만난 육사 기념관은 매우 뜻깊었다. 기념관 자체도 좋았거니와 기념관 앞에 펼쳐진 시인의 고향의 드넓은 벌판은 그의 시 <광야>를 연상시키기에 족했다. 그 감흥에 젖어, 그리고 장제원이 읊은 <절정>에 실종됐던 어이를 찾아나서며 유튜브 하나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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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도 간수 못하는 놈이 무슨 광야를 내달리는 초월자가 된답니까.. 안타깝네요..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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