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현실이다. 욕실의 한 쪽 천장에 달라붙어 있는 거울과 그 안에 비친 욕조와 물. 그리고 하얀 고깃덩어리.
벌써 몇 시간이 지난 것일까.
입술은 붉은 빛을 잃었고, 몸뚱이는 퉁퉁불어 처음 본 사람은 그것이 두부인지 피부인지 만져보지 않고선 분간하기 힘들지경이다. 일단은 시간부터 확인해봐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물밖으로 기어나오려고 시도 해보지만, 두개골의 깨질듯한 고통은 내 몸을 옭아매고, 나를 다시 욕조 속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든다. 내가 몸을 가누고 욕실을 기다시피 나왔을 땐 이미 한참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였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남편이 직장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올 시간이었다. 밥은 안해주더라도 이 몰골만큼은 숨겨야 했다.
철컹.
하지만 이내 들려오는 도어락의 소리는 안 그래도 뻣뻣한 내 몸을 그곳에 그대로 굳혀버린다. 문이 열리고, 남편의 눈이 나와 마주친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람의 눈이라는 것이 참 신기할 따름이다.
약간의 눈 크기변화, 눈동자의 미묘한 떨림만으로 그 사람의 표정을 대변하고, 감정을 대변한다. 그리고 시선은 생각을 대변한다.
남편의 시선이 욕실 앞에 서 있는 나를 위 아래로 훑더니, 말 없이 현관 옆 방으로 들어간다. 이제 우리는 서로 말을 섞지는 않지만, 서로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알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 통찰의 깊이가 어디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아기가 죽은 후, 나는 남편에게 그 전까지 해오던 친절한 말을 일체 거두었다. 아니, 화를 내고 욕을 했으며 심지어 살인마로 몰았다.
그것이 남편의 잘못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래왔다.
화를 풀 곳이 너무도 필요했다.
유산의 경험으로 인한 슬픔은 분노라는 감정으로 탈바꿈하여 밀어닥쳤고, 어딘가에다가 욕지거리를 하지 않고서는 버틸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믿지도 않는 신에게 욕을 했다. 왜 이런 몹쓸몸을 주었냐고, 바깥 세상의 햇볕이 따뜻한지 차가운지도 모르는 아기가 무슨 죄를 지었냐고.
눈 앞에 보이지도 않는 신이라는 작자에게 욕을 해보아도 허공에 대고 욕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보였다.
그 후, 그 분노의 파편은 남편에게로 향했다. 아이의 죽음이 남편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알고있으면서도 내 주둥아리는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너는 네 자식을 죽인 살인마라고.
엉켜있던 실뭉치의 끝자락을 발견한 것 마냥 가슴 속에 맺혀있던 응어리의 해결책을 찾은 것 같아서 쉴새 없이 그것을 풀어헤쳤다.
그 뒤로는, 과거의 크고 사소했던 고생들도, 운명이 결정해버린 그 모든 것들도, 남편의 잘못으로 탈바꿈되었다.
나의 일방적인 욕설과 단정이 억울하지도 않은지, 남편은 벙어리, 혹은 귀머거리 마냥 가만히 듣고 있었다.
내말의 논리에 빈틈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아무 말도 않고, 가끔 내 눈을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그 눈은 보았을까. 내 눈의 눈물을. 그 눈물이 단순한 분노의 눈물이 아닌 미안함의 눈물이기도 하다는 것을 말이다.
Great post. Once thing I've learned in life is "Build your own dreams, or someone else will hire you to build thei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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