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빨래가 있는 풍경이 좋아.
정확히 말하면 빨래가 보이는 길이 좋아, 동네가 좋아.
이유는 잘 설명할 순 없지만, 걷다가 빨래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져.
물론 빨래가 걸려있다는 것은 맑고, 햇볕이 좋은 날일 경우가 많으니까 날씨 탓일수도 있어. 하지만 그걸로 다 설명되진 않지.
아무도 없는 골목, 그리고 높다란 벽이 있는 집들 사이에서 빨래는 '여기에 사람이 살아요'하고 말을 건네는 것 같아.
마치 아무 생각없이 걷던 길가에서 갑자기 꽃을 피우는 나무처럼 사계절 회색빛으로 박제된 시멘트 담벼락 사이에서 매번 다르게 피어 펄럭거리는 모습은 삶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 같아. 거기에 살고 있는 누군가가 입던 옷들, 약간은 헤진, 약간은 바랜, 그런 옷들이 햇볕과 바람을 온 몸으로 받으며 깨끗하게 수분을 빼가는 모습은 뭔가 인간적이기도 하고. 무언가를 말린다는 것, 햇볕과 바람에 의지할수 밖에 없다는 것은, 왠지 자연에 순응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 그래서인지 빨래를 만나면 동네가 친근하게 느껴져.
건축가 유현준씨는 책에서 빨래에 대해 이런 말을 썼더라고.
"결국 도시를 훌륭하게 완성하는 것은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이다. (중략) 이런 면에서 홍콩의 도시 속에 널린 빨래를 쳐다보자. 그 건축물은 빈민촌에 가까운 풍경이지만, 빨래가 도시에 컬러를 입히고 생동감 넘치게 해준다" (유현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中)
이 글에 절대 공감해. 이 분은 건축가이지만, 이런 생각으로 건축을 한다는 건 멋진 일인것 같아.
세련되게, 멋지게 만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보이게 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야. 그것이 건축이든, 책이든, 예술이든 말이야.
오늘은 밀린 빨래나 할까봐. 속옷도 널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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