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글들은 유독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글이 많네요.
사람. 사람. 사람.
내게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입에 달고 살지만, 막상 생각하니 인연을 이어가는 사람은 많지 않네요. 주변에서 봤을 땐, 오히려 나란 사람은 주변 사람에게 무관심한 사람이니 말입니다. 인연을 소중하게 여긴다하며, 동시에 누구보다 쉬이 떠나보내는 것 같습니다. 추억으로 남길 사람이 갈 때, 그 시간과 감상을 나만의 진열대에 남겼던 것 같습니다.
그림을 위해 가족을 뒤로하고 타히티 섬을 향하는 장면은 가족과 자신의 꿈을 대립관계로 그립니다. 그런데 ‘내 사람’이 꿈인 사람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까요?
저는 가족을 뒤로하고 타히티 섬을 향하는 장면에서 ‘가족’은 ‘꿈’의 대척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용어로 표현하면 기회비용이 되겠군요. ‘그림을 안 그리면 미쳐버릴 것 같소.’ 라는 말은 내 꿈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포기하겠다는 것이지 가족을 버리겠다고 해석을 하면 안될 것 같습니다. 또한 ‘난 꿈을 위해서라도 가족은 버릴 수 없어’ 라고 말하는 분께는 ‘가족’이 ‘꿈’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것은 문학적 은유로 받아들입시다. 모든 것을 포기했는데 왜 가족은 남아 있냐고 따지면 소설가가 너무 힘들어 집니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을 다르게 접근해 봅시다. (이런 해석은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달과 6펜스 출간일이 1919년이더군요.
1차 세계대전: 1914년 7월 28일 ~ 1918년 11월 11일
‘윌리엄 세머셋 몸’의 삶을 찾아봤습니다. ‘윌리엄 세머셋 몸’은 10살에 고아가 돼, 숙부 아래에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전선(적십자 야전병원)에서 군의관 활동하며 직접 전쟁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1916년 전쟁도중 타히티섬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고아, 전쟁경험, 전쟁 중 방문한 섬. 이정도면 그럴싸한 설명이 되지 않을까합니다.
전쟁을 경험하는 도중 평화로운 섬을 방문하며 자기 자신의 꿈을 돌아보게 되고, 고아였던
기억이 꿈에 대한 대척점을 가족을 놓게 만든 것이다.
가족을 버렸다는 것보다 꿈을 찾아 나아갔다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꿈을 위해서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나요?
당신은 꿈을 위해서 어느 것까지 포기해 봤나요?
아~~~ 좋은 질문이네요. 이렇게 질문을 바꿔봐도 좋을 것 같아요. 좋은 말씀 정말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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