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전 경판본 현대어역(10)

in krsuccess •  3 years ago 

이렇게 의견을 맞춘 다음 털평이가 콧소리를 내며 노래를 시작했다.

“새벽 비 갠 후에 일하러 갑시다. 아이들아, 뒷산에 고사리 벌써 자랐으니, 오늘은 일찍 꺾어 오너라. 새로 거른 술에 안주로 쓰겠노라.”

무숙이도 노래를 했다.

“공평한 세상 사람의 마음을 어찌 힘으로 얻을 수 있겠는가? 항우야 진나라 궁궐을 불 지른 일도 도리에 어긋나거든, 하물며 자기 임금인 의제까지 죽인단 말이냐?”

군평이도 노래를 했다.

“님을 만난다고 다 사랑하랴, 이별이라고 다 서러우랴. 임진강 대동강 황릉며에 두견새 운다. 아이야, 네 선생 오시거든 조리박 파는 장사꾼[하찮은 배우자] 정도야 못 얻겠느냐?”

팥껍질이 ‘풍’으로 끝나는 노래 가사를 읊었다.

“만국병전초목풍(萬國兵前草木風), 모든 나라 병사 앞 풀과 나무 위로 바람이 부네.
취적가성낙원풍(吹笛歌聲落遠風), 피리 소리 노래 소리는 바람따라 멀리 떨어진다.
일지홍도낙만풍(一枝紅桃落晩風), 한 가지 붉은 복숭아는 늦은 바람에 떨어지네.
제갈공명이 불렀던 동남풍(東南風), 어린아이 경기하는 만경풍(慢驚風)[질병의 일종], 머리 아픈 노인이 겪는 변두풍(邊頭風)[편두통], 일본 풍습의 왜풍(倭風), 미친 바람인 광풍(狂風), 맑은 바람인 청풍(淸風), 서양 풍습의 양풍(洋風), 이 많고 많은 풍(風)자를 어찌 다 말하리오.”

바금이가 ‘사’로 끝나는 노래 가사를 읊었다.

“한식동풍어류사(寒食東風御柳斜), 한식날 봄바람에 궁궐의 버드나무 흔들리네.
원상한산석경사(遠上寒山石逕斜), 쌀쌀한 늦가을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높은 산을 오른다.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 이태백의 <죽지사(竹枝詞)>, 굴원의 <어부사(漁父詞)>, <구운몽> 속 양소유가 쓴 <양류사(楊柳詞)>, 그립다는 뜻의 상사,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생각이 난다는 불사이자사(不思而自思), 여기도 사, 저기도 사 사로 끝나는 노랫말은 셀 수도 없구나.”

쥐어부딪치기는 ‘년’으로 끝나는 노래 가사를 읊었다.

“적막강산금백년(寂寞江山今百年)이요, 쓸쓸하고 고요한 강과 산에 지금 100년이오.
강남풍월한다년(江南風月恨多年)이라, 강남땅 풍월이 한가로운지 여러 해라.
우락중분비백년(憂樂中分非百年), 기쁨과 즐거움을 반으로 나눠도 백 년도 안 될 것이오.
인생부득항소년(人生不得恒少年), 인생을 살며 어찌 늘 소년이랴?
일장여소년(日長如少年), 뜨는 해는 소년과 같다네.
한진부지년(寒盡不知年), 겨울이 그쳐도 해가 바뀐 줄 모르네.
금년(今年), 거년(去年), 천년(千年), 만년(萬年), 억만년(億萬年)이로다!”

나돌몽이가 ‘인’으로 끝나는 노래 가사를 읊었다.

“양류청청도수인(楊柳靑靑渡水人), 버드나무 푸르고 푸른데 물 건너는 사람이여.
양화수쇄도강인(楊花愁殺渡江人), 버들개지 날리니 강 건너는 사람 시름겹구나.
편삽수유소일인(遍插茱萸少一人), 모두 산수유 머리에 꽂다 한 사람 없음을 깨닫겠지.
서출양관무고인(西出陽關無故人), 서쪽 양관에 가면 친구는 없겠지.
역력사상인(易歷沙上人), 모래벌판에 모습 또렷하구나.
강청월근인(江淸月近人), 맑은 강가에 달은 가깝네.
귀인, 철인, 온갖 것 가운데 가장 귀한 사람 인.”

아귀쇠가 ‘절’로 끝나는 노래 가사를 읊었다.

“꽃 피었구나 춘절(春節)[봄철], 잎 피웠구나 하절(夏節)[여름철], 노란 국화와 붉은 단풍이로구나 추절(秋節)[가을철], 물이 줄고 돌이 드러나니 동절(冬節)[겨울철]. 정절(情節), 충절(忠節), 마디 절(節)하니 모두 절의(節義)로구나.”

악착이가 ‘덕’으로 끝나는 노래 가사를 읊었다.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서 도덕이 없다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조상을 영화롭게 만드는 자손의 덕,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를 잘 모셨던 조상의 덕, 사람을 가르치고 화식(火食)을 시작한 수인(燧人)의 덕, 병사를 부리고 창을 만든 헌원(軒轅)의 덕, 모든 약초를 맛보고 약을 만든 신농(神農)의 덕, 여덟 가지 괘(卦)를 만든 복희의 덕, 한나라 삼국시대 뛰어난 임금인 유현덕의 덕, 유현덕 휘하 장수 장익덕[장비], 혼란한 세상의 간신이자 영웅인 조맹덕[조조], 조맹덕 휘하 장수 방덕, 당나라 태종의 장수 울지경덕, 이 덕 저 덕 많고 많지만 큰 덕 가 진짜 덕이다.”

떠죽이가 ‘연’으로 끝나는 노래 가사를 읊었다.

“황운새북(黃雲塞北)이라 누런 구름 떠가는 북쪽 변방, 무인연(無人煙)이라 연기 오르는 인가 없네. 궁류저수(宮柳底垂)라 궁궐 버드나무 드리운 데, 삼월연(三月煙)이라 3월 안개. 장안성중(長安城中)이라 서울 성 가운데, 월여련(月如練)이라 달빛은 비단 같네. 연기를 뜻하는 연(煙)자가 이뿐이랴.”

변통이가 ‘질’로 끝나는 노래 가사를 읊었다.

“삼국풍진(三國風塵)이라 위, 촉, 오 세 나라가 다투는 싸움질, 오월염천(五月炎天)이라 5월 더위에 부채질, 세우강변(細雨江邊)이라 가랑비 내리는 강가에서 낚시질, 만첩청산(萬疊靑山)이라 첩첩 둘러싸인 푸른 산에서 도끼질, 낙목공산(落木空山)이라 낙엽이 떨어져 빈 산에서 갈퀴질, 술 먹은 놈은 주정질, 아내는 물레질, 며느리는 바느질, 좀스러운 노인은 잔소리, 사령관(司令官)은 몽둥이질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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