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증시12국면 퍼즐 맞추기
금융위기의 종류와 선행 조건
금융위기는 크게 볼 때 경제위기, 신용위기, 외환위기 이렇게 3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경제위기는 1929년 미국 대공황과 같이 불황과 디플레이션 (또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동시 다발적으로 전 세계에 확산된다. 일반적으로 경제 위기는 80~90% 정도 폭락하는 대공황 급 금융위기로 구분된다.
신용위기는 금리와 대출이 과열된 이후에 발생하는 일시적인 신용경색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소공황 정도로 마무리하나, 부동산 대출과 은행 대출로 인한 신용경색은 통화축소 위험이 있으며 현실화 될 경우 단기적으로 중공황이나 경제위기에 버금가는 매우 강력한 금융위기를 야기할 수 있다.
외환위기는 개별 국가의 외환보유고가 바닥나고 국가 부도 위험을 동반하며 국제적인 무역경색이 발생한다. 신흥국은 도약기에서 발전기로 진입하면서 올림픽과 같은 세계적 행사를 개최하고 국제적으로 개방되면서 무력 독재정치에 한계가 온다. 대외신인도가 상승하면서 외국인에 금융시장을 필연적으로 공개하게 된다. 초고속 경제 성장을 거치면 과잉투자가 진행되고, 외국인의 캐리자금들도 핫머니 형태로 유입된다.
그러나 반드시 찾아오는 경기 불황 때 경상수지의 불균형을 반드시 경험하게 되고 이는 중공황 급 외환위기로 확대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를 계기로 변동환율제를 채택하고 세계 금융질서에 편입하면서 외환위기는 해소된다. 신흥국의 외환위기는 사랑니처럼 국가 발전과정에 반드시 한 번 경험해야 하는 성장통과 같은 현상이다. 신흥국 투자는 반드시 외환위기 전후로 투자 전략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전 세계 자산은 무한대가 아니다. 우리는 이를 "자산의 풍선효과" 라고 정의할 수 있다. 풍선효과란 한 쪽 면을 누르면 반대편이 튀어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쪽 자산이 수축하면 다른 쪽 자산이 팽창한다는 것이다. 물가가 높을 때는 상품과 주식 간의 풍선효과가 발생하고, 물가가 낮을 때는 주식과 채권 간의 풍선효과가 발생한다.
금융위기로 인한 신용경색 국면에서 풍선의 물리적 부피 자체가 쪼그라드는 현상이 발생하고 이를 "진공효과"라 정의할 수 있다. 진공효과로 인해 모든 자산이 일시적으로 폭락하고 자산은 축소된다.
반대로 양적완화로 풍부해진 유동성을 바탕으로 경기가 호황으로 전환되고 기업들의 투자가 확대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풍선의 물리적 부피 자체가 팽창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이를 "팽창효과"라 정의할 수 있다. 팽창효과로 인해 모든 자산이 일시적으로 급등한다.
정리하면 대부분의 기간 동안 자산 시장은 풍선효과의 지배를 받으나 금융위기라는 특이점이 발생하면 일시적으로 진공효과와 팽창효과가 발생한다.
금융역사학의 고전중의 고전인 찰스 킨들버거의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의 부록에 보면 역사상 금융위기가 잘 정리되어 있다. 대공황 급 금융위기는 80~90% 폭락하며 경제위기와 외환위기를 야기한다. 1929~1933년 90% 폭락한 미국 대공황 외에도 1634~1637년 99% 폭락한 네덜란드 튤립 알뿌리 버블, 1720년 영국 남해회사와 프랑스 미시시피회사 버블, 1970년대 멕시코 등 개발도상국의 부채버블, 1980년대 후반기 일본 및 북유럽 버블, 1990년대 멕시코 및 아시아 외환위기 등을 들 수 있다.
중공황 급 금융위기는 단기적인 신용경색으로 50% 전후 폭락하고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만 국가 존립 기반을 훼손하는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장기 추세 전환의 계기가 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위험관리를 해야 하는 금융위기이다. 1980년 금과 은의 90% 폭락 등 상품시장 폭락과 2000년 미국 나스닥 닷컴버블 붕괴는 미국 장기 추세를 전환시킨 중공황 급 금융위기이다. 그러나 1973~1974년 Nifty50 우량주 버블, 1987년 저축대부조합 버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버블, 최근의 2015년 중국 상하이증시 폭락 등은 미국과 중국의 장기 추세 중간에 발생한 봄 국면의 금융위기이다.
일반적으로 증시 역사가 오래된 선진국 증시는 장기추세 기간이 30년 이상 된다. 그러나 신흥국으로 내려올수록 증시의 변동성이 커서 10년 전후에 불과한 경향이 있다. 미국 증시에서 볼 때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버블은 봄 국면을 지나가는 위치에 금융위기가 있다. 반면 한국과 같은 신흥국에서 볼 때는 겨울 국면에 위치해 장기추세의 마지막 자리를 차지한다. 이처럼 2008년 부동산 금융위기의 위치는 해석에 따라 논란이 있을 수 있는데, 이는 국면 정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나중에 같이 천천히 살펴보자. 필자의 정의가 틀릴 수도 있음을 언제나 경계하고 있으니 그 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대공황과 중공황은 강력한 폭락 이후 여진 폭락이 한두 번 따라오는 경향이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 그러나 소공황은 영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그러나 상승추세 중간에 또는 봄 국면에 수시로 발생하여 하락추세로 전환한 것이 아닌가? 하고 투자자를 오해하게 한다. 소공황은 특정 섹터나 특정 테마를 중심으로 강한 버블이 발생하지만 유동성이 작아 전체 자산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또는 특정 국가에서 발생한 자연재해나 테러, 전쟁 등으로 발생하기도 하나 전체 추세를 전환시키지는 못한다.
소공황의 예로는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사태, 1990년 걸프전, 1981년 물가폭등 막바지의 폭락, 2001년 911 테러, 그리고 2015년 바이오 버블 붕괴 등을 들 수 있다. 1990년대 미국 나스닥 닷컴버블은 중공황 급 금융위기이나, 한국에서 발생한 새롬기술은 소공황으로 분류된다. 새롬기술은 인터넷 전화기술로 5개월간 119배 폭등하였다. 45명의 직원을 가진 회사가 시가총액 기준 재계 7위까지 등극하여 당시 금호 롯데 동아 코오롱 모두 더한 것 보다 시가총액이 크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였다 (1999년 12월 14일). 2000년 초부터 폭락하여 곧 상장폐지 되었다.
그러나 새롬기술을 필두로 한 닷컴 버블은 개인투자자들만의 리그였다. 당시 외국인은 이러한 테마 수준의 버블에 좌우되지 않고 우량 대형주만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닷컴버블 붕괴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코스닥 투자 심리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지만, 전체 증시 측면에서 볼 때는 증시2기 상승을 여는 봄 국면의 시초로서 마중물 역할을 하였다. 2017년 발생한 비트코인 버블의 붕괴 역시 전체 증시에 영향력이 부족해 소공황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제부터 아주 중요한 얘기를 하겠다. 역사적으로 금융위기는 3가지 선행 조건이 있다. 그것은 1) 버블의 성숙 (Y축 규모), 2) 순환주기에 따른 시간 소요 (X축 시간), 3) 금융위기의 전조가 그것이다.
쉬운 말로 표현하자면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
충분히 올라야 폭락하고 충분히 폭락하면 또 오른다. 다시 말해서 폭등하지 않으면 금융위기도 없다. 폭등 없이 폭락이 있을 경우 그것은 단기적인 해프닝 (상승 중 조정: 상승 4파)일 가능성이 크다.
충분한 회복 시간을 가져야 증시가 상승하며, 충분한 시간이 지나야 금융위기가 또 발생한다. 바꿔 말해서 충분한 시간이 지나지 않으면 금융위기도 없다. 만일 폭락이 있었다 해도 단기적인 해프닝일 가능성이 크다.
금융위기 발생 전에 시장은 신호를 충분히 준다. 다만 투자자들이 소음과 신호를 구분하지 못할 뿐이다. 아무 신호도 없이 투명인간처럼 갑자기 나타나는 금융위기란 없다. 그런 것이 있다면 마찬가지로 단기적인 해프닝일 가능성이 크다.
금융위기 전에는 반드시 금융위기 폭락이 납득이 갈만한 버블 폭등이 선행한다. 경기호황과 자산버블이라는 원인이 없다면, 경기불황과 금융위기라는 결과도 없다는 말이다. 높은 산 뒤에는 깊은 골이 기다리고, 깊은 골 이후에는 높은 산이 기다리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1929년의 10분의 1 토막살인 대공황만 기억하지만, 대공황 발생 전 1920~1929년 10년간 주식 역사상 가장 급등했던 시절을 기억하지 않는다. 그리고 존 템플턴 경이 엄청난 수익을 기록한 1930년대 후반 이후 10배 폭등하며 반등한 것도 역시 기억하지 않는다. 1990년부터 시작된 일본의 장기 불황은 1980년대 후반 전무후무한 호황과 자산급등이 없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50% 이상 대폭락한 2008년의 중공황 역시 2003~2007년 급등이 있었기에 발생할 수 있었다.
비관론자들은 아직 상승하지도 않은 자산을 버블이라고 걱정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한국의 가계부채와 부동산 위기설 역시 마찬가지이다. PIR 등을 볼 때 한국의 부동산은 세계적인 수준에서 아직 버블이 아니다. 2015년 유행한 퍼펙트 스톰 등의 선정적인 경고는 부동산버블 주식폭등 등의 원인이 없는 폭락 결과만을 무책임하게 주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개인투자자 역시 버블이 발생하지도 않았는데 비관론에 휘둘려 폭락을 걱정한다. 그러나 막상 버블이 발생해 폭등이 일어나면 무한한 낙관론에 젖어 다가올 금융위기와 폭락을 걱정하지 않는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금융위기는 경기 순환주기의 막바지에 반드시 발생하는 사건으로서 순환주기를 갖는다. 필자가 “반드시” 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음을 강조하고 싶다. 따라서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순환주기에 입각한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몇 년 되지도 않아 금융위기가 또 발생하는 법은 없다는 뜻이며, 아무리 강력한 호황이 진행된다 하더라도 몇 년 지나면 반드시 금융위기가 또 찾아온다는 뜻이다. 대공황시기를 제외한 1900년대 미국 증시의 전체 주기는 대략 31~34년, 상승 주기는 대략 16~17년 정도를 기록하였다. 한국 증시는 대략 9~11년의 주기를 갖는다.
금융위기는 점점 성숙해지면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신호를 보낸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시장은 다가올 전조를 넌지시 보일 듯 말듯 보여주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징조는 점점 농후해지고 향기는 짙어진다. 우리 몸이 아플 때 점점 증세가 악화되는 것과 똑같고, 한국인에게 익숙한 봄 여름 가을 겨울과 똑같다.
제 아무리 매서운 겨울 바람이 분다 하더라도 개나리 피고 새싹이 올라오고 쑥과 달래향이 풍기는 봄은 오고야 만다. 물론 봄 중간에 꽃샘추위가 오기도 한다. 온도는 점점 과열되어 여름이 되고, 여름 후반부쯤 되면 뒤늦게 집에서만 웅크려 있던 개인투자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가을이 오면 우리는 아침의 서늘한 냉기를 경험한다. 겨울이 오기 전에 낙엽은 떨어지고 서리를 먼저 본다. 장단기 금리차와 마찬가지로 가끔 0도가 되었다가 다시 영상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결국 매서운 겨울은 오고야 만다.
봄에서 겨울로 거꾸로 되돌아가는 법은 결코 없으며, 겨울에서 봄을 건너뛰고 바로 여름으로 가는 법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며, 우리는 이를 금융위기가 성숙되는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필자는 이를 증시4계절, 증시12국면이라고 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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