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10월 15일 마지막 할러데이의 시작
서울 올림픽이 끝난 며칠 뒤였다. 큰 일 치른 뒤의 어수선함이 아직 사회 전반에서 가시지 않았을 무렵, 어이 없는 뉴스 하나가 국민들의 입을 크게 벌어지게 만들었다. 영등포 구치소에서 대전 교도소로 이감되던 미결수 12명이 호송 버스를 장악하고 탈출해 버렸다는 것이었다. 재소자들을 버스에 싣고 내릴 때에는 호송 관련자나 그들을 접수하는 담당자나 몸 검사를 비롯한 빈틈없는 통제가 이뤄져야 하지만 그 규정들이 깡그리 무시됐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호송관들이 꿈나라를 헤매고 있었다는 뉴스도 있었으니, 영화라고 하기엔 너무나 엉성한 탈출극이 펼쳐진 셈.
그 중 4명이 1988년 10월 15일 밤 서울 북가좌동의 주택가에 스며들었다. 찜질방 같은 건 있지도 않았고, 여관에 들면 진짜 이름으로든 가명으로든 숙박계를 써야 했던 시절, 시커먼 남자 4명이 등을 붙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그들의 선택은 가정집이었다.
‘가정파괴범’이라는 단어가 사람들의 귀를 찢고 떼강도가 횡행하여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게 되던 즈음이었다. 가정집에 침입하여 가족들 앞에서 부녀자를 강간함으로써 ‘입을 막는’ 수법을 쓰는 파렴치 강도범들이 설치고 있었으니, 탈옥수들이 침입한 집의 여성들은 온몸이 죄어드는 공포에 떨었을 것이다. 야차 같은 장정들이 넷 앞에서 천하 없는 여장부인들 범연할 수 있으랴.
그런데 4명의 탈주범들은 뜻밖에도 친절(?)했다. 물론 어떻게 하면 재미없다는 협박 정도야 행해졌겠지만 그들은 가족들에게 손끝 하나 대지 않았고 시종일관 존대말을 쓰며 이렇게 되어 미안하다며 깎듯이 대했다. 스톡홀롬 신드롬 (인질극 때 인질들이 인질범에 심리적으로 동조되는 상황) 때문이었을까, 가족들은 탈주범들에게 친밀감을 느낄 정도였다. “우린 나쁜 놈일지 몰라도 이 돈은 나쁜 돈 아니니까 필요한 거 사서 써요.” 동생들에게 돈까지 건네는 그들이었다. 그들은 이런식으로 서울 시내의 가정집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 당국도 그를 인정했다. "최소한의 해만 입힐 뿐 부녀자 폭행 등 인륜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고 있어 자수할 시 최대한 정상을 참작하겠다."고 포고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새벽 1시께 그 집의 가장이 들어오면서 그 균형(?)이 깨진다. 지친 탈주범들이 경계를 늦춘 틈을 타서 가장이 탈출한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일요일 아침 집을 이중삼중으로 둘러싼 경찰과의 대치가 시작된다.
탈주범들은 그 집 딸의 목에 식칼을 들이대며 위협한다. 그러나 인질이 되었던 딸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수시로 귀에 대고 속삭이던 인질범의 목소리를. “미안하다. 정말 이럴 생각이 아니었다. 절대 다치지 않게 할테니 조금만 참아라.” 선글라스로 기억되는 그의 이름은 안광술이었다. 그는 절규했다. "어떻게 죄수가 판사를 돈으로 사느냐. 나는 절도범이었는데 고문을 받고 강도범으로 뒤바뀌었다!" 그는 기자에게 건넨 마지막 메모에서 세상의 판검사를 죽이고 싶다고 적었다. 기자가 자필 서명을 요구하자 울먹인다. "이게 마지막 써 보는 이름일 것 같다."
마지막 순간임을 직감한 이들은 세상을 향한 포한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가장 어린 나이였던 강영일이 나섰다. "영등포 교도소에서 죽지 못한 것이 한이다. 이 나라의 법이 이렇다. 유전무죄! 유전무죄!" 이 사건의 키워드가 되고 두고두고 대한민국 영세불변의 진리로 운위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이렇게 등장했다.
그리고 이들 넷의 리더격으로서 학교는 제대로 다니지도 못했지만 신춘문예에 두 번씩이나 응모했다는 지강헌이 등장한다. "어머니! 제가 살아도 제가 죽어도 괴로우실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살든 죽든 어머니에 대한 사랑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하늘은 개고 햇볕도 났지만 밖에 나가기 부끄럽다!.... 나는 행복한 거지가 되고 싶었던 염세주의자다." 영등포교도소에서 교화를 맡았던 스님이 급히 불려와서 설득을 시도했을 때 그는 벼락같이 악을 쓴다. "웃기지 마라. 세상은 너희같이 큰소리 치는 놈들이 망쳐 놓은 거다. .... 돈없고 빽없는 게 죄다. 도둑놈? 진짜 범죄자는 너희같은 놈들이야."
그는 556만원을 훔친 죄로 징역 7년에 보호감호 10년을 선고받았다.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은 그 1만배쯤 되는 액수를 횡령했음에도 불구하고 징역 7년이 고작이었다. (그나마 3년도 안 채우고 풀려나게 된다.) 이것이 지강헌으로 하여금 탈주를 결행하게 만든 가장 큰 동기였다. "내가 저 새끼보다는 죄가 없는데! 난 왜 17년 동안씩이나 감옥에서 썩어야 되느냐."
그들은 탈출에 필요한 봉고차를 요구했다. 봉고차가 도착하자 지강헌은 강영일에게 봉고차를 확인하라고 한다. 집 밖으로 나가 차량을 확인한 강영일이 다시 들어오려 하자 별안간 지강헌은 총을 쏘며 막는다. "이 형이 주는 마지막 선물이다. 나가라." 지강헌은 다른 이들에게도 나가라고 종용하지만 죽어도 같이 죽자던 범인들은 지강헌의 총을 빼앗아 자살하고 만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총알이 떨어진 것일까. 지강헌은 유리로 자신의 목을 찔렀고 현장에 진입한 경찰 특공대가 지강헌을 쏜다.
며칠 뒤 그들의 외로운 장례식 때 그들의 마지막 생의 무대였던 집 가족들이 참석한다. "악몽의 14시간"이었지만 가족들은 망자들을 영일이 오빠, 강헌이 아저씨로 불렀었다. 적어도 가족들에게 그들은 '흉악범'이 아니었다. 인질 가족 중 어머니는 자신이 좀 더 설득하지 못해서 젊은이들을 죽게 했다고 두고두고 울먹였다고 하며, 가족들은 살아남은 탈주범 강영일을 위한 탄원서를 제출한다.
""상기인은 1988년 10월 15일 탄원인 고00의 집에 들어와 다음날인 16일 오후 12시까지 인질극을 벌였습니다. 비록 그가 인질범이며 탈주범이기는 하나 저희 집에 들어와 우리를 인질로 잡고 있으면서도 그리고 탄원인의 아버지가 신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저희에게 단 한 번의 폭언이나 폭행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분명 심성이 착한 이였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오히려 불안에 떠는 저희를 진정시키며 아버지를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정말로 미안하다는 말을 수시로 했습니다. 물론 그가 지은 죄는 사회적으로 국민들에게 지탄을 받아 마땅하나 저희 집에 들어와 취한 인간적인 면을 생각하여 정상 참작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이 탄원서를 읽으면서 코끝이 찡했다. 이건 스톡홀롬 신드롬 따위의 꼬부랑말이 들어갈 계제가 아닌, 불행했던 인간들에 대한 가슴 시린 조의(弔意)이자 그들로부터 입은 피해를 넘어서는 인간애의 한 장이었다. 인질이 된 가족의 집에 들어갔던 1988년 10월 15일 밤. 탈주범들은 듣도보도 못했던 낯선 가족과 함께 그들 인생 최후의, 그리고 매우 드물었을 평온한 밤을 맞았다.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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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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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부조리가 다시는 없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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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나쁜 놈들도 분명히 있지만 위의 인질범들은 '인간말종'들은 분명 아니었던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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