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에는 망종(芒種)이라는 절기가 있습니다. 우리 귀나 눈은 망종이라는 단어를 익숙하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다만 그 뜻으로 들어가면 좀 낯 설죠? 저는 바로 그 낯설고 생경한 그 길을 좋아합니다. 거닐 맛이 나죠.
망(芒)은 꺼끄래기, 즉 수염이 있는 종자입니다. 벼, 보리 등 수염이 있는 곡식이 그 대표이고요.
그런 곡식의 씨를 뿌리기 좋은 시기라는 게 망종이라는 절기의 표면적 뜻입니다. 표면적 뜻이라… 그렇다면 한 삽 더 파고 들어가보면 무엇이 드러날까요?
그런데 수염이라 하니 노년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요즘은 노인도 면도를 하지만 예전에는 수염이 나이의 심볼이기도 했죠. 수염(鬚髥)은 한자로 이러한데 또 하나의 수염이 있으니 바로 말 이을 이(而) 입니다.
이 글자가 수염이 늘어진 모습이지요. 내(耐)라는 글자 속에 들어가죠? 수염(而)을 손으로 잡아 뽑는(寸) 그런 형벌을 견디는 뜻입니다.
바로 인내(忍耐)에 들어가는 그 글자 맞습니다.
참을 인(忍)은 일어나는 감정을 참음이라면 견딜 내(耐)는 육체적 고통을 견디는 것이지요.
어느 것이 더 참기 힘들까요?
육체적 고통은 이를 악물면 넘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감정적 모욕감 등은 진정 참기 어렵다고 하지요. 그런 상태에서 고요하고 담담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가히 초인입니다. 마블영화처럼 힘세고 빠르다고 영웅이 아니지요.
누가 나를 억울하게 비난하고 악플을 달고 악성 유언비어를 퍼뜨려서 내 체면과 입장을 심하게 손상할 때-사실을 담담하게 밝히기는 하되 요동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내면에서 배가 지나간 호수면처럼 잔물결 하나 남지 않을 수 있다면…그저 새가 날아 지나간 하늘 같을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람 안에 있는 어둠이 마침내 떠나간 것이겠지요. 작은 나의 죽음이며 탁한 업력의 소멸이니 그것을 망종(亡終)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심청이 죽으러 떠나는 날 아침- 마지막으로 아버지 심봉사에게 고백하는 장면이 이렇습니다.
"남경 선인들에게 인당수 제수로 내 몸을 팔아 오늘이 떠나는 날이오니 나를 망종(亡終) 보옵소서" 라는 애절한 표현이 나옵니다만-심청은 그 작은 죽음으로써 큰 탄생을 하게 되는 것을 우리는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6월의 망종을 지나가면서 긴 세월 아까워서 끼고 살던 내 안의 묵은 것들을 완전히 놓아버리는 것을 꿈꾸어 봅니다. 네! 망종(亡終)이 신생(新生)을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