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동네를 거닐다가 자존감에 관한 '재미있는' 글귀를 봤다.
40년 이상 '자기 존중감' (자아 존중감, 자존감, self-esteem)을 연구한 나사니엘 브래든이라는 미국 심리학자가 있다. 그가 쓴 책 <나를 존중하는 삶>에는 자존감에 대한 정의가 실려 있다.
우리 자신에게 생각하는 능력이 있으며, 인생살이에서 만나게 되는 기본적인 역경에 맞서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며,
우리 스스로가 가치 있는 존재임을 느끼고,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을 주장할 자격이 있으며,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결과를 즐길 수 있는 권리를 가지며, 또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믿음, 존중, 긍정, 격려 등 내면을 관류하는 포지티브한 '에너지' 또는 자신에 관한 건강한 '이미지'를 말할 것이다. 그것은 자기 안에 굳건히 박은 삶의 뿌리이며, 당연하게도 인생의 귀한 자산이다. 그런데 자존감이 높다는 것이 항상 ‘좋은 것’을 담보하는 걸까? 세상일은 앞면이 있으면 뒷면이 있기 마련인데, 여기에도 어떤 오해나 선입견은 없는가?
자존감은, 달리 쓰면, '자기'가 '자아'와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자존감은 생득하고 계발한 재능이라든가, 자아 바깥의 도덕률, 가치관, 세계관, 이념사상과 무관하다. 자존감 높은 아이는 “똑똑”하고 “건강”하고 “도덕”적이고 “건전한 성 관념”을 갖는 다는 것은 잘못된 진술인 것 같다. 사실 높은 자존감이 꼭 '바람직한 인간형'으로 환원되는지도 의문이다. 외부의 평가에 휘청대지 않고 내 길을 걷는 단단한 '멘탈'이 자존감의 한 모습이라면, 정확히 그에 부합하는 저명한 인물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지 않은가. '가카'라고 (...)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물은 다들 자존감이 두터울까? 아닐 것이다. 오히려 각 분야에서 주목 할만한 성취를 이룬 인물 가운데는 내적 결핍을 지닌 이들이 좀 있다고 한다. 결핍을 채우고 '나의 가치'를 확인받으려는 인정 욕구가 더 많은 것과 더 높은 곳을 가리킨다. 열등감이 곧 열정의 원천이라는 말도 같은 맥락일 게다.
알려진 바와 같이 자존감은 대인관계의 강력한 자원이다. 그런데 자존감이 높다는 게 반드시 '좋은 사람'을 뜻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그간 경험한 바를 말하면, 자중 자애할 뿐더러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는 사람들의 뚜렷한 특징이 있다. 두루 두루 넉넉하게 굴며 모난 곳 없이 잘 처신하지만, 누군가 자신의 본질적인 영역에 섣불리 다가오면 가차 없이 냉정해지곤 한다.
자기를 소중하게 여기는 만큼, 타인과 연루돼 휘둘릴 소지가 있는 깊은 관계를 맺는데 까다롭고, (내가 판단하기에) 낭비적인 관계로부터 자기를 보호하는데 엄격하다는 반증 아닐까. 이런 사람들은 타인과의 적절한 '거리감'이라는 인간 관계의 본질을 관리하는데 무척 유능하지만, 끈끈하고 걸쭉한 인간미는 아쉬울 때가 있다. 인간관계에서 뜨거운 헌신과 의리를 발휘하는 타입은 오히려 자존감이 불충분한 이들이 아닐까. 왜냐하면 스스로 기립할 뿌리가 허약한 만큼, 타인과 유착하거나 타인과의 관계에서 의미를 찾으려 할 테니까.