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는 정당하다 그러나

in kr •  4 years ago 

공포는 정당하다. 그러나.......
.
이른바 ‘통일운동’한다는 분들이 가진 환상 내지 즐겨 하는 거짓말 가운데 하나가 북한은 항상 평화를 추구했으며 간첩 사건 같은 건 대개 남한 공안당국의 조작이었다는 것인데 이는 사실과 매우 거리가 멀다.
.
남한 사람들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반공의식으로 무장했던 것은 전쟁의 기억과 더불어 전쟁 이후 북한의 끊임없는 ‘대남공작’ 탓도 크다. 걸핏하면 무장공비가 출몰하고 툭하면 사람들이 죽어나가는데 상대에 대한 적개심이 생기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었다. 공포는 증오로 굳어졌고 증오는 합리적 의심을 저버리게 만들었다.
.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한마디는 사람을 얼어붙게 만들었고 ‘그쪽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뭐지?’라고 묻는 공안 메두사들은 수없는 이들을 돌로 만들었다. ‘너는 빨갱이야’라는 말 앞에서는 반론권도, 무죄추정의 원칙도, 하다못해 법률도 허섭쓰레기가 됐다. 일시에 페스트 환자보다 더한 혐오의 대상이 됐고 사실상 대한민국의 시민권을 박탈당했다. 미국에서 유래했지만 한국에서 더 만개하고 오래 갔던 매카시즘의 시대다.
.
매카시즘의 희생자 가운데 위청룡이라는 사람이 있다. 이 분은 대한민국 공무원이었다. 공무원 중에서도 자그마치 법무부 검찰국장이었다. 검찰국장이라면 검찰의 예산과 인사를 총괄하는 핵심 보직이고 다음 보직은 대개 서울중앙지검장이 기다린다는 꽃보직이다. 조만식 선생 휘하에 있다가 월남해서 판사와 검사를 두루 거치고 5.16 군사정권에 의해 검찰국장으로 발탁돼 욱일승천하던 위청룡은 뜻밖의 방문객을 맞게 된다.
.
아버지의 편지를 가지고 왔다는 낯선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북한에 남았고 그의 편지라면 곧 북한으로부터의 메시지였다. 얼떨결에 편지를 받은 위청룡은 장관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고 신고를 하겠노라고 얘기하는데 장관은 이런 편지로 누가 당신을 의심하겠냐며 문제 만들지 말고 덮어 버리라고 권한다. (대구신문 2010년 9월 2일) 그런데 일이 맹랑하게 돌아갔다. 아버지의 편지를 전한 이가 중앙정보부에게 체포된 것이다. 돌도 입을 열게 한다는 중앙정보부에서 그는 자신의 포섭 대상에 위청룡도 있음을 털어 놓았다.
.
위청룡은 즉시 체포됐다. 일이 이렇게 되자 법무부장관은 입을 씻었다. “나는 그런 보고 받은 적 없소. 무슨 사람 잡을 소리를!” 빨갱이로 지목된 사람과는 손을 끊는 것이 상책이었다. 위청룡의 죄라면 아버지의 것인지 아닌지 모를 편지를 들고 와서 건넨 사람을 그 즉시 신고하지 않은 것이 다였지만 ‘간첩과 상종’한 죄는 천하의 검찰국장을 중앙정보부의 음산한 취조실에서 벌벌 떠는 피고인으로 전락시키기에 충분했다. 빨갱이 혐의 앞에서는 법도 필요 없었다. 아니 어찌 보면 요긴하게 활용됐다.
.
1961년 7월 제정된 ‘구(舊) 인신구속 등에 관한 임시 특례법 2조 1항’에 따르면 특수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법,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부정축재처리법 등에 해당되는 죄를 범한 자는 영장 없이 구속, 압수, 수색을 할 수 있게 돼 있었다. 빨갱이라면 혐의가 드리우면 영장 따위는 없이 잡아가두고 집안을 쑥밭으로 만들고 ‘여죄’를 캐는데 제한이 없도록 법이 보장했다.
.
당시만 해도 월등히 남한을 앞섰던 북한에 대한 피해의식은 하늘을 찔렀고, 간첩과 ‘접선’한 사실이 어떤 형태로든 드러난 이가 60년대 대한민국 사회를 산다는 것은 불길 속을 헤엄치는 것과 다름없었다. 억울하다고 말하면 더 맞았고 무죄 추정 따위는 중앙정보부 경비견 밥그릇에 놓였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에서 추방돼야 할 악의 씨로 내동댕이쳐졌다. 이 증오의 근원은 공포였다. “사람이 사람을 못 믿게 된 것이 안타깝지만 애국적 견지에서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간첩들은 이르는 곳마다 붉은 가시 그물을 늘여 놓고 있다.” (동아일보 1962년 10월 12일)
.
천하의 검찰국장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위청룡은 ‘법대로’ 영장도 없이 끌려갔고 조사를 받다가 ‘자살’했다고 발표된다. 고문을 받다가 숨이 끊어졌을 수도 있고 자살일 수도 있겠지만 자살이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검찰국장이라면 ‘빨갱이’로 몰린 사람들의 말로를 수도 없이 봤을 것이고, ‘고위직에 침투한 간첩’에게 어떤 대접이 기다릴지 너무도 잘 알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온 이로부터 편지를 전달받은 순간 이미 위청룡의 운명은 막장으로 치닫고 있었다. 체포된 간첩이 ‘포섭의 대상’이라고 자백한 순간 게임은 끝난 것이었고 말이다.
.
공포는 부당하지 않았다. 대담하게도 박정희를 포섭해 보겠다고 황태성을 내려 보냈던 북한이 보낸 무장간첩들은 수시로 출몰해 남한 사람들을 죽이고 있었다. 전쟁이 끝난 지 10년도 안된 상황, 여차하면 또 당한다는 공포는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
그러나 그 공포 앞에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것이 당시 대한민국의 비극이었다. 증거법정주의, 죄형법정주의, 무죄추정의 원칙, 영장주의(令狀主義),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열 사람의 도둑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사람들 만들지 말라.”는 금언 등 근대적 법 정신의 현실적인 빨갱이 무장간첩에 대한 공포가 부른 ‘애국적 견지’ 앞에 산산조각나 녹아 없어졌다.
.
최근 아니 오래 전부터 우리 곁에 등장해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성폭력’에 대한 공포가 존재한다. 그 공포는 정당하다. 상상도 못한 이들로부터 벌어지는 가해와 역시 상상을 절하는 피해자의 고통을 가져오는 성폭력 범죄의 공포를 어찌 삭감할 수 있으며 외면할 수 있으며 방치할 수 있을까.
.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에는 위에 길게 언급한 근대적 법 정신도 들어 있다. 만연해 있는 성범죄에 대한 공포와 현실적으로 증거가 드물 수 밖에 없는 특성 때문에 ‘피해자의 증언’이 유일한 ‘증거’가 된다면 이는 또하나의 편향이고, 위청룡만큼이나 억울한 ‘범인’을 만들어 낼 소지를 양산하지 않을까.
.
우리는 그 현실적 사례를 전북 상서중학교에서 벌어진 ‘스쿨미투’ 사건에서 똑똑히 보았다. 성추행범으로 몰린 교사는 후일 증언을 번복했던 학생들의 ‘진술’만으로 학교에서 쫓겨났고 성추행범으로 낙인찍혔으며 경찰의 무혐의 판정에도 불구하고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으며 “당신의 주장대로라면 학생들이 누명을 씌웠다는 이야기인데, 그러면 학생들이 처벌받는다.”는 해괴한 압박을 받고 낙심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범죄의 크기와 내용에 앞서 성범죄자라는 혐의가 일단 제기되면 과거의 빨갱이로 몰린 이들만큼이나 항변이 어려워진다. 무슨 변명을 하면 ‘2차 가해’의 위협이 상존하고, 어차피 ‘증거가 없는’ 사건에서 가해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내밀지 못하면 혐의가 완성된다. 심지어 피해자가 자신의 증언이 잘못되었다고 탄원서를 써도 그 혐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상황이 정상적일까. 성범죄의 피해가 아무리 심각하다 해도 가해자들을 이런 식으로 밝히고 응징하는 것이 맞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는 46년만에 위청룡 전 검찰국장이 간첩이 아니라고 판정했다. 그는 간첩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를 조사하고 자살에 이르게 한 이들은 아마 지금도 “당시 북한 놈들이 얼마나 심했었는데!” 를 되뇌며 영장 없이 사람을 잡을 수 있었던 당시의 법을 읊으며 자신들을 합리화하고 있을 것이다. 다시금 말하되 그 공포는 정당했다. 그러나 공포에 대한 대응은 명백히 잘못돼 있었다. 오늘 우리가 그런 우를 범하지 않게 되길 바란다.
.
P.S. 이 포스팅은 박시장 사건과는 관련이 적다. 정황상 ‘피해자’는 시장으로부터 불쾌한 일을 당했고, 그를 모면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했으며 결국 법에 호소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어떤 이유든 시장은 자살로서 세상으로부터 단절을 택했다. 더 이상 얘기할 여지는 적고 피해자를 공격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그러나 나는 변호인에게서 왕년의 공안당국 같은 말을 듣고 경악했었다. “침묵조차 2차 가해”라니. “편지를 받았으면 간첩”이라는 사람들과 얼마나 다른가 말이다.

image.png

Authors get paid when people like you upvote their post.
If you enjoyed what you read here, create your account today and start earning FREE STE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