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하다. 새끼제비야. 은나라의 위대한 탕(湯)임금은 짐승을 사랑해 다 길러내었다. 그런데 네가 이 지경이 되었으니 어찌 불쌍하지 않겠느냐? 여보 마누라 혹시 실 있나?”
“아이고, 굶기는 부자가 밥 먹듯 하면서 무슨 실이 있겠소?”
이렇게 말하고 전혀 뜻밖에 실 한 묶음을 얻어 주었다. 흥부는 칠산 앞바다에서 난 조기 껍질을 벗겨 새끼제비의 다리를 싸고 실로 동여매었다. 그렇게 하늘을 가리지 않는 곳에 놓아둔 지 10여 일이 지나자, 다리가 다 나았다. 새끼제비가 강남으로 돌아가려고 흥부에게 인사를 올렸다. 흥부가 슬퍼하며 말했다.
“먼 길 조심해서 가고 내년 3월에 다시 보자.”
이렇게 말하니 제비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제비는 바람에 몸을 맡겨서 흰 구름을 비웃으며 밤낮으로 날아 강남에 도착했다. 제비 임금이 물었다.
“너는 어째서 다리를 절뚝이냐?”
제비가 대답했다.
“제 부모가 조선에 가서 흥부라는 사람의 집에 집을 짓고 저와 제 형제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구렁이가 나타나 해를 끼쳐 제 형제가 모두 죽었습니다. 저 홀로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작은 몸을 쉴 새 없이 움직이다가 둥지에서 떨어졌습니다. 떨어지다가 두 발목이 부러졌는데 다행히 흥부가 치료해줬습니다. 다리가 나아 이제야 도착했습니다. 저를 치료해준 은혜를 ‘십 분의 일’이나마 갚고 싶습니다.”
제비 임금이 말했다.
“그런 은혜를 모른 척해서는 세상에 나다닐 수 없는 짐승이겠지. 너는 흥부에게 박씨를 갖다주어 은혜를 갚아라.”
제비가 임금께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해가 바뀐 뒤 제비는 박씨를 물고 여러 날을 날아 3월 3일에 흥부집에 다다랐다. 제비가 공중으로 흥부집을 넘나들었다.
북쪽 바다 검은 용이 여의주를 물고 여러 빛깔의 구름을 넘나드는 듯, 단산에 사는 아름다운 봉황이 대나무 열매를 물고 가느다란 버드나무 근처에 넘노는 듯했다. 제비는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흥부 집을 넘나들었다. 흥부 아내가 제비를 잠깐 보고 기뻐하며 말했다.
“여보, 작년에 갔던 제비가 입에 뭔가를 물고 와서 우리 집을 넘나들고 있소.”
흥부 아내가 흥부에게 말할 때 제비가 박씨를 흥부 앞에 떨어뜨렸다. 흥부가 집어서 보니 한가운데 ‘은혜 갚는 박’이라고 금색 글자로 썼다. 흥부가 말했다.
“옛날 중국 수현을 다스리던 제후가 뱀을 살려주니, 그 뱀이 구슬을 머금고 와서 살려준 은혜를 갚았다고 한다. 제비 또한 나를 잊지 않고 박씨를 머금고 왔도다. 이 박씨 역시 뱀이 머금고 왔던 구슬과 같은 보배일 것이다.”
흥부 아내가 흥부에게 물었다.
“박씨 가운데 금색이 나는 것이 금으로 된 박씨인가 보오.”
“금은 이제 없소. 중국 초나라와 한나라가 전쟁할 때, 진평이 범아부를 쫓아내려고 황금 4만 근을 썼네. 그래서 금은 이제 찾아볼 수 없네.”
“그러면 옥인가 보오.”
“옥도 이제 없소. 곤륜산에 산불이 나서 옥과 돌 모두 타버렸네. 그래서 옥도 이제 찾아볼 수 없네.”
“그러면 밤에 빛나는 야광주인가 보오.”
“야광주도 이제 없소. 옛날 중국 위나라 혜왕이 야광주를 자랑할 때 제나라 위왕이 타이르자 위나라 혜왕이 부끄러운 나머지 깨 버렸네. 그래서 야광주도 이제 찾아볼 수 없네.”
“그러면 유리처럼 맑은 호박(琥珀)인가 보오.”
“유리 호박(琥珀)도 이제 없소. 후주(後周) 세종 임금이 사치를 부려 재물을 탐할 때 장갈이 술잔을 만들어 바치느냐고 다 썼네. 그래서 호박도 이제 찾아볼 수 없네.”
“그러면 쇠인가 보오.”
“쇠도 이제 없소. 중국을 처음 통일했던 진시황이 중국 땅에 있는 모든 쇠를 모아서 동상 12개를 만들었네. 그래서 쇠도 이제 찾아볼 수 없네.”
“그러면 대모[玳瑁: 거북이 등껍질]나 산호(珊瑚)인가 보오.”
“대모랑 산호도 이제 없소. 용궁은 대모로 병풍을 만들고 산호로 난간을 만든다네. 남해 용왕 광리왕이 용궁을 짓는 데 바닷속 보물을 다 가져다 썼으니 대모랑 산호도 이제 찾아볼 수 없네.”
“그러면 이게 무엇이오?”
이때 제비가 날아들며 ‘간지 연지 뇌지 조지 부지오?
[간(干)이 연달아 있고 뇌(耒)랑 조(爪)가 있는 글자를 모르십니까?]’ 건지 연지 뇌지 조지 부지오. 표(瓢)자를 일컫는 수수께끼. 표(瓢)자를 나눠 아(覀)를 ‘건(干)지 연(連)지’ 즉 간(干)이 연달아 있는 모양, 그 아래는 示는 ‘뇌(耒)지’, 옆의 과(瓜)는 ‘조(爪)지’라고 한 것으로 추정.
라고 지저귀었다. 흥부가 제비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말했다.
“옳다구나! 간(干)자를 두 개 붙이고 뇌(耒)자를 쓴 다음 손톱 조(爪)자를 쓰면 표(瓢)자로구나. 이것은 박씨다!”
이렇게 말하고 날씨 좋은 날을 골라 동쪽 담장 아래 심었다. 삼사일이 지나자마자 싹이 올라오더니, 마디마다 잎이 자랐고 줄기마다 박꽃이 피었다. 꽃이 지고 박 네 통이 열렸다. 그 박이 자못 커서 충청도 해군기지에 정박한 전함처럼, 대동강에 떠가는 돛단배처럼 덩그렇게 달렸다. 흥부가 박이 열린 것을 반기며 문자를 써가며 말했다.
“6월에 꽃이 지더니, 7월에 열매를 맺었구나. 큰 것은 항아리만하고 작은 것은 동이만하구나. 어찌 좋지 않겠는가. 속담에 부자로 살다가 돈 없으면 비단이라도 팔아 한 끼를 해결한다고 했네. 배고픈 사람에게 비단보다 먹거리가 요긴하지. 한 통을 따서 속은 지져서 먹고 껍질은 바가지를 만들어 팔아 그 돈으로 쌀을 사서 밥을 지어 먹읍시다.”
흥부 아내가 말했다.
“그 박이 아직 여물지 않았으니 찬 이슬을 맞아 속이 알차지면 따봅시다.”
한 달, 두 달 다 지나서 8ㆍ9월이 다다라서 박이 단단하게 익었다. 박 한 통을 따놓고 부부가 함께 톱질했다.
“자꾸자꾸 톱질하세. 당겨주소, 톱질이야. 북쪽 창 찬 달 바람 소리 그치지 않았으니, 작은 바가지도 만들 수 있겠소. 자꾸자꾸 톱질하세. 뜰 아래 자손들 대대손손 평안할 것이니 살림에 쓸 바가지도 만들 수 있겠소. 자꾸자꾸 톱질하세.”
박이 탁 쪼개지면서 다섯 색깔의
구림이 일어났다. 박 속에서 푸른 옷을 입은 어린아이 두 명이 나왔다. 두 명 아이는 신선만 갈 수 있는 봉래산에서 학을 부르던 아이가 아니라면, 신선이 숨어 사는 천태산에서 약초를 캐던 아이일 것이다. 두 어린아이는 왼손에는 유리쟁반, 오른손에는 대모(玳瑁)쟁반을 눈 위로 받들었다. 두 어린아이가 두 번 절하고 말했다.
“은병(銀甁)에 넣은 것은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낼 수 있는, 영혼을 되돌리는 술입니다. 옥병(玉甁)에 넣은 것은 눈먼 사람에게 쓰는, 눈을 다시 뜨게 하는 술입니다. 금종이로 싼 것은 말 못 하는 사람을 다시 말하게 하는, 말문 트이는 약초입니다. 대모 쟁반에 담은 것은 늙지 않게 하는 약초입니다. 유리 접시에 담은 것은 죽지 않게 만드는 약초입니다. 이것들의 값을 따진다면 억만 냥은 넘습니다. 모두 팔아서 돈으로 바꿔 쓰세요.”
옥과 돌 > 옥과 돌이
구림 > 구름
오타가 있습니다.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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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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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t success go! go!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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