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 (주)비단길
1. 바깥에서 안으로
<음란서생>은 두 가지 점에서 흥미로운 영화다. 첫째, 시대가 증발해버렸다는 점. 둘째, (실제로 또는 상징적으로도)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는 점. 그러므로 <음란서생>은 통시적으로 시대에 대해 사유하게 하지도 공시적으로 윤리의 문제를 검토하게도 하지 않는다. 그 점 때문에 <음란서생>은 철저하게 대중적이지만 진맛까지는 도달하지 못(안)한다.
처음부터 다시, 조금 더 풀어서 얘기해보자. <음란서생>은 사극이 아니다. 왜냐하면 <음란서생>은 역사에 티끌만한 관심도 없기 때문이다. <왕의 남자>가 역사적 사실의 빈 구멍을 찾아내어 그것을 확대해서 들여다봄으로써 최소한의 역사적 알리바이를 가진 채 이야기를 진행시킨다면 <음란서생>은 조선 후기쯤으로 짐작만 될뿐 그 어떤 역사적 표식도 남겨져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댓글’이니 ‘동영상’이니 하는 장난이 가능해진다) 한마디로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플롯을 위한 장치 혹은 영화의 미술적 배경을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주인공이 추구해야할 목표의 장애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시대 설정. 바로 이 점이 이 영화의 장애물 두 가지(사대부가 음란소설을 쓴다는 것, 정빈을 사랑한다는 것)를 가짜 배경을 만들기 위한 CG처럼 보이게 한다. 진짜 같지만 진짜이지는 않은 것. 진맛인듯 하지만 진맛은 아닌 맛.
이 영화가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는 명제로 돌아가보자. 왜 그런가. 체홉이 명석하게 정의했듯이 유머란 위기에 시간을 더한 것이다. 어떤 위기도 시간이 지난 후에는 우스개로 전환될 수 있다. 여기서 방점이 찍히는 문구는 ‘시간이 지난 후’이다. 당대를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몹시 위협적이다. 아리스토파네스 이후로 위대한 희극작가들은 당대를 웃어버리거나 웃겨버렸다. 반면에 과거의 사실을 웃음의 소재로 사용할 경우 작가는 안전하다. 예컨대 <효자동 이발사>는 박정희 시대에는 만들 수 없다. 만들어도 보여질 수가 없다. 보여지더라도 안전하게 보여질 수 없다. 똑같은 영화를 박정희 시대가 끝나고 30년 뒤에 만들어서 보는 것은 안전빵으로 웃자고 하는 짓이다. 하지만 이런 안전제일주의에는 시대의 가려움증을 확실하게 긁어주는 쾌감이 부재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진맛이 없다는 것이다.
2. 안에서 바깥으로
<음란서생>은 두 개의 플롯이 동시 진행된다. 하나는 김윤서가 음란소설가로서 당대 최고가 되는 과정이고, 다른 하나는 윤서와 정빈의 사랑(혹은 정념)이다. 이 두 개의 플롯 모두 약간의 결여를 가진 채 진행되다가 결합된다. 이 지점에서 <음란서생>은 모호해진다. 무슨 맛인지 모르고 먹는 음식처럼.
이 영화를 소개한 여러 미디어들은 하나 같이 이렇게 소개한다. 조선시대 사대부인 김윤서가 ‘우연한 계기로’ 음란서생이 된다. 사대부가 음란서생이 된다는 설정은 이야기의 측면에서 부차적인 것이다. A→B. A에서 B의 상태가 되기까지의 과정, 즉 도식적으로 보자면 화살표(→)를 핍진하게 그리는 자가 바로 이야기꾼이다. 김대우 감독은 한국영화계에 몇 안되는 훌륭한 이야기꾼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음란서생>에서 화살표는 미디어에 소개된 것처럼 흐릿하게 그려진 듯하다. (시나리오는 좀 나은 편이다. 이상하게도 음란서생은 시나리오가 더 완성도가 높다) 김윤서가 음란서생이 되는 과정이 절실하지가 않다. 왜 하필이면 김윤서가 바로 그때에 음란서생이 되어야 하는가? 이 점이 석연치가 않다. 표구상을 잡으러 황가의 유기전에 들렀다가 필사쟁이 곁에서 잠깐 음란소설을 읽었을 뿐인데 말이다. 김윤서가 사헌부 장령이라든가 제일의 문장가라든가 또는 동생이 정적으로부터 참혹한 짓을 당했다든가 하는 점이 그의 캐릭터를 구성하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점은 생략된 듯하다. 음란소설이 김윤서가 살고 있던 시기의 최상의 성적 환타지라면 그가 그런 환타지를 꿈꿀 만한 인물임을 더 충분히 그려냈어야 한다. (김윤서는 서른 여섯인데 영화에서는 그의 아이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부인은 잠깐 그에게 호통을 치더니 나오지 않는다. 또 조 내관이 부른 기생집에서 그는 쑥맥처럼 보인다. 이런 것들은 그저 이 영화가 시대를 과거로 두는 것처럼 김윤서도 명확치 않게 그려낸다.) 김윤서가 음란서생이 되는 이유가 아니라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필요하다.
정빈에 대해서도 우리는 잘 알 수 없다. 그녀는 왜 윤서에게 눈길을 주는가. 그녀가 누군가에게 눈길을 준 것은 처음이었을까. 궁에서 빠져나와서 선화사까지 어떻게 갔을까. 그녀가 이렇게 위험을 무릅쓸 만큼 김윤서의 매력을 느낀 것은 ‘벌을 쫓아낸 일’ 밖에는 없을까. 정빈을 가운데에 놓고 이 영화를 사유하면 질문이 끝도 없다. 이 수많은 물음표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로 <음란서생>은 클라이맥스에 이르는데 거기서 김윤서와 정빈은 뜬금없이 사랑의 아리아를 차례대로 부른다. 그래서 이 뜬금없는 아리아들은 감동까지 다다르지 못한다. (솔직한 나의 반응은, 왕이 저 말을 다 듣고 있다니 한심하군! 이었다)
김윤서가 음란서생이 되는 것, 그리고 정빈과의 사랑은 허술하게 봉합되어 있다. 이 두 플롯은 아주 정교하게 직조되어야 했을 것이다. 김윤서의 음란소설 <흑곡비사>가 장안의 화제가 되면서 필화사건이 되고, 정빈과의 통정이 또 하나의 스캔들로서 수사선상에 오른다면, 그것이 점점 조여들어 오면서도 김윤서가 둘 다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비장미를 지닌 이야기를 시종일관 유머를 유지하면서 할 수 있다면 <음란서생>은 진맛의 경지에 도달했을지도 모른다.
<음란서생>은 뛰어난 미술과 촬영. 그리고 세련된 연출과 주조연의 연기 앙상블이 돋보이는 웰메이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위에서 언급한대로 두 개의 플롯이 매끄럽게 연결되었더라면, 캐릭터들이 좀더 생생하게 표현되었더라면 웰메이드를 넘어서 진맛이 폴폴 나는 명작이 되었을 것을. 그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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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모두 감사합니다!
자연스러움은 중요하지요.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자연스럽지 못하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급격히 떨어지는 몰입도는 언제 느껴도 씁쓸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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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도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영화평을 꾸준히 올릴 테니 즐겁게 읽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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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합니다.
좋은글많이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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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 감사해요! 더 좋은 콘텐츠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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