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구글, 넷플릭스, 픽사, 애플 등 고작 몇 명이 창고에서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전 세계 IT 흐름을 좌우하는 기업들의 창업 이야기는 재미있는 면이 많다. 재미 삼아 시작한 프로젝트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승승장구한 케이스도 있고(페이스북), 대학원 박사 논문을 쓰려고 인터넷을 통채로 다운받아 웹페이지마다 점수를 매기겠다는 야심 찬 시도로 성장한 기업도 있고(구글), 3D 컴퓨터 그래픽에 관한 독보적인 기술이 있지만 제대로 활용처를 찾지 못해 이리저리 팔려 다니다가 어렵게 3D 장편 애니메이션이라는 꿈을 실현한 기업(픽사)도 있다.
시작하고 성장하는 이야기는 저마다 제각각이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들이 가장 압축적으로 성공하고, 회사의 핵심 역량을 축적하고, 회사의 정체성과 서비스의 핵심을 정의해나가는 시기는 가입자 수와 트래픽을 미친 듯이 올리고, 돈을 쓸어 담는 시기가 아니다.
최고의 IT 기업이 가장 성장할 때는, 폭발적인 성장의 임계점이 오기 직전, 소수의 창업자들이 돈, 성공, 명예 따위도 모두 잊은 채 무언가 재미있고 의미 있는 것을 만든다는 생각에 올인하고 있을 때다. 물론 이들은 돈을 무시하지 않았다. 돈이 없이는 훌륭한 인재와 필요한 설비를 구할 수 없다는 걸 잘 알았고 이런 부분에는 아낌없이 투자했다. 하지만 그들이 일에 완전히 몰두할 수 있었던 에너지는 결코 돈이 아니라, 자기가 만들고 싶은 서비스와 비전이었다.
1조원을 거절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이 여러 군데의 투자를 받으며 몸집을 불려 나가기 시작할 때, 야후가 페이스북에 눈독을 들였다. 2006년 야후는 마크 저커버그에게 10억 달러를 제시하며 페이스북을 인수하고 싶다고 제안한다. 10억 달러면 우리 돈으로 대충 잡아도 1조 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돈이다. 저커버그가 하버드 대학교 기숙사에서 페이스북을 시작한 게 2004년이니, 고작 3년 만에 1조의 가치를 인정받는 회사를 만든 셈이다.
이때 저커버그가 회사를 팔았다면 아마 인터넷의 역사는 꽤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저커버그는 이렇게 매력적인 제안을 거절한다. 도대체 왜? 그에게는 페이스북을 1조 이상 가는 플랫폼으로 키울 자신도 있었지만(저커버그는 이를 증명했다), 무엇보다 ‘페이스북’이 자신이 가장 만들고 싶은 인터넷 서비스였기 때문이다. 대학 기숙사에서 친한 친구들과 낮에는 수업 듣고, 저녁에는 코딩에 몰두하고, 주변에서 인턴을 뽑아 방학 동안 합숙하며 서비스 확장에 내달렸고, 그때도 지금도 만들고 싶은 서비스이기 때문에 팔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구글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정확한 검색 엔진을 만들 때도, 애플이 상업적으로 성공한 최초의 개인용 PC 애플 2나 최초의 매킨토시를 만들던 시기(스티브 잡스가 악명을 떨치던 시기기도 하다), 넷플릭스가 DVD 우편 배송을 하던 시절 서비스 재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골몰하던 시기, 픽사가 아슬아슬한 파산의 위기를 헤쳐가며 <토이 스토리>를 마침내 완성해 나가는 모습이 모두 그러했다.
기업은 이윤 추구 집단이고,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고 소비자에게 제공해 돈을 버는 집단이다. 그런데 이때, 돈이 수단이냐 목적이냐에 따라 기업이 경영하는 태도나 기업문화는 완전히 딴판이 된다. 돈을 회사를 성장시키기 위한 수단, 뛰어난 인재를 채용하고 설비에 투자할 기회로 보는 기업은 위의 사례처럼 아이러니하게도 폭발적인 성장으로 인해 더 많은 돈을 번다.
기업이 돈을 유일무이한 절대불변의 목적이자 가치로 놓고 경영을 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모두가 깨끗하게 공유해야 할 자연을 더럽히고, 노동자를 비인권적인 환경에 몰아넣고, 때로는 목숨까지 잃어도 자기 책임은 없다면서 발을 뺀다. 회계 부정과 정경유착이 비일비재하다.
생계 유지와 자아 실현 사이에서
단위를 기업에서 개인으로 축소해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사람이 일을 하는 건, 세상에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하여 생계를 유지하고 가족을 부양하는 면도 있지만, 한 편으론 자기가 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생계유지와 자아실현 중 어느 한쪽만 부각되어도 곤란하지만, 어느 한 쪽을 완전히 무시해서도 개인의 가치관과 존엄성이 훼손된다.
인간은 밥 없이는 살 수 없지만, 밥만으로도 살 수 없는 존재다. TED 강연에서 댄 핑크는 경제적 인센티브와 창의성의 관련성에 관해 설명하면서 단순 반복 업무는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했을 때 훨씬 효율성이 높아지는 반면, 창의적인 업무에는 경제적 인센티브가 도리어 방해가 된다는 놀라운 결과를 들려준다.
즉,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꿈꾸고 있다면 적어도 일을 하는 순간에는 돈을 벌어 부자가 되겠다는 욕망에서 벗어나는 편이 훨씬 이롭다는 뜻이다. 스스로 일을 하는 이유, 내적인 충동이 있을 때 사람은 경제적인 이익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몰두할 수 있다.
“돈 벌려고 일하지 말고, 일하려고 돈을 벌자.”는 그런 뜻이다. 돈은 우리를 먹고 살수 있게 해주고, 더 많은 기회를 준다. 그렇지만 돈에 매몰되는 순간 생각은 오히려 벽에 부딪히고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사고는 막혀 버린다. 우리는 돈 만큼이나 하는 일 자체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돈과 일의 의미 사이에서 때로는 저울질하며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일에 의미를 찾고,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는 순간 우리는 일에 훨씬 더 몰두하게 되고, 또 다른 기회를 발견하게 된다.
- [출근에서 탈출하다] 연재는 제 커리어와 일, 기업문화에 대한 생각을 담은 에세이 《출근에서 탈출하다 - 대기업 퇴사에서 1인 출판까지》에서 제목을 따왔습니다. 일하는 방식과 태도, 가치관 등을 생각날 때마다 연재합니다.
- 출근에서 탈출하다 시리즈는 'the-exit' 태그를 클릭하시면 볼 수 있습니다.
- Photo by NeONBRAND on Unsplash
비슷한 느낌으로 에어비앤비 창업이야기를 재밌게 봤습니다
미쳐야 미친다는 말이 생각나네요 :)
재밌게 읽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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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비앤비도 대단하지요. 빚을 갚으려고 시리얼을 만들어서 팔질 않나 ㅎㅎ
절박함과 유연한 사고가 만나면 가끔 그런 괴물(?)이 나오는 것 같아요.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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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었습니다. 작가님 때문에 리디북스 페이퍼를 구매해야할 것 같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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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ㅎ 대역폭 때문에 이제서야 댓글 달아요ㅠ.ㅠ
전자책 고려하신다면 리디북스가 확실히 시스템이 제일 좋습니다. 각종 패키지 대여 행사와 포인트백 등등 혜택도 많고요. 잘못 걸리면(?) 몇 만원씩 순식간에 지르는 사태가 발생하긴 합니다 ㅎㅎ
리디북스 페이퍼 저도 쓰는데 확실히 폰이나 아이패드 보다 눈이 편합니다. 쬐금 느리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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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출시한 페이퍼 프로는 어떨지 궁금하네요. 크기가 커서 휴대성이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되지만 최신형이라는..!
매월 1~3일 하는 리디캐시 더블이벤트가 진행중이라 강한 뽐뿌가 오고 있습니다 ㅎㅎ
제일 먼저 구매하는 책으로 이미 작가님의 출근에서 탈출하다 라는 책을 정했습니다.
읽고 궁금한점이나 느낀점이 생기면 이곳에서 소통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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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오늘 페이퍼 프로 처음 봤는데 커서 시원시원하더라구요. 저는 페이퍼 크기로도 충분해서 크게 상관없지만 크기는 취향을 좀 탈 것 같습니다.
출근에서 탈출하다 구매하신다니 고맙습니다 ㅠ.ㅠ
무겁지 않은 에세이니 금방 읽으실 수 있을 거에요. 피드백 있으시면 언제든 남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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